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눈을 유혹하는 붉은 열매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낙상홍
늦가을, 눈을 유혹하는 붉은 열매

정말 낮이 짧아 졌다. 초저녁 산책길을 한참 앞당기지 않으면 이내 어스름한 어둠을 만나다. 하지만 이즈음 나무 사이들 거닐면서도 쓸쓸하지 않은 것은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들은 이른 새벽에 활동하여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나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듯 하지만 저녁이 다가오면 새들의 마음도 바쁜 듯, 그 소리들도 강하고 빠르다. 그래도 오늘은 하도 유별나기에 새들에게 특별한 날인가 싶어 휘휘 둘러보니 환한 태양빛이 아니어도 금새 눈길을 잡는 붉디 붉은 열매들이 있다. 이 때문일까?

나무 가득 동그랗고 발간 열매들을 달고서 사람도 새도 유혹하는 나무는 바로 낙상홍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무들을 심어 놓은 공간이면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인데, 왜 이제야 그렇게 강하게 눈길을 잡는 걸까? 나무마다 내어 놓은 가지가지 모양과 색깔의 잎들과 꽃들이 화려했던 시절에는 그저 평범하여 가려져 있던 이 나무의 아름다움이, 낙엽마저 떨어져 가는 이즈음에 붉은 열매로 남아 우리를 부른다.

낙상홍은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이다. 정원수로 최근 십 여년 간 많이 심어 여기 저기 공원이나 정원을 만들어 곳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나무를 우리나라 어느 산에 가면 볼 수 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사실 고향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 심는 나무들 가운데는 아까시나무처럼 들어온 지 백년 가까이 되어도 여전히 다른 나라 나무인 듯 느껴지는 종류도 있지만, 낙상홍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친숙한 느낌으로 우리나무처럼 느껴진다. 이리 저리 자유롭게 적당한 높이로 자라는 나무의 모습도 그러하려니와, 손가락 길이도 안 되는 타원형의 잎도 평범하고 초여름에 피어나는 잔잔한 꽃송이들은 그리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5장의 꽃잎을 가진 전형적인 꽃 모양이며 연분홍 빛에다 아주 은은한 향기, 또 다닥다닥 줄기 가득한 빨간 열매 역시 나무 가득하여 화려한 모습을 뽐낸다. 게다가 열매 하나하나를 보면 우리 땅 곳곳에서 만났던 여느 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정서적으로 우리 나무로 인식할 만큼 익숙한 모양이다.

특별한 것은 이 나무는 암수딴그루라는 점. 그러니 무엇인가 목적이 있어 이 나무를 심고자 한다면 열매가 잘 달리는 암나무인가를 알아야 한다. 단, 암나무만 가지고는 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도 기억하자. 서리가 내릴 즈음부터 제대로 붉어진다.

정원수 뿐 아니라, 열매의 크기가 작으면서도 많이 달리며 가지가 많이 발달하니 분재의 소재로도 좋고, 달린 열매들이 쉽게 변하거나 떨어지지 않아 꽃꽂이의 소재로도 인기가 높다. 시중에는 열매의 크기가 2배쯤 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미국 낙상홍이며, 열매의 색을 희거나 노란빛이 많이 도는 품종들도 나와 있다. 추위에 강해 중부 지방에서도 매서운 겨울을 잘 견뎌낸다. 적절한 햇볕이 들고 건조한 곳이 아니라면 비교적 까다롭지 않게 적응하여 잘 자라는 편이다.

열매에 가을빛을 가득 담아 오래 오래 나뭇가지 위에 달아 두고 보고 싶다. 흰 눈이 그 위에 가득 내릴 때 까지.

입력시간 : 2004-11-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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