국내에서 유일한 지평선 1,400㏊에 펼쳐지는 청보리 물결코발트빛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네천년고찰 망해사와 고즈넉한 심포항 서해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도 '환상'

망해사 아래쪽의 진봉반도 보리밭
전라북도 김제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펼쳐지는 곳이다. 높은 산이 없고 들판이 대부분이어서 시야가 탁 트이는 까닭이다. 드넓은 평원의 주인공은 벼와 보리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새순을 틔우는 보리는 건강하게 쑥쑥 자라난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초록빛 물결이 땅과 하늘이 손잡은 지평선을 향해 길고도 넓게 드리운다. 김제평야 어디에서나 이러한 진풍경을 볼 수 있지만 가장 좋은 곳은 진봉반도다.

서해를 향해 돌출한 진봉반도는 군산(옥구)반도와 변산반도 사이에 끼어 있다. 진봉반도는 북으로 만경강, 남으로 동진강, 서쪽으로 서해바다에 둘러싸여 흡사 날카로운 부리를 내밀고 있는 새처럼 생겼다. 반도의 북부는 진봉면, 남부는 광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늦은 봄에 만나는 진봉반도의 보리밭은 청록의 때깔이 유난히 푸르다. 보리밭 넓이는 1,400㏊로 단일 면적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이며 청보리로 유명한 고창의 학원농장보다 10배가 넘는다. 코발트빛 하늘 아래 펼쳐진 보리밭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보리걷이가 끝나는 6월이면 모내기철로 접어든다. 보리의 자리를 이어받은 벼는 황금들판을 이루는 9월까지 초록빛 물결을 일렁인다.

바다를 굽어보는 천년고찰 망해사

진봉반도에는 너른 들판 외에도 둘러볼 만한 곳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은 망해사와 심포항이다. 망해사부터 찾아간다. 울창한 숲길을 뚫고 망해사로 오르는 도중에 남촌 곽경렬 선생 묘소를 만난다.

창문이 바다를 향해 뚫려 있는 망해사 해우소
곽경렬(1901~1968)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와 만주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다. 1915년 어린 나이로 항일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입해 일본 헌병대 무기 탈취, 친일 부호 처단, 군자금 모집 등 활발한 항일운동을 펼쳤다. 192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6년 전주지방법원에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곽경렬 묘에서 삼사백 미터쯤 더 가면 망해사에 다다른다. 진봉산(해발 72미터) 벼랑에 터를 잡은 천년고찰 망해사는 '바다를 바라본다(望海)'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망해사는 642년(백제 의자왕 2년) 또는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부설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했으나 절터가 무너져 내려 바다에 잠겼다. 1589년(조선 선조 22년)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소박하기 그지없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과 낙서전, 요사채, 범종각, 삼성각이 현존하는 당우의 전부다. 1986년 9월 8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8호로 지정된 낙서전은 ㄱ자형 팔작지붕 건물로 1933년과 1977년 중수했다. 건물의 오른쪽에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서 법당 겸 요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고즈넉한 포구의 운치 맛보는 심포항

절 마당에 터줏대감처럼 들어앉은 두 그루의 팽나무는 망해사의 명물로 꼽힌다. 바다를 향해 가지를 드리운 팽나무는 나이가 지긋하다.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니 420살이 넘은 고령이다. 절집 한쪽에 자리한 해우소도 특이한 운치를 자아낸다. 창문이 바다를 향해 뚫려 있어 용변을 볼 때도 자연과 벗하라는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망해사 위쪽의 전망대인 진봉망해대
망해사 위쪽, 보다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전망대인 진봉망해대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 오르면 북으로 군산반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군산시의 모습도 아련하게 보인다. 또한 서쪽 저 멀리로는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가 아스라이 손짓하고,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김제평야의 너른 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바로 아래로 드러누운 심포항 풍경도 정겹게 다가온다. 황혼 무렵, 서해를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해넘이도 절경이다.

차를 갖고 오지 않았다면 심포항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헤친다. 숲의 정기를 음미하며 20분쯤 걸으면 심포항에 닿는다. 김제 유일의 항구인 심포항은 진봉반도의 끄트머리, 만경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아담하게 들어앉았다. 새만금방조제가 바다를 가로막기 전까지 이곳 주민들은 갯벌에 기대어 생계를 꾸려갔다. 백합과 물고기가 넘쳐나 '돈머리'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풍요로운 갯마을이었다.

새만금방조제로 인해 이제 심포는 항구의 기능을 크게 상실했지만 고즈넉한 포구의 운치는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심포항에는 횟집촌이 조성되어 있고 과거 백합의 명산지답게 백합회, 백합죽, 백합탕, 백합구이 등 다양한 백합 요리를 맛볼 수 있다.

■ 찾아가는 길

서김제 나들목에서 서해안(1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만경로-만경읍-702번 지방도로(지평선로)-진봉면을 거쳐 망해사 입구 및 심포항 입구로 간다.

김제 유일의 항구인 심포항과 어선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고속버스나 직행버스, 호남선 열차를 이용하여 김제로 온다. 김제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18번이나 19번 시내버스를 타면 김제 버스터미널을 거쳐 망해사 입구 및 심포항 입구에 이른다.

■ 맛있는 집

김제시 연정동의 도토리칼국수집(063-544-0038)은 도토리 전분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낸다. 도토리칼국수와 도토리수제비, 도토리쫄면, 도토리설렁탕 등을 개발해 김제시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받고 있다. 도토리칼국수는 도토리전분 90%에 쫄깃한 질감을 내기 위해 감자 전분을 10% 정도 섞는다. 한우 사골을 푹 고아낸 육수에 감자와 양파, 대파 등을 넣고 삶아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고 국수발이 쫄깃하다. 한우 암소머리를 푹 곤 국물에 머리고기, 혀밑 등의 고기가 곁들인 도토리설렁탕은 그 자체로도 맛나지만 도토리국수를 한 사리 넣어 소화가 잘되고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운 기념으로 심었다는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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