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짜내어 쓰고 싶던 사랑 이야기"7년 10개월 만의 소설… 사랑은 인간의 황홀한 숙제

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김홍신 작가의 '단 한 번의 사랑'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 사진제공=해냄출판사
"나는 내 영혼을 끝까지 짜내어 진저리를 치며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소설가 김홍신은 새 장편 <단 한 번의 사랑>을 그런 간절함으로 썼다고 했다.

지난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단 한 번의 사랑>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누구에게나 자기 혼을 끄집어내 제대로 사랑 한번 해보고 싶은 갈증 같은 게 있다"면서 "인생 후반부에 오다 보니 가장 애절하게 다가오는 낱말이 '사랑'이었는데 그래서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신작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인간시장> <대발해> <칼날 위의 전쟁> 등 역사ㆍ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을 주로 발표했던 김 작가에게 <단 한 번의 사랑>은 다소 이색적으로 비쳐진다. 이에 그는 "작가로서 전하고 싶은 휴머니즘의 핵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쓰면서도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런 사랑을 나름의 관점에서 담아낸 <단 한 번의 사랑>은 2007년 대하소설 <대발해> 이후 7년 10개월 만이다. 김 작가는 " <대발해>를 쓸 때 3년간 두문불출하고 매일 10시간씩 만년필로 원고지를 쓰다보니 몸 구석구석에 이상이 생기고 글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 이후 시와 수필만 썼는데 어느날 첫 문장만 쓰면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 영혼에는 그 사람이 습기처럼 스며들어 있습니다." 김 작가를 새 소설로 이끈 <단 한 번의 사랑>의 첫 문장이다. 여주인공 강시울이 기자회견에서 꺼낸 이 첫 마디는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로 이어진다.

시울의 말은 마치 김 작가의 사랑에 대한 생각, 간절하게 꿈꾸었던 사랑을 대변하는 듯하다.

작품은 죽음을 앞둔 한 유명 여배우가 남은 시간을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하고 싶다는 기자회견으로 시작한다. 20대 초반 미모의 여배우인 강시울은 가난뱅이 시인인 홍시진과 사랑했으나 돌연 모습을 감추고 1년여 만에 재벌가의 며느리로 모습을 드러낸다. 절망한 시진은 방황하다 결혼을 하지만 사별을 하고 시인이자 교수로 홀로 지낸다. 시진은 곁에서 묵묵히 사랑을 키워온 후배 서다정에게 마침내 마음을 열고 새 출발을 하려는 순간 첫사랑 시울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 한다.

시울의 등장에 따른 시울-시진-다정의 삼각관계, 시진과 시울의 이별 뒤에 감춰진 재벌가의 비리, 재벌2세 조진구의 실체와 폭력성 등은 소설을 속도있게 전개된다.

작품은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우리 역사의 그림자도 진하게 어른거린다.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친일 후손의 득세와 독립 유공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 재벌가의 이면은 외면한 채 성과만 좇는 사회 분위기 등이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 있다.

작품에서 강시울의 남편 조진구 가문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이유로 갖은 이득을 취했지만 사실은 가짜 독립유공자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는 작가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1996년 당시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는 가짜 독립유공자 5명을 밝혀내 훈장을 치탈하고 파묘를 성사시킨 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아직도 독립 유공자 후손의 삶은 박복합니다. 국가가 가난해 이 분들을 바라지해주지 못했고, 친일파 집안은 번성했습니다. 식민사관은 여전하고…. 이런 문제를 꼭 다루고 싶었는데 이번 소설에 일부 담았습니다."

김 작가는 작품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본체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사랑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다면적이다.

"신이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고 사람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찬란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휘황찬란한 예술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지독하게 아프고 달콤하며 모지락스럽고 잔인하기도 하다."

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사랑'은 무엇일까? 그는 "사랑의 향기"라고 했다. "영혼의 상처는 향기를 만들거나 흉터를 만든다.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좌절과 분노와 같은 흉터로 남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작품에서 다정이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결국 시진과 시울의 영혼결혼식을 올려주는 장면을 통해 다정의 상처는 흉터가 아닌 향기로 남게 된다.

어쩌면 인간은 불행에 저항하기 위해 사랑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의 사랑은 달콤한 고통이고 현명한 모순이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황홀한 숙제이기에 작가는 영혼을 짜내어 엮은 작품으로 사랑의 향기를 은은하게 전하고 있다.

해냄 출판, 396p, 1만3,500원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