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함께 출범, 70년 현대사와 부침 같이해… 시류따라 '흥망사' 명암해방 후 적산 기업 기반 산업 등장… 식품·생필품·의약품·건자재 주축동아건설·해태제과 부도… 아모레퍼시픽·한진·SPC·크라운 해태 호조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전신인 태평양화학 전경(좌측)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그룹 본사 전경(우측)
1945년 설립된 기업들이 올해 광복 70주년과 함께 칠순을 맞았다. 광복 직후 '해방둥이 기업'들은 맨손으로 시작해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군사정권, 1990년대 외환위기 등 정치·경제적 위기 속에서 흥망성쇠를 겪어 왔다.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기업은 대략 20여개 정도다. 이들 중 현재까지 성장세를 이어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쇠락해가는 기업도 있고, 일찌감치 사라진 기업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흥하고 망했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방둥이' 기업들의 흥망사를 살펴봤다.

1945년 출범 기업 초기는

1945년 일제강점에서 갓 벗어난 당시는 모든 산업이 일시 정지돼 아수라장이었다. 이로 인해 '해방둥이 기업'들은 광복과 동시에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가져가지 못한 시설을 기반으로 식품, 생필품, 의약품, 건설ㆍ건자재 등을 제조하는 사업이 주를 이뤘다.

한진그룹 70년의 시발점이 된 한진상사의 인천 창고와 트럭(좌측)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진그룹 본사 정경(우측)
광복 직후 전 국민이 굶주리던 당시에는 식품 사업이 인기를 끌었다. 황해도 옹진군에 상미당(현 삼립식품), 서울 용산구에 해태제과합병회사(현 해태제과) 외에도 고려당, 뉴욕제과, 태극당이 문을 열어 국내 제과ㆍ제빵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생필품 분야에서는 태평양화학공업사(현 아모레퍼시픽그룹)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고(故) 서성환은 모친이 만들어 판매했던 동백기름, 미안수(스킨), 구리무(크림)을 기반으로 해방 직후 메로디크림을 출시해 판매돌풍을 일으키며 오늘날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1945년에 세워진 회사 중에는 제약 업종 기업이 많았다. 국내 최초로 포도당 수액을 생산한 조선중외제약소(현 JW중외제약), 창립 후부터 대표 상품인 우루사 개발에 힘써 온 대한간유제약공업(현 대웅제약)과 조선약품화학공사(현 대한약품), 보건제약소(현 삼아제약)이 등장했다.

산업화를 이룩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났다. 건설사업과 부대사업으로 등장한 건자재 제조업, 기계제조업 등이 적산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마련됐다. 건설 분야에서는 충남토건사(현 동아건설), 삼화토목(현 화성산업)이 개업했다.

또한 페인트가게에서 시작해 이후 제비표페인트로 유명해진 남선도료상회(현 건설화학공업), 공업용 고무벨트인 V벨트를 생산한 동일고무화학공업사(현 DRB동일), 수입 승강기 설치에서 시작해 화물용 승강기 생산까지 나아간 서울승강기공업사(현 한국승강기주식회사)가 있다.

중국 상하이의 번화가인 화이하이중루에 위치한 바이성 백화점의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매장 전경. /=연합뉴스
한편 시작은 미미했으나 사업 다각화를 통해 사세를 확장한 회사들도 눈에 띈다. 한진상사(현 한진그룹)는 고(故) 조중훈이 트럭 한 대로 중국에서 건너온 생필품을 실어 나르면서 시작됐다.

대한오브세트잉크(현 노루페인트)는 설립 당시 인쇄잉크를 제조하는 회사에서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선박, 자동차 등 국내 중화학공업이 발전하자 점차 건축용, 선박용, 자동차용 도료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이외에도 농업용기계제조업체인 진영철공(현 진영종합기계), 가위 제조업체인 동양기업(현 헤가코퍼레이션), 선박 제조ㆍ수리업체인 대선철공소(현 대선조선), 서적출판업체인 을유문화사, 액자제조사인 남광사가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해방둥이 기업들 '빛과 그림자'

해방둥이 기업들은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군사정권에 따른 정치 바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하거나 반대로 쇠락하거나 사라졌다.

한진그룹 본사 전경. /=연합뉴스
오늘날 대기업으로 성장한 한진그룹과 태평양화학은 위기를 극복하고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고, 삼립식품과 해태제과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국내 손꼽히던 건설사인 동아건설은 끝내 몰락했다. 중소 규모 기업들은 외풍에 흔들려 축소되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특히 1997년 국내에 불어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ㆍ합병될 당시 해방둥이 기업들 역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국내 최초의 승강기 전문 업체인 한국승강기주식회사(서울승강기공업사)는 초기에 미국 승강기 업체인 오티스(Otis) 사의 승강기를 미국 대사관, 중앙청, 반도호텔, 조선호텔, 미군 건물 등에 설치하는 작업을 맡았다. 1948년 한국승강기제작소로 개명한 후 승강기 제작을 시작했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1960년대 5개년 경제계획과 맞물려 고가의 수입산 대신 국산승강기 설치를 원했던 공장 시공자들 덕분에 수요가 넘쳤다. 이후 한국승강기제작소는 화물용 승강기 생산에 전념했다.

고려제강은 무역회사로 어군(魚群)탐지기, 와이어로프 등 수입산 수산 장비를 유통하며 부산에서 자리 잡았다. 와이어로프 수요가 늘어나자 1961년 고려제강소를 세운 뒤 직접 와이어로프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부터는 교량 금속선 생산에 집중했다.

DRB동일 또한 부산에서 출범해 해외에까지 수출하는 기업이 됐다. 해방 직후 공업용 고무벨트인 V벨트 생산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는 컨베이어벨트, 평벨트 등을 생산·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수출하는 정도로까지 사업을 일찍이 확장했다.

SPC그룹 본사 전경.
JW중외그룹(중외제약)은 국내 최초로 혈관에 투여하는 5% 포도당을 국산 생산해내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고 독보적인 기술을 축적했다. JW중외그룹은 1992년 국내 최초의 한ㆍ일 합작 연구소인 C&C신약연구소를 설립했고,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JW Theriac 연구소' 등을 통해 한ㆍ미ㆍ일 글로벌 연구개발(R&D) 네트워크를 구축 등을 통해 신약 개발로 세계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국내 처방약 시장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인도 중국 등 24시간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규 제품과 신약 개발로 세계 시장을 향하고 있다. 2001년 국내 신약 2호이자 국내 바이오 신약 1호인 '이지에프'로 국내 바이오신약의 포문을 열었고, 5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보톡스 대체 의약품으로 개발한 '나보타(NABOTA)'로 60여 개국에서 약 7,0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 실적을 올렸다. 대웅제약은 2020년까지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가 몰락한 동아건설과 해태제과가 있다. 전 세계 시공능력평가 49위 건설사로 선정됐던 동아건설은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동아건설은 1970년대 중동 특수를 맞아 1975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후 1983년 세계 최대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로 위상을 높인 바 있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1998년 9월 워크아웃 1호 기업으로 선정돼 계열사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자 2000년 11월 최종 부도 처리돼 한때 재계 10위 자리를 지키던 그룹이 2001년 5월 해체됐다.

동아건설은 2008년 프라임그룹에 인수됐다. 이후 프라임그룹이 추진하던 한류월드 1·2구역, 차이나타운 개발사업 등을 수주했으나 사업이 중단되고 재정 악화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난해 7월 다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바게뜨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 진출한 SPC그룹의 파리바게뜨 샤틀레점 전경. 사진=SPC그룹제공
부라보콘, 홈런볼, 오예스 등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던 해태제과는 1997년 11월 부도를 맞았다. 한때 재계 24위에 오르며 해태제과를 포함한 해태음료, 해태중공업 등 계열사 7개를 거느리고 있던 해태그룹은 비식품분야 사업 확장으로 적자가 발생하면서 자금난을 겪었다.

해태제과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8년만인 2005년 10월 크라운제과에 인수됐다. 각자 역사가 다른 두 회사였기 때문에 조직 융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이 조직화합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윤 회장의 노력 덕분인지 해태제과는 2014년 기준 매출액 1조841억원을 기록하며 제과업계에서 순항 중이다. 특히 지난해 8월 출시된 허니버터칩이 출시 3개월만에 매출 50억원을 돌파하는 등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데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시련 속 탄탄대로 기업은

숱한 고비 속에서도 국내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며 대를 이어 번영을 누리는 해방둥이 기업들도 있다. 국내외에서 불어 닥치는 반복적인 경기 침체에 생산ㆍ소비ㆍ수출에 비상이 걸려도 차별화된 기술력과 서비스로 국내외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1994년 6월 3일 준공 당시 제과 업계 동양최대 규모를 자랑한 해태제과 천안 공장 전경. 2005년 해태제과는 크라운제과에 인수됐다.
해방되던 해 태평양화학공업으로 출발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은 K뷰티의 선봉장으로서 글로벌 화장품 회사 등극이 머지않아 보인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이어가며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매출 4조7,11억원, 영업이익 6,591억원을 기록,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주가는 지난달 2일 종가 기준으로 44만5,000원까지 치솟은 바 있다. 이때 서경배 회장(12조804억원)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1조8360억원)을 제치고 국내 주식 부호 1위에 올라서 화제를 낳았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지속적인 수요 상승세에 따라 2015년에도 아시아 시장 개척에 집중할 계획이다. 서경배 회장은 지난 1월2일 신년사를 통해 5대 글로벌 브랜드(설화수·마몽드·라네즈·에뛰드·이니스프리)를 아시아 뷰티 시장에 확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삼립식품 또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준비 태세를 마쳤다. 삼립식품은 1997년 5월 어음 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나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법정 관리에 들어간 삼립식품을 고(故) 허창성 창립주의 차남인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002년 901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후에도 삼립식품의 경영 정상화는 힘겨웠다. 빵 판매 실적은 2010년까지 부진했다. 삼립식품은 1999년 국찐이 빵 이후 이러다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한 채 샤니, 서울식품, 기린 등의 경쟁사에 밀리고 있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2011년 삼립식품과 샤니의 합병을 결정했다. 허 회장이 소유한 계열사들인 삼립식품(Samlip)과 샤니(Shany)를 의미하는 S, 파리크라상(Paris Croissant)의 P, 동료(Company)를 의미하는 C를 합쳐 SPC그룹을 출범시켰다.

삼립식품은 합병 후 샤니의 영업 부문을 넘겨받으며 사업 부문이 상당수 재정비됐다. 그 결과로 매출액은 2012년부터 반등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삼립식품은 카카오프렌즈 빵, 미니언즈 캐릭터 빵, 라인프렌즈 빵 등으로 매년 향상된 영업실적을 내고 있는 추세다.

삼립식품은 기존 제빵 사업 이외에 밀다원(제분)·에그팜(계란)·알프스식품(육가공) 등 자회사를 앞세운 식품소재사업을 통해 종합식품회사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파리바게뜨가 프랜차이즈 규제로 성장 한계에 직면하면서 그룹 내 성장의 주요 축이 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식자재 유통사업 부문을 분할해 식품유통법인 삼립GFS를 출범시키며 식자재 유통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해태제과는 제과업계에서 1위를 탈환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존의 짭짤한 감자칩에서 벗어나 달콤한 감자칩이라는 인식의 전환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허니버터칩 덕분에 과거의 불명예를 씻어냈다.

크라운ㆍ해태제과 그룹은 2015년에도 허니 열풍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이다. 지난 1월5일 허니통통과 자가비 허니 마일드 2종을 출시해 국내 제과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며 전국민의 '허니버터' 앓이를 이끌어냈다.

더불어 해태제과는 내년 4월부터 허니버터칩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현재 강원도 원주시 문막에 해당 공장을 증설 중이다. 크라운·해태제과그룹 측은 공장 증설이 완료되는 4월 이후 허니버터칩의 연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망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주요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함께 국내 선도 그룹으로 입지를 다지는데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12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국내 대표 운송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재계 9위에서 올해 10위로 한 단계 격하됐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구속됐을 때 브로커에서 편의 제공을 약속받고 대가를 지불한 정황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악재에도 불구하고 주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최근 유례없는 저유가로 영업이익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한진그룹의 지주사 전환 작업이 마무리되면 주가 상승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업계의 전망이다.



윤소영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