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덤불…숲을 지키는 보초木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국수나무
무성한 덤불…숲을 지키는 보초木

요즈음 산에 가면 어디서나 지천으로 보이는 꽃나무가 있다. 이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은 요즈음이 아니라 이미 한참 전부터이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산행길에서 반갑게 맞이해 줄 나무인데, 바로 국수나무다. 국수나무 이야기를 하자면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이 나무 없는 산이 없을 터이고, 굳이 깊은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어느 곳에나 있는 까닭에 지금껏 보지 못했을 리 없건마는, 눈 앞에 흰 꽃들이 잎보다 훨씬 무성히 달리고 벌들이 윙윙거려 눈앞을 막고서야 겨우 눈길을 돌려 이름이나 한번 불러주니, 그 무심함이 안타깝고 부끄럽기만 하다. 너무 가까이 언제나 곁에 있기 때문일까.

국수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다. 뿌리 근처에서 많은 줄기가 올라와 하나의 큰 덤불처럼 되어 있는데 보통은 산의 초입에서 만난다. 들과 산을 이어주거나 길과 숲을 이어주는 경계에서 자라는데, 볕이 필요한 나무여서 너무 숲이 우거지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다 자라면 사람의 키를 훨씬 넘긴다고 하지만, 보통은 허리높이쯤 커서 줄기를 축축 늘어뜨리며 그 곳에 꽃송이들을 가득 매어단다. 누구는 이 나무가 숲의 경계를 서 사람들이 함부로 숲을 침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한다. 숲의 보초병이라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국수나무 덤불이 우거진 곳을 헤치며 숲으로 들어갈 엄두는 여간해서 나지 않는다.

꽃 색은 희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아주 약간 노란빛이 돌아 상아빛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꽃이 워낙 작아 눈여겨보지 않고는 그 아름다움을 깨닫기 힘들지만, 숲의 요정이 된 느낌으로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다섯 장의 작은 꽃잎이 정교하게 달려 과연 장미과가 맞구나 싶다.

잎도 개성이 있다. 서로 어긋나게 달리는 잎의 길이는 손가락 두어 마디쯤 되는데 전체적으로는 긴 삼각형이지만 결각이 뾰족 뾰족 불규칙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롭다. 잎자루의 길이는 3~10cm 정도로 보통은 잎보다 길다. 그렇게 한번 제대로 늘어진 줄기, 잎, 꽃을 모두 알고 나면 우리 주변에 국수나무가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수나무란 이름의 유래를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잘 알 것이다. 가는 가지의 껍질을 속껍질까지 잘 벗겨내면 안에 수가 길게 뽑아져 나오는데 마치 흰 국수가락 같아 생겨난 이름이다. 이 국수가락을 길게 뽑으면서 놀았던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국(繡菊)이라는 한자이름도 있다. 섬세하게 수놓은 정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붙은 이름일까.

워낙 흔히 있는 나무라 따로 키우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너른 정원 한 경사면쯤에 줄지어 심어 두고 보면 더없이 좋다. 별다른 관리가 없어도 잘 자라므로 자연공원에는 제격이다. 꿀이 많아 벌이 많이 찾아 들고 그래서 양봉에 이용되는 밀원식물의 반열에 올라있기도 하다. 줄기는 숯가마의 포대를 제작하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줄기와 잎을 염료로 쓴다는 기록도 있는데 붉은색이 난다고 한다. 국수나무를 늘려 심고 싶으면 포기를 나누어 꺾꽂이를 해두어도 아주 잘 큰다.

이상하다. 처음 나무를 알고 풀을 배울 때는 귀하고 특별하며 강렬한 것에 눈길이 갔었는데, 이젠 숲의 배경처럼 서있는 흔하디 흔한 국수나무의 잔잔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 마치 사람을 사귀는 듯 하다. 반드시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입력시간 : 2005-06-15 19:4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