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레피나무

이즈음 남쪽 바닷가 숲으로 가면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온다.

사람에 따라서는 무작정 좋기만 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아주 개성있는 향기. 그 주인공이 바로 사스레피나무다. 아주 오래되고 우거진 숲 중에는 후박나무나 붉가시나무같은 큰 나무들이 아닌 사스레피나무가 가장 많이 자라 주인 행세를 하는 곳이 여럿 있다.

바닷가 산기슭을 거닐다 스멀스멀 스며나오는 향기를 느낀다면 사스레피나무의 잎을 우선 보라. 상록성이니 언제나 진초록빛인 잎은 아주 두껍고 진하며 반질반질하다.

길이는 손가락 한두 마디, 가장자리는 파도를 닮아 약간 울퉁불퉁하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면 그 잎새 사이로 살짝 꽃들이 엿보인다. 작은 꽃송이들이 줄기의 아래쪽으로 땅을 향해 줄줄이 달리므로, 고개를 숙이고 아래에서 위를 향해 바라보면 꽃들이 보인다.

꽃들은 마치 작은 종과 같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꽃송이들이 귀엽게 웃을 것이다. 꽃은 희지도 그렇다고 노랗지도 않은 상아빛이다. 향기도 꽃도 개성 만점인 셈이다.

지난주 남도에서 식물채집 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사스레피나무를 실컷 보았다. 함께 간 일행이 “아! 암꽃을 찾았다”라고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사스레피나무도 암수 딴그루라고 하지만 그간 숱하게 사스레피나무를 만나고, 꽃들을 보았으면서 암꽃과 수꽃을 구분해 찾아본 기억이 없다.

은행나무나무처럼 사스레피나무에도 엄연히 다른 성(性)이 따로 존재한다. 찾아보고자 마음먹었다면 수술이 많은 게 수꽃이므로 의외로 구별이 간단하다. 그러고 보니 봄 산에 가장 잘 눈에 띄는 생강나무도 그러하다.

봄 숲에서 나무구경이 단순하여 지루하거들랑 생강나무나 사스레피나무의 암꽃과 수꽃을 구분하여 찾아보고 성비를 내어보는 일도 색다른 재미가 될 듯싶다. 물론 그러한 데이터는 아주 중요한 생태학적 자료가 된다. 결실률도 예측할 수 있다. 열매는 구슬처럼 둥글고 자줏빛이 도는 검은색이다.

만일, 남쪽의 숲에까지 가기 어렵다면 주변의 꽃집이나 예식장에 줄지어 세워 놓은 화환을 들여다보아도 사스레피나무를 볼 수 있다. 워낙 많은 상록성 나무이고보니 화환을 만들 때 푸른 잎 줄기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한 식물단체에서 도시에서 활용되는 사스레피나무 줄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되어 이 정도로 쓰이려면 자생지의 훼손이 아주 심각할 것이라고 판단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물론 일부 섬지방에서는 지나치게 잘려나가기도 하지만 워낙 잘 자라니 나무 훼손 이야기는 쑥 들어가 버렸다.

크게 자라지 않으니 더러 모양을 다듬어 정원수로 심기도 하고, 생울타리로도 좋다. 목재는 작은 세공제로 이용되기도 한다. 가지와 잎을 태운 잿물이나 열매는 염색재료로 사용하는데 매염제에 따라 갈색에서 겨자색까지 아주 품위있는 고운 빛깔이 나온다. 한방에서는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흔히 보이는 종류 가운데는 우묵사스레피나무도 있다. 대부분의 특징은 사스레피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의 끝이 우묵하게 들어간 점이 다르다. 자작나무와 비슷한 사스레나무와는 이름만 혼동될 뿐 전혀 다른 나무이다.

예전에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던 나무나 풀들이 세월 탓인지 요즘엔 새롭게 눈과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스레피나무처럼. 봄이 왔으니 올 한 해에는 또 얼마나 많은 식물들을 새로이 만날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