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진 머리 동백기름이 바로 이 꽃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쪽동백
쪽진 머리 동백기름이 바로 이 꽃

매일 일하고 있는 광릉의 숲길을 거닐다 보면, 그 때마다 길의 주인공이 바뀌어 간다. 5월이 되면서 며칠이고 눈길을 잡았던 층층나무는 이제 잎만 무성하다. 눈에 뜨이지 않더라도 열심히 열매를 성숙시키고 있으리라. 한동안은 눈길을 잡는 나무가 어김없이 쪽동백이었다. 그 순결한 흰 빛의 꽃이라니. 우리를 내려 보듯 나뭇가지 끝에서 땅을 향해 주렁주렁 달리고 있는 그 향기로운 꽃송이들은 오래오래 마음을 잡았다.

이제 쪽동백들은 꽃송이들을 하얗게 땅에다 쏟아 내고 산딸나무가 길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차마 밟기가 아까운 그 꽃송이들을 생각하며, 혹 광릉의 숲보다 더 깊고 더 추운 어딘가에선 아직도 여전히 서 이제 피어날 그 꽃송이들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쪽동백은 낙엽이 지는 중간 키 나무이다. 관목일수도 교목일수도 없는 어중간한 키를 가졌지만, 흰 종이 가득 매달린 그 나무 그늘 아래는 머무를 수 있어 좋다. 너무 높지 않아 그 아름다움을 가까이 보고 만질 수 있어 좋다.

꽃은 때죽나무와 형제가 되는 나무인만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지름이 2cm정도 되는 통꽃이지만 통부분이 짧고 4갈래로 갈라진 꽃잎 끝이 활짝 펼쳐진다. 이 꽃들이 한 20송이 정도가 모여, 길이가 한 뼘이 훨씬 넘는 포도송이 같은 꽃차례를 이룬다. 잎은 더욱 개성이 넘친다. 손바닥만한 잎들이 어긋나게 달리는데, 잎 뒷면은 회색빛이 돌아 바람 따라 나뭇잎이 움직일 때마다 특별한 느낌을 준다.

왜 쪽동백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때죽나무처럼 이 열매도 기름을 짜서 써는데 특별히 머릿기름으로 좋았다고 한다. 그러니 기름을 짜는 나무의 대명사 ‘동백’이란 이름이 붙었을 터이다. 앞에 붙은 ‘ 쪽’의 의미는 알 수 없어 궁금하였는데, 이 말이 쪽문이나 쪽배에서 처럼 ‘ 작'는 뜻이니 동백나무처럼 기름을 짜지만 그 열매(두 나무 모두 종자에서 기름을 짠다)가 동백나무보단 작아 그리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록을 얼마 전에 보고는 크게 동감하였다.

이 이외에도 하얀 꽃이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것처럼 길게 달려서 모양이 깨끗하고 예쁘므로 ‘ 옥령화(玉鈴花)’, 나무가 단단하여 여러 가지 쓸모가 많아 ‘ 개박달나무’, 혹은 윷을 만드는 ‘ 윷나무’란 별명이 있다. 요즈음도 솟대를 만들 때에는 이 나무를 깎아서 만든다고 한다.

아직 본격적인 개발은 안되었지만, 때죽나무는 그늘에서도 잘 견디고 추위에도 강하니 조경수로 심어도 아주 좋을 듯 싶다. 게다가 그 꽃과 잎, 그리고 가을에 주렁주렁 매어달리는 열매의 모습이 보기 좋으니 금상첨화다. 한 번 숲길에서 이 꽃나무를 만나 보시라. 화려하면서도 순결하고, 개성이 있고 자유로우면서도 튀지 않는 쪽동백만의 아름다음에 동감하는 이가 많을 듯 싶다.

떨어지는 진달래 꽃으로 봄을 제대로 맞이했다면, 낙화마저 아름다운 쪽동백의 흰 꽃송이들을 즈려 밟으며 아쉬운 봄을 완전히 보내야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입력시간 : 2004-06-08 16:17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