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공터에서>(해냄 출판)… 아홉 번째 장편, 자전적 소설

굴절의 역사에 갇힌 작은 주체들의 상처, 시대의 폭력 드러내

삶은 비루했고, 죽음은 허무했다.

세월은 사나운 폭풍처럼 엄습했고, 인생은 ?기듯 달아나거나 짓눌리다 막을 내렸다.

소설가 김훈이 2011년 <흑산> 발표 이후 약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공터에서>(해냄)에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전적 경험을 뼈대로 한 <공터에서>는 191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 아들의 시대와 삶을 다뤘다.

마동수는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상해와 만주 일대를 떠돌며 파란의 세월을 겪었고,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4ㆍ19와 5ㆍ16, 베트남전쟁,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 등을 함께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일그러진 삶에 부대끼며 또한 현대사의 부침에 따라 떠돈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는 “소설은 간 길이 아니라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험적 검증이며,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향유하는 자리다”며 김훈의 역사소설이 시대의 영웅이 아닌 개별자, 너른 세계에 떠도는 작은 주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탁월하다고 평했다.

<공터에서> 마동수 일가는 김훈이 “내 소설의 등장인물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이들이다.

소설은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로 시작한다. 마동수는 시대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항상 주변을 서성거렸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동료 하춘파가 “동수, 너는 문약해서 폭력의 핵심부로 진출할 수 없다. 너한테는 문선(文宣)이 맞아”라고 했듯이.(74쪽)

마동수는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시대에 차이며 목숨을 부지해온 모습으로 아들 마장세에게 비쳐졌다.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삶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샅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140쪽)

소설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 속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굴절되고, 그들이 비극의 현대사를 어떻게 버텨왔는가를 그리고 있다. 그저 시대의 풍파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살아온 아버지 마동수부터 역사가 주는 하중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이크로네시아로 도망가 버린 패륜아 큰 아들 마장세, 그리고 현실 속에서 발붙이고 기신기신 살아가면서 여러 고초를 겪는 차남 마차세까지 마씨 3대뿐 아니라 주변인들도 대부분 시대와 불화(不和)하며 살아왔다.

소설은 현대사의 사건들을 드러내놓고 조명하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그러진 삶을 통해 암울한 시대를 더욱 실감나게 전한다.

김훈은 6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이 아버지와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 관한 이야기”라며 “아버지와 내 세대가 살아온 폭력과 야만의 시대, 그 속의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70년 동안의 유구한 전통은 다름 아닌 ‘갑질’이었다”고 말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민초가 역사의 갑질에 희생되면서도 ‘희망의 힘’을 보여준데 반해 <공터에서> ‘피해자’들은 희망없는 시대의 희생자로 밀려난 인상이다. 작가의 말대로 “결코 도망갈 수가 없는, 피해서 달아날 수 없는 한 시대의 운명이 지워진 것”이다

소설 제목의 ‘공터’는 아무런 역사적인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 될 만한 건물이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마씨 3대가 살아온 시대를 함의한다. 이는 희망이 무기력해진 오늘의 현실과 적잖이 오버랩되며 ‘공터’와 크게 다르지않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좌표를 묻는다.

박종진 기자

-2월 6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훈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해냄 제공)

-김훈 작가의 신작 <공터에서>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