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땅 덮은 상록의 키작은 나무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자금우
겨울 땅 덮은 상록의 키작은 나무

세월은 쏜 살과 같다더니, 그 푸르던 나뭇잎새는 어느새 물들었다 싶더니 이내 떨어지고 이젠 숲 길에서 바삭이던 낙엽의 느낌마저 잊혀져 간다. 이제 잎이나 꽃으로 더 이상 가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드러난 나뭇가지에 하얀 눈꽃이 쌓여갈 날들만이 남아 있는 듯 하다. 지난 계절을 풍미했던 초록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인지 이즈음엔 자꾸 겨울이 되어도 푸르른 상록의 나무들에 눈이 간다.

늘푸른 나무이면서, 잎이 넓은 상록활엽수인 자금우도 그런 나무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자금우는 여느 나무들과는 사뭇 다른 특징이 있어 더욱 정이 간다. 우선 자금우는 나무 같지 않은 나무이다. 일단 키에서 그러하다. 나무라고 함은 적어도 목질화 된 굵은 줄기를 가지고 자랄 것을 연상하지만, 그 높이가 한 뼘 남짓인데다가 대부분은 여러 그루가 무리지어 자란다. 자금우가 자라는 숲에서 만나면, 그게 나무로 느껴지기 보다는 따뜻한 난대의 상록수림 지면을 덮은 풀무리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금우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는 물론 남쪽 섬이나 해안의 숲에서, 바다를 끼고 북으로 올라오면 울릉도에서까지도 분포한다. 이곳 숲에서 자금우는 땅속에서 땅 속 줄기가 뻗어 나가다가 눈에서 땅 위로 가지를 올려보내 새로운 개체를 만들고 땅속에서는 다시 이어 자라며 살아가므로 자연 무리지어 있게 된다. 땅 위로 올라 온 줄기에는 달걀형의 잎들이 자유롭게 달린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잎이 마주 나거나 돌려 나거나 혹은 어긋나게 달리는 특성이 일정한데, 자금우를 두고는 어떻게 배열로 달린 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상록활엽수이니 이러한 잎들은 다소 두꺼운 진녹색으로 반질한 광택이 인다. 잎을 뒤집으며 잎맥에서 자주빛이 도는 것도 특징이다.

자금우의 아주 작은 연한 분홍빛이 도는 흰색의 꽃이 여름이 시작할 즈음 핀다. 지난해 자란 가지 사이에서 꽃차례의 꽃자루가 나오고 같은 길이를 가진 2~3개의 꽃자루는 늘어지며 그 끝에서 꽃들이 달린다.

꽃이 여름에 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울 식물로 기억하는 것은 바로 열매 때문이다. 꽃이 핀 자리에 그대로 달리는 둥글고 붉은 열매는 그대로 읽어 이듬해 꽃이 다시 필 때까지도 남아 있으니, 오래오래 열매만이 기억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자금우는 관상용 소재로 인기가 높다. 생각해 보면 화분에 넣고 키울 만큼 키가 아담하고, 언제나 푸른 잎을 가지며 실내에 들어 와(사실 중부 지방에서는 실외에 내 놓으면 살지 못한다) 마당에서보다 빛이 부족하여도 비교적 잘 자라며, 오래 오래 진초록 잎을 배경삼은 붉은 열매가 달려 있으니 당연하다.

사실 알고 보면 실내에서 키우는 관엽 식물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건너 온 나무들이고, 우리나라의 식물이 많지 않은데다, 몇 안 되는 우리 나무들 중에서도 백량금이나 백서향 혹은 죽절초처럼 자생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귀한 희귀 식물이 아닌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면 그 숲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을 만큼 까다롭지 않은 식물이어서 더욱 좋다.

이런 장점 때문에 식물 육종가들은 자금우 잎에 변화를 주는 품종을 만들기도 한다. 단순히 분에 심어도 되지만 분재로 만들기도 하고, 또 그늘에서도 견디는 특성으로 지피 식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도 된다. 한방에서도 자금우라는 똑같은 생약명으로 잎과 뿌리를 쓴다. 혹시 한 포기 키워보고 싶다면, 땅속 줄기로 뻗어나가니 잘 키우고 있는 사람에게 포기의 한 쪽을 분양 받아 심으면 아주 쉽다.

겨울의 초입에서 몇 시간만 달려 내려가도, 이렇게 푸르고 귀여운 풀 같은 나무를 만날 수 있는 이 땅이 새삼 좋다.

입력시간 : 2004-12-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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