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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설강화’ 논란, 역사왜곡 VS 표현의 자유

방송중단 국민청원·상영금지가처분 신청·제작지원 철회 등 잇단 논란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JTBC 주말드라마 ‘설강화’(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작품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방송 중지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제작 지원 철회 등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지만 방송사는 정면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JTBC는 ‘초반 전개에서 오해가 비롯됐다’며 24~25일 3일간 특별 편성을 통해 당초 주 2회 편성됐던 작품의 편성 횟수를 1회 늘렸다. 예정보다 빠르게 드라마를 방송해 논란의 불씨를 없애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역사왜곡 논란은 방송 전부터 일던 터라 좀처럼 수그러들기 어려워 보인다.

‘설강화’ 방송중지 청원 34만 동의…상영금지가처분 신청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임수호(정해인 분)와 그를 치료해준 여대생 은영로(지수 분) 사이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사전제작물로 촬영은 이미 완료된 상태다.

논란은 이미 지난 3월부터 불거졌다. 제작 단계에서 시놉시스 일부가 유출되면서 민주화 운동 폄훼o간첩 활동·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미화 등의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설강화’는 극중 안기부 요원들에게 쫓기던 남파간첩 임수호를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한 여대생 은영로가 구해주며 시작된다. 이에 간첩이 미화된 모습으로 대학생들과 친밀하게 어울리는 점, 안기부 직원이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된 점 등이 역사왜곡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지난 3월 ‘설강화’ 촬영을 중지시켜달라는 내용이 올라와 22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당시 청와대는 “창작물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에 대한 민간의 자정 노력 및 자율적 선택을 존중한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도 지난 18일 첫 방송한 이 작품은 방송 후 더욱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극중 여주인공이 남파간첩을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해 구해준 점과 안기부 직원과 간첩을 연기하는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민주화 운동 당시 불린 노래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배경 음악으로 쓰인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방송 후 지난 20일에는 ‘설강화 방송중지 청원’이 올라와 24일 현재 34만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없이 간첩으로 몰려서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것은 분명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며 “민주화 운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승리를 역설하는 노래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1980년대 안기부를 연기한 사람과 간첩을 연기하는 사람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 자체가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설강화’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해외로 공개된다는 점을 들어 “다수의 외국인에게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며 방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의 비판도 이어졌다. 이현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지난 20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인터뷰에서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1987년 민주화운동 중 경찰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회다.

이 국장은 “(1980년대에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기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은폐될지 모르는 상황에 항상 노출돼 있었다”며 “안기부는 민주화운동을 하거나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을 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아직도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이런 키워드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자체에 걱정이 컸다”고 지적했다.

  •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 JTBC 드라마 '설강화: snowdrop'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년단체인 세계시민선언은 지난 2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설강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단체 측은 “법원이 설강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함으로써 방송이 희생당한 시민들에 대한 모독행위를 할 수 없게끔 중단시키고, 사회에 국가폭력을 더는 용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길 강력히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간첩이 우리 내부에서 활약하며 민주화 인사로 오해를 받는 장면을 삽입해 과거 안기부가 민주항쟁을 탄압할 당시 ‘간첩 척결’을 내걸었던 것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체는 “이는 군부독재에 온몸으로 맞선 이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군부독재 국가들에 세월이 지나면 자신들의 국가폭력 또한 미화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성난 여론에 드라마를 협찬한 제작지원사는 대부분 ‘설강화’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푸라닭, P&J, 다이슨 등은 모두 논란 직후 지원 철회를 선언했다. 중소규모 협찬사들도 ‘설강화’ 측에 방송 자막 삭제와 제품 노출 중단을 요청했다. 광고사들도 다수 빠진 데 이어 경동나비엔, 쿠쿠전자 등도 추가적으로 ‘설강화’ 광고 편성을 철회했다. 푸라닭은 지난 20일 홈페이지에 “제작사와 방송사에 설강화와 관련된 일체 제작 지원 철회와 광고 활동 중단을 요청했다”며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공식 사과입장까지 밝혔다.

JTBC, 정면돌파 입장 고수…“민주화 운동 폄훼 없었다”

JTBC는 정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JTBC는 지난 21일 입장문을 통해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됐던 간첩이나 민주화 운동 폄훼는 없다는 주장이다.

JTBC는 “‘설강화’에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지난 1, 2회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또 “현재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신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며 3회 특별 편성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논란의 이유가 초반 전개에서 오해가 비롯된 것이라고 못박으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방송을 예정보다 앞당겨 특별 편성하기로 했다”고 한 것이다.

한편, ‘설강화’가 불러온 논란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설강화’ OST에 참여한 가수 성시경은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한 목소리를 냈다. 진 전 교수는 지난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쪽에서는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고 난리를 치고, 다른 쪽에서는 간첩을 미화했다고 국보법으로 고발을 한다”라고 말문을 연 뒤 “둘 다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봐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다. 그 초석을 흔드는 자들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라며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시청자들의 권리를 자기들이 침해해도 된다고 믿는 건지…”라고 밝혔다.

성시경은 유튜브 방송에서 ‘설강화’ 논란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그는 “몇 번에 몇 번을 확인했지만 문제가 없었다”라며 “방송이 되면 알겠지만, 그런 내용이 아닌 걸로 저도 확인했다. 만약에 역사왜곡 드라마라면 그게 방영이 될 수 있을까 싶다”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다수가 옳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뭔가 ‘저런 의견이 있구나’ ‘어떤 사정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르면 ‘죽여버리자’라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강화’ 기대했던 디즈니플러스 ‘난감’

‘설강화’를 JTBC와 함께 동시 방송중인 디즈니플러스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디즈니플러스는 JTBC와 ‘설강화’를 본 방송 이후 공개하는 형태의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었다. 자체제작 콘텐츠는 아니지만 현지 특화된 콘텐츠 수급이 필요했던 디즈니플러스가 선택한 첫 한국 드라마가 ‘설강화’였던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디즈니플러스는 논란에 대해 내부 확인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SBS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2화 만에 편성 폐지된 사례가 있는 만큼 디즈니도 이번 논란을 신중하게 검토하자는 분위기기 존재한다는 것이다.

디즈니플러스가 공급하는 첫 한국 드라마인 만큼 외신에서도 ‘설강화’ 논란을 주목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2일 ‘블랙핑크의 지수와 D.P의 정해인이 정치적인 내용으로 중단될 위험이 있는 논란의 디즈니플러스 K-드라마 ’설강화‘에 출연 중'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다뤘다. 방송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30만 명 넘게 방송 중단을 요청하고 제작지원사들이 지원 철회를 한 내용도 소개했다. SCMP는 “1980년대 (한국) 학생 운동은 잔인한 탄압을 받았다”며 “작가와 감독은 ‘설강화’가 픽션이며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시위가 들끓었던 1987년을 배경으로 간첩, 정치인, 시위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픽션이라 보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BBC코리아 역시 ‘설강화: K-드라마, 창작의 자유와 역사 왜곡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작품에 대해 민감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면서 고증 없는 낭만만 그려냈다는 점, 피해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건임에도 간첩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대본을 쓴 점, 제작진은 ‘의도가 없었다’라며 무마하려는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작단계에 이어 방송직후부터 역사왜곡 논란에 직면한 ‘설강화’가 JTBC의 주장대로 ‘초반 전개에서 비롯된 오해’일지, 들끓는 비판 여론 속에 불명예로 마침표를 찍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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