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운하는 바다로 가볍게, 조용히, 평안히 흘러간다. 이제 더는 운하도 경계도 레귤레이션도 없다. 강물은 자신을 활짝 열고 전 세계의 물과 대양에, 그 깊은 곳에 사는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내 맡길 뿐이다. 마린은 시에서 노랬다. ‘주여, 나의 죽음이 거대한 바다로 들어가는 강물의 흐름 같게 하소서.’」<다뉴브(DANUBE), 클라우디오 마그리스(Claudio Magris)선집1, 이승수 옮김, 문학동네 刊>
손바닥을 펴기도, 손가락의 반복으로 그려진다. 손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는 단조로움을 보완해주는 것은 화면 아래 물길처럼 풀어지는 여백이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한 것이지만 작가가 “다시 그리라 해도 못 그릴 아주 성공적인 그림”이라고 말한 것처럼 나중엔 완전한 몰입의 내면세계 상태에 치우쳐 순식간에 그린, 산과 물이다.
“퇴직 후 줄곧 경기도 여주작업실에 묻혀 지낸다. 이젠 조금 더 목표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쪽으로 몰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도 새로이 살아난다. 나의 그림이 심플하고 더 이상 발전할 데가 없다고 하지만 경지를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에 안주할 수 없다.”
남 눈치 안보고 산다는 것의 기적
김호득 화백은 1986년 관훈미술관에서 다소 늦게 첫 개인전을 가졌다. 먹과 채색, 아크릴 등 재료를 자유롭게 운용한 10년 동안의 작업을 한꺼번에 전시했다. ‘새롭다’, ‘특이하다’ 등의 반응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회화와 동양화를 전공했던 영향이 컸다. 경계라고나 할까, 한군데 소속되어지지 않은 애매한 지점에서 자신을 이끌어 간 산물이었다.”
1997년도는 그에게 기념비적인 전시로 기억된다. 금호미술관, 학고재, 아트스페이스서울 등 세 곳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광목에 수묵을 집중적으로 그린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9년 경북 영천 시안미술관1~3층 전관에서 평면과 설치작품으로 전시했다.
특히 3층엔 20m 대형수조에 먹물을 담아 천정에서 아래로 한지를 길게 늘어뜨려 조명을 비추면 벽에 물결영상이 일렁이는 설치작업으로 ‘함축과 응축의 동양적자연성을 드러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번 ‘산 산 물 물’개인전은 대구시 중구 동덕로, ‘갤러리 분도’에서 3월 26일 오픈해 4월 21일까지 열리고 있다. 1~3층까지 수묵화, 수조설치작품, 캔버스 아크릴 작업으로 총 25여점을 선보인다.
한편 봄비가 쌀쌀한 바람을 동반한 날씨였다. 경기도 광주시 소재 화백의 자택 인근서 만나 장시간 인터뷰했다.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어떻게 보면 남의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었다는 것만도 기적이다. 작가가 재료비정도만 들어와도 굉장히 다행스러운데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는 조절이 됐다. 살면서 항상 흔들렸지만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 대견스럽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