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살리기, 용선료 인하 승부

현대증권 매각 통해 ‘급한 불 끄기’… 용선료 인하에 사활 걸어

용선료 문제는 미봉책… 해운시황 살아나야 근본적 해결

지난 2년간 계속돼 온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살리기’가 현대증권 매각으로 8부 능선을 넘게 됐다.

잠시 숨을 고르게 됐지만 아직까지 현대그룹의 자구책 마련은 끝나지 않았다. 특히 2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용선료 인하에 현대상선은 사활을 걸고 있다. 한창 해운시황이 호황일 때 책정된 용선료는 현대상선 매출액의 30%라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용선료를 조금이라도 인하하는 게 현재 현대상선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해운 시황 회복이 중요하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해상 운임으로 선사들의 적자 운항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새 주인 만났으나 ‘갈 길 멀어’

지난달 31일, KB금융지주가 현대증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현대증권의 새 주인으로 낙점됐다. 이번 매각 대상 지분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22.43%와 기타 주주 몫 0.13% 등 총 22.56%다.

이로써 현대그룹은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자구책 마련을 어느 정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현대증권 매각건의 경우, 지난해 일본계 금융자본 오릭스가 인수하려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다. 당시 실패로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안이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현대증권 매각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본계약 체결 및 정밀 실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을 거쳐 하반기 중 최종 완료될 예정이다. 때문에 매각 대금은 당장 돌아오는 만기 채무 상환에는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증권 매각 대금 전액은 산업은행과의 협의 하에 현대상선의 운영자금으로 우선 활용함으로써 자구안 완료 이후 사업 정상화와 재무구조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여러 자구책을 마련했다. 이번 현대증권 매각건을 비롯해 벌크전용선사업부, 부산항만터미널 지분을 매각했으며 현정은 회장의 300억 사재 출연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했다. 또 현대아산과 현대증권 등 보유지식 매각 및 담보 대출을 완료했다.

남아 있는 구조조정안 중 핵심은 용선료 인하다. 현대상선은 지난 2월부터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용선료는 해운업이 호황이던 시기에 측정된 것이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해운 시황이 좋았던 2010년도에는 8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하나를 말한다)급 컨테이너선의 용선료가 하루 당 5만달러였는데 현재 동형 선박의 용선료가 6000~7000달러까지 하락했다.

현재 현대상선은 선박 116척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중 사선이 33척, 용선이 83척이다. 현대상선은 그리스, 일본 등 선주들과 지난 2월부터 용선료 인하에 관한 협상에 들어갔다. 현대상선 매출액에서 용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액 5조7685억원의 32%인 1조8793억원을 용선료로 지출했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 역시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상선은 남은 용선료 조정 및 채무 조정 등에 대해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사즉생의 각오로 총력을 다할 것이다. 선주, 채권단, 사채권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이 제시한 용선료 협상 기한은 4월 말이다. 외국 선주들과의 용선료 협상을 4월까지 마치는 것을 목표로 후속협상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비협약채권의 채무조정을 위해서는 올해와 내년에 만기도래하는 전체 공모사채들을 대상으로 일괄 사채권자 집회를 6월경 개최해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현대상선 측은 “회사의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과 함께,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조정, 협약채권자 채무조정 등 정상화방안의 3가지 핵심 축이 모두 해결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한편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매각으로 인해 또 하나의 계열사를 떠나 보내게 됐다. 한 때는 재계 1ㆍ2위권에 있었지만 ‘왕자의 난’을 거치며 현대자동차를 계열분리했고,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원을 위해 현대증권까지 팔게 된 것이다. 여기에 남북경제협력 사업 중단으로 금강산 관광 등이 중단되면서 현대아산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질 기미 안 보이는 해운시황

현대증권 매각으로 실탄을 챙기게 됐지만 아직까지 현대그룹의 기상도에 해가 뜰 날은 멀어 보인다. 용선료 협상이 현대상선의 의지대로 풀릴 지도 미지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용선료 인하가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기업평가는 ‘해운, 2차 치킨 게임의 서막’ 보고서를 통해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성공하더라도 현대상선이 추가적인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임시 방편이 될 것이라 분석했다.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상선이 용선료의 20~30% 인하에 성공한다면 컨테이너부문에서 소폭의 영업이익을 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선박 비용 등 고정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상선의 원가 구조상 용선료 인하는 실적 개선을 위한 필수적 요인이다. 하지만 용선료 인하는 실적 개선 및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용선료 인하도 말처럼 쉬운 카드는 아니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 타 선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선주들이 쉽사리 현대상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건은 해운시황이 얼마나 회복될지 여부다. 한국기업평가 또한 해운시장이 상승세를 타지 않는 한,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카드 또한 임시 방편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특히 운임의 경우, 선사의 매출액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세계 경기 침체와 초대형 선박 투입으로 컨테이너 시장의 운임은 날로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기준으로 상하이-유럽 간 컨테이너 운임은 TEU당 339달러로 집계됐다. 선사 관계자들은 통상 아시아-유럽 노선에서 1000달러는 돼야 겨우 ‘본전’이라 말한다. 현재 운임으로는 어림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선사들은 화주들에게 매달 초마다 운임인상(GRI)을 통해 떨어진 운임을 끌어올리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어 보인다.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을 비롯한 대형 선사들은 얼라이언스 동맹 결성을 통해 불황을 이겨내고 있다. 해운시황 회복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언제까지 국내 선사들이 시황 회복을 기다릴 수는 없다. 이미 대형 선사끼리 공동 운항을 통해 얼라이언스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 악화는 자칫하면 얼라이언스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주고 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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