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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의 서재] “도덕 없이는 시장도 없다”…사상 최악의 불황에 소환된 ‘도덕’

정의로운 시장의 조건(매경출판사 刊)
  • <정의로운 시장의 조건> 표지. (모리타 켄지 지음/한원 옮김/매경출판사)
‘100억달러 수출, 1000달러 소득’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정부의 홍보 포스터 구호이다. 대망의 1980년이 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1인당 1000달러 소득을 이뤄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선전 포스터가 거리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 무렵 친구 하나가 전학을 왔다. 대개 낯선 환경에 주눅들고 서먹거릴 만하겠지만 그 친구는 활달하고 공부도 잘 한 편으로 기억된다. 그 친구와는 2년쯤 중학교 시절을 함께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지만 그 친구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택했다. 공부는 잘 하지만 사회에 일찍 진출하기를 바라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상업계나 공업계 고등학교를 지원해 진학하던 시절이었다.

그 후 필자가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4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얼굴을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교를 다녔던 일화를 풀어내며 과거를 회상했다. 임대해 살던 집은 임차료 문제로 점점 더 학교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그 친구는 버스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다른 성격의 그 친구에게 통학 길은 세상을 배우는 또 다른 거울이었던 것 같다. 차창 밖으로 투영된 바깥 세상의 일상은 그 또래의 다른 학생들이 체험하기 힘든 세계였다. 저마다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사람들의 대화, 생계의 현장인 상점의 모습, 볼 것 없던 시절 화려하게 채색된 극장 간판 등 모든 것들이 한 어린 소년에게는 흥미로운 공부거리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일본에 건너 가 자리를 잡은 그 소년은 이국 땅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비슷한 어린 시절의 환경을 경험할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국내 최고 은행의 은행장이 된 후 만나게 된 그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다.

그는 한국에 돌아 와 은행장이 된 후 18세기 일본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경제사상가의 책을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번역했다고 한다. 현직 은행장이 재직 중에 직접 짬을 내 번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친구로서 당연히 책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가 번역한 ‘정의로운 시장의 조건’은 이시다 바이간이라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의 경제사상가가 주창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그는 이타주의적 상도에서 밝혀낸 다섯 가지의 부의 원칙을 내세웠다. ▲고객은 정직하지 않은 상인에게 공감하지 않는다 ▲인생관과 일의 가치를 일치시켜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의무이자 본성이다 ▲자본의 논리와 조화를 이루는 도덕관을 확립하라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주인은 천하 만민이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원칙들은 경제활동을 도덕과 연계시킨 것이다. 특히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로 떠오른 것을 감안하면 그 혜안이 남다르게 보인다. 이익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유대인의 상술과 비교하면 동양의 유교철학을 반영시킨 그의 사상은 두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서도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온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교토의 상인이었던 이시다 바이간의 ‘석문심학’(石門心學)은 이시다 문파의 심학을 의미하는데 ‘사람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가’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단지 인간에 관해서만 고찰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의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직업군이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탐구했다.

바이간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사욕(私慾)을 비판하며 무욕(無慾)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경제 활동을 하는 인간의 마음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 목표가 완성되면 ‘자기 이익’ 만이 아닌 ‘세계 전체의 이익’이 달성된다고 믿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끌어들인다. 애덤 스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증대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바이간의 사상과 대척점을 이루는 지점이다. 석문심학에서 깨달음을 얻는 그의 사상은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 가업의 붕괴, 평생직장을 내세우던 기업의 변화 등 현대 일본 사회가 변해가는 상황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한국 사회에도 마찬가지다.

바이간은 평화를 실현하려면 개인이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가정이 바로 잡혀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역설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목표가 단순히 자기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체를 위한 공공의 이익을 지향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지금 한국 사회에 던지는 숙제이기도 하다.

역자나 필자 모두 격동의 시절을 겪으며 살아온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일상이 무너진 채 혼돈에 빠진 이 시기를 사는 현대인들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성장의 크기, 성과의 양만으로 개인과 기업을 평가해 온 우리들이다. ‘근면’, ‘검약’, ‘정직’을 인간 본성의 개념이라고 강조하며 시장의 원리를 설파한 이시다 바이간의 석문심학이 더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조상현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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