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사위’의 혁신 또 성공할까

정태영 부회장 ‘점심시간 폐지’ 카드 꺼내

기존 근태중심 대신 성과중심주의 채택…실적 거둘까

오너가 일원이라 가능한 행보라는 지적도 나와

파격적 행보로 눈길을 끌었던 정태영 현대카드ㆍ현대캐피탈 부회장이 이번엔 점심시간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은 대략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로 고정돼 있다. 하지만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점심시간을 폐지함으로써 직원들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식당이 가장 바쁜 시간에 내려가 대기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공식적으로 보장된 쉬는 시간이 사라져 더 불편할 것이라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만약 정 부회장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여타 다른 기업에서도 이를 도입할지 주목된다.

정 부회장은 점심시간 폐지 전에도 PPT 제로화, 승진연한 2년으로 감축 등을 통해 근태 중심 업무에서 성과 중심 업무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고민은 있다. 2010년 이후 침체되고 있는 실적과 나날이 떨어지는 카드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정태영의 혁신 카드에 찬반 논란

직원들의 업무 능력 향상과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위해 일부 대기업들은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이어 점심시간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먼저 변화의 카드를 내놨다. 지난달 28일 정태영 현대카드ㆍ현대캐피탈 부회장은 자신의 개인 SNS에 “12시부터 1시라는 획일적인 점심시간을 없애고 언제나 자유롭게 식사를 하거나 쉬도록 제도를 변경. 같이 움직이는 공장이라면 모를까 사무직이 동일한 식사 시간에 우르르 몰려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 사내 식당들은 교대 대응하도록 오픈 시간을 변경하고 헬스클럽은 종일 운영. 생각해보며 별 것 아닌데 오래된 관습을 하나 하나 바꾸는데 시간이 걸린다”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정 부회장은 이에 대해 “근태 중심에서 업적 중심관리로 서서히 이동하는 과정”이라 덧붙였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지난 2일부터 점심시간 폐지를 도입했다. 직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현대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직원들은 점심시간 폐지 전부터 열한시 반부터 한시까지 원하는 시간 1시간을 점심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점심시간 폐지 전부터 다소 유연하게 점심시간을 활용했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12시부터 1시까지로 획일된 점심시간을 폐지하면서 식당이 붐비지 않는 시간에 직원들이 유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큰 장점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우리 나라의 기업 문화에 비춰봤을 때 만약 팀장급이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면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라는 공식적인 휴식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직원들이 은행이나 병원 등 볼일을 보러 가는 것 또한 눈치가 보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또 업무를 바쁘게 보다 보면 쉬는 시간 없이 인스턴트 등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점유율 하락은 현대카드의 고민거리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카드의 혁신적 마케팅으로 늘 주목을 받아 왔다. 기존 금융권의 딱딱한 이미지와는 달리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하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현대카드에 유연한 근무 문화를 도입하며 실적 향상을 주도해 왔다. 지난 2014년에는 ‘제로 PPT 캠페인’을 통해 보고 시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보고자료 디자인을 위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막자는 게 캠페인의 취지였다. 이 캠페인으로 인해 현대카드의 PPT 보고 문화가 다소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지난 3월, 정 부회장은 다시 한 번 PPT금지를 강조하는 게시글을 개인 SNS개정에 올리기도 했다.

승진 연한을 축소한 것도 정 부회장의 작품이다. 현대카드ㆍ캐피탈은 기존 4~5년이었던 승진 연한을 2년으로 줄여 능력을 갖춘 직원이 빨리 승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이는 정 부회장이 강조해 왔던 성과 위주 평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또 현대카드는 근무 시간 내에 일을 끝마칠 것을 강조해 불필요한 야근을 지양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부서별로 퇴근 시간을 확인해 제 시간에 퇴근하는 부서를 독려하면서 직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NS를 통해 소통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번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점심시간 폐지가 화제가 된 것 또한 정 부회장의 게시글을 통해서였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결정이 다 되고 시행을 앞둔 시기에 (정 부회장이) 게시글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내부 문화뿐만이 아니라 정 부회장은 취임 후 현대카드의 실적 성장을 주도한 것도 눈에 띈다. 현대카드는 지난 2010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 3708억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러한 과감한 마케팅과 조직 문화 혁신은 정태영 부회장의 위치가 월급 CEO가 아닌 오너가 사람이라는 데서 기인했다. 좀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태영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의 셋째 사위이다. 오너가의 일원으로서 월급 사장들과는 달리 장기적으로 경영 임기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파격적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태영 부회장은 지난 2003년 현대카드에 취임한 후 10년째 자리를 지켜 카드 업계의 큰 형님으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파격 행보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이 줄고, 실적도 부진하다는 점은 정 부회장의 발목을 잡는다. 체크카드 위주의 소비 패턴 변화로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은 2010년 이후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해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은 10.4%, 총이용액 70조원으로 총 10.5%의 점유율을 차지한 농협카드에 밀려 5위로 밀려났다.

여기에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해 카드 업계 전체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카드업계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해 연간 6700억원의 수익이 감소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안팎으로 카드 업계가 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정 부회장의 ‘성과주의’ 행보가 얼마나 수확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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