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없는 삼성, 누가 선장 되나

김상조 “삼성 이재용·최지성·장충기·김종중, 4인 지도체제”

김종중 “김상조의 오해, 4명이 회의한 적 없어”

4인 중 유일하게 기소되지 않은 김종중, 내부사정 훤히 꿰뚫어

김종중의 물밑 조언 가능성 제기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 3월 초 특검 수사를 마치며 “삼성 관련 재판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갖게 될 세기의 재판의 될 것”이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박영수 특검이 공언했던 ‘세기의 재판’의 1 라운드 승자는 결국 특검이 차지했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지난 3월9일 1차 공판준비기일 이후 169일 만에 나온 1심 결론이다.

앞서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는 징역 12년, 최 전 실장 등 4명에 대해서는 징역 10~7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승마지원 관련된 뇌물부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인식하고 정유라 지원을 요구했다”며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은 승계작업에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뇌물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들은 최순실에 대한 지원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금품공여라는 점을 인식했다”며 “또 삼성은 213억원의 상당의 용역을 체결한 코어스포츠를 최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곧바로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이에 특검팀은 선고공판 뒤 기자들에게 "항소심에서 합당한 중형이 선고되고 일부 무죄 부분이 유죄로 바로잡힐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 1심 결과에 당혹스럽다는 반응과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 부회장의 유죄 선고로 삼성은 사업을 진두지휘할 선장을 잃었다.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장기간의 경영 공백을 대비할 방안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시선은 삼성의 구원투수로 누가 등장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은 사실일까 국정농단 청문회, 특검 조사에 참여한 김 위원장은 이 부회장 재판에도 등장했다. 지난 7월 14일 이 부회장 공판 증인으로 나온 김 위원장은 의미심장한 증언을 했다. 그는 “이 부회장의 경영 카리스마가 확립되지 않아 이견이 있을 경우 10건의 결정사항이 있으면 이중 4건은 이 부회장 뜻을 따르고 6건은 참모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집단지성으로 운영한다고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삼성그룹이 4인 집단 지도 체제로 운영된다는 취지다. 앞서 김 위원장은 특검조사에서 “김종중 전 사장에게 ‘이재용 부회장이 40%, 장충기, 최지성, 김종중이 60% 삼성 그룹 내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여기서 ‘김종중’은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이다.

김 위원장은 또 “이 부회장이 해외출장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장충기, 김종중 등이 모여 회의하며 삼성 그룹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고 김종중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김 위원장에게 삼성의 내부사정을 전해주고 경영판단에 대한 자문을 구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진술에 대해 김 전 사장은 전면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7월 24일에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등의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전 사장은 “김 교수(김상조 위원장)가 제가 한 얘기를 아마 오해한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김 전 사장은 “그 4인(이재용, 장충기, 최지성, 김종중)이 매일 아침에 만나는 회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 4인이 모여 회의를 한 것은 제가 미래전략실 재직기간 중에 제 기억에는 단 한번도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미전실 임원이 아니다. 그 자리에 최지성 실장 이재용 부회장이 같이 들어와서 회의한다고 하면 미전실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경영 카리스마가 없어 미전실의 결정 사항 중 일부만 집행한다는 진술도 강하게 부인했다. 김 전 사장은 "이 부회장은 미전실 의사결정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며 "제가 말했다면 의사결정은 최 전 실장 차원에서 하고 의사결정 후에 특별한 경우에 한 해 이 부회장과 의견을 교환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소통한 배경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에게 '상황을 정확히 알고 비판하면 우리도 받아들이겠다. 상호 소통하면서 하나씩 개선하자'고 이야기를 했고, 김 위원장도 찬성하게 돼 만남을 가졌다”고 말했다.

4인 중 유일하게 기소되지 않은 인물

김 전 사장은 김 위원장이 거론한 4인 중 유일하게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았다. 외부 접촉이 많았던 최지성 전 실장, 장충기 전 사장과는 달리 1984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래 줄곧 회사 내부 재무와 전략 부분에서 일해 온 탓에 국정농단에 연루될 이유가 없었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및 삼성물산 지분 330만주(2.11%)를 보유한 윤석근 일성신약 대표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은 1984년 입사 후 삼성전자 경영지원그룹 담당과장, 비서실 재무실 담당부장, 삼성구조조정본부 재무팀 담당임원, 삼성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 담당임원 등을 거쳤다. 김 전 사장은 경력 대부분을 삼성그룹 살림을 도맡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구조조정본부, 업무지원실 등 계열사 간 업무를 조율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경영능력도 인정받았다. 삼성정밀화학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매출의 20~30%를 차지하던 요소비료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전자재료에 집중해 회사의 사업 토대를 바꿔 놓은 것이다. 이어 삼성전자 DS사업총괄 경영지원실장을 거쳐 2013년 삼성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사장)을 맡았다. 전략1팀은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 부서다.

김 전 사장은 이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4월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 구성원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 전 사장과 살아남은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팀장급 인사 6명은 모두 교체됐다. 최 전 부회장, 장 전 사장이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활약했다면 김 전 사장은 ‘이재용 시대’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재계 평가도 많다.

이재용 없는 삼성은 누가 이끄나

삼성그룹은 미전실을 해체하면서 각 계열사가 이사회와 대표이사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M&A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눈에 띄게 느려진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투자 적기를 놓치면서 신사업 주도권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항간에는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전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하지만 이 사장은 현재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의 이혼 소송 중으로 대외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적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은 이혼하고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이 사장을 지정한다.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재산분할로 86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임 전 고문이 항소한 상태다.

전문경영인 영입도 거론되고 있지만 순혈주의가 강한 삼성에서 외부에서 구원투수를 데리고 올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전망이다. 그룹 내 사정을 꿰뚫고 있는 김 전 사장의 거취가 주목되는 이유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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