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삼성물산, '이재용 시대' 여는 견인차 되나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 외벽에 비치는 삼성물산 깃발 사진=연합
2020년 매출액 60조원 목표… 신규 먹거리 '바이오' 집중 예정
최대 과제는 건설과 상사, 패션과 리조트·건설 4개 부문 시너지 효과
이재용 부회장, 대주주 올라서며 경영권 강화
'이재용 시대' 안착 위해 경영실적 내고 삼성전자 지배력 높여야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의 합병 절차를 마치고 9월부터 '통합 삼성물산'으로 새로운 출발에 나선다.

'뉴 삼성물산'은 2020년 매출액 6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달성을 위해 삼성물산은 조직 간 융합과 함께 바이오 분야 확장 등 신성장 동력 발굴에 전력을 다하게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통합을 성공시키면서 이건희 회장의 뒤를 잇는 삼성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병석에 있는 이건희 회장의 부재를 대신해 각종 대외활동에 나서면서 사실상 삼성 3세대 경영 시대를 이끌고 있다.

건설 최치훈 사장, 초대 이사회 의장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
'뉴 삼성물산'은 지난 9월 1일부로 공식 출범했다. 합병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통합으로 시너지 창출 및 주주와의 적극적 소통으로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며 이를 통해 2020년까지 매출 60조원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분간 삼성물산은 건설과 상사, 패션과 리조트ㆍ건설의 4개 사업 부문을 유지한다. 건설에 최치훈 사장, 패션에 윤주화 사장, 상사에 김신 사장, 리조트ㆍ건설에 김봉영 사장 대표 체제로 운영된다. 영역이 다른 4개의 사업 부문이 뭉쳤기 때문에 삼성물산은 전사조직을 신설하고 4개 부문의 CEO가 참석하는 시너지 협의회를 운영해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협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통합 삼성물산은 지난 2일 공식 출범식과 함께 초대 이사회 의장으로 건설 부문의 최치훈 사장을 선출했다. 최 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합병으로 성장성과 안정성을 갖춘 균형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고 바이오를 포함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초일류 기업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출범식 전 이사회를 통해 기존 제일모직의 윤주화 패션부문 사장, 김봉영 리조트ㆍ건설 부문 사장, 삼성물산의 최치훈 건설부문 사장, 김신 상사부문 사장 등 4명을 통합 삼성물산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합병 삼성물산의 최대 과제는 서로 다른 네 개의 사업 부문의 시너지 효과 창출이다. 최치훈 사장 역시 이사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삼성물산의 최우선 과제로 조직 간 시너지 창출을 꼽은 바 있다. 이를 위해 조직의 슬림화와 더불어 중복된 사업 분야의 정리 가능성이 유력하게 꼽힌다.

삼성물산의 건설 부문과 제일모직의 리조트ㆍ건설 부문에서 중복되는 사업 분야를 정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기도 했다. 삼성물산의 건설 부문은 해외 플랜트 수주를 비롯해 국내 초고층빌딩을 비롯해 도로, 항만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건설 분야를 도맡고 있다. 과거 제일모직에 있었던 리조트ㆍ건설 부문의 경우 공장, 사무실 리모델링, 병원 등을 비롯해 군대 내무반 등 다양한 건설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건설'이라도 개별적 분야는 다른 것으로 알려져 현재로서는 각자 사업 부문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건설시장 불경기에 따라 삼성물산의 주요 사업 부문인 건설의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7.76% 급감했다. 특히 해외 건설시장의 경우 유가 하락으로 인한 중동 지역 대규모 프로젝트 취소 및 연기, 중국 업체들의 저가 수주, 우리나라 건설 업체들끼리의 치열한 경쟁으로 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환경 탓에 향후 건설 부문의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삼성물산은 이에 따라 해외 건설 수주에서 사업 영역이 겹쳤던 삼성엔지니어링과 컨소시엄을 결성하는 방법으로 해외 건설 시장의 난국을 헤쳐 나가고 있다.

신규 먹거리 찾아라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또한 요구된다. 통합 삼성물산은 2020년까지 매출 60조원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의 매출액은 33조7,000억원이었다. 약 5년후에 6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건 매년 10% 씩 성장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바이오로직스 지분 46.3%를 보유한 제일모직과 지분 4.9%를 보유한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 주주가 됐다. 삼성물산은 바이오 분야의 2020년 매출액 목표를 1조8,000억원으로 잡았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의약품 생산사업을 위한 공장 두 곳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경우 내년 상반기 중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뉴 삼성물산'은 향후 미래 동력으로 바이오 사업 발전을 선포한 만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한 이익 창출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합병 과정에서 미국 헤지펀드 ??리엇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소액 주주들을 일일이 찾아가는 등, 설득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주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합병 성공 후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주가가 하락해 주주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특히 삼성물산 합병의 일등 공신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KCC의 손해가 막대해 보인다. 7,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들여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입한 KCC는 주총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수천억원대의 평가 손실을 보게 됐다. 소액주주들의 항의가 빗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반감을 의식한 탓인지 삼성물산 측은 "주주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해 투명하고 신뢰받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또 주주권익보호를 위한 거버넌스 위원회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CSR위원회를 신설한다. 2일 이사회를 통해 통합 삼성물산은 대표 및 이사회 의장 선출과 주주권익 보호를 위한 거버넌스 위원회, 주주와의 소통 강화 및 가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CSR위원회 설치를 의결했다.

합병으로 삼성물산은 사실상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또 이재용 부회장→통합 삼성물산→삼성전자ㆍ삼성생명→기타 계열사라는 지배구조로 정리됐다. 동시에 삼성물산은 시가총액 3위로 뛰어 올랐다. 8월 31일 종가를 기준으로 제일모직의 시가 총액은 24조원이다. 여기다 거래가 정지된 삼성물산의 시가총액 7조5,000억원을 합하면 '뉴 삼성물산'의 시가 총액은 31조5,000억원에 달하게 된다.

합병 삼성물산은 등기가 끝나면 9월14일 신주가 교부되며 다음날인 9월15일부터 신주가 상장된다.

삼성, '이재용 시대' 여나

이번 통합 삼성물산의 탄생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단은 안정된 후계 구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우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16.54%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 부문 사장이 5.51%, 부친 이건희 회장은 2.86%를 보유해 삼성 총수일가는 삼성물산에 대해 총 30.4%의 지분을 갖게 됐다. 아버지와 동생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갖게 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을 지배하게 되는 삼성물산의 최대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그룹에서의 영향력이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1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와중에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삼성 3세대 경영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8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전염된 메르스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병환 중인 이건희 회장의 부재를 대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희 회장이 스포츠 외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처럼 이 부회장 또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의 오찬을 시작으로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행보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만난 이 부회장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지원 방안을 논의하며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평창동계올림픽 지원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번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향후 삼성을 이끌어갈 차기 리더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병을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앨리엇과의 대결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소액 주주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는 정성과 '외국계 자본 먹튀'라는 프레임을 내세우며 예상보다 쉽게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 부회장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남아 있다. 삼성물산 대주주로 올라서며 지분은 확보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이뤄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2020년 매출액 60조원이라는 목표를 세우기 위해 합병 삼성물산의 각 사업 부문을 정상화 궤도에 올려 놔야 한다. 기존 사업들의 시너지 효과론 수익을 올리기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삼성물산의 주력 분야인 바이오 사업을 전두지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입은 주주들에게 눈에 보이는 경영 실적 성과를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는 점도 부담감으로 작용하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성과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 관측했다.

경영권 승계 측면에서만 보면 일단 이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인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인다면 삼성은 좀 더 빠른 시기에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는 분석이다. 또한 합병 과정에서 '애국심 마케팅'을 내세운 탓에 투명한 상속세 납부,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기여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도 떠안게 됐다. 3세대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면서 1,2세대가 가진 '제왕적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이재용 부회장에겐 불리한 요소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