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촉 비관설…갑질 피해설 등 논란

사측 “사직압박이나 구조조정 없었다”

“보험사들, 설계사들 단물 빨고 버려”

특수고용직 노동3권 부여 입법 발의

푸르덴셜생명 지점장을 맡았던 A씨가 5일 오후 2시 서울 역삼동 본사 빌딩 21층에서 투신자살했다.

A씨는 1996년에 입사해 16년 간 지점장을 맡았지만 지난달 해촉됐다. A씨의 가족과 동료들은 회사 측의 악의적 평가 때문에 해촉당했다고 주장했었다.

A씨의 동료들은 내부 게시판에 A씨의 자살과 연관이 있는 임원 2명이 물러날 것과 회사가 유족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성명서를 올리기도 했다.

지점장이 자살한 이유는?

A씨의 자살 이후 커티스 장 푸르덴셜생명 대표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8일 직원들에게 사과문을 보내고 “이번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경위를 객관적이고 진실되게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진상조사 결과와는 별개로 7일부로 관련한 본부장들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기로 해 대기발령했다”고 밝혔다.

A씨의 동료들은 A씨가 관리했던 지점이 우수한 실적을 올렸지만 위촉계약이 부당 해지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급여수준이 높은 나이 많은 지점장을 새 지점장으로 바꾸려고 일부러 낮은 평가를 준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 대표는 A씨가 자살한 이유에 대해 “A씨 위의 임원이 A씨를 안 좋게 봤다. 쉽게 말해 찍혔다”고 말했다.

보험사 지점장의 실적평가에서 중요한 것이 인력충원과 영업실적이다. 오 대표는 국내 보험사들의 경우 영업실적보다도 인력충원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A씨 자살에도 인력충원 문제가 연관돼 있다.

A씨는 새로 보험설계사를 충원했지만 상위 관리자가 새 보험설계사 승인을 거부하는 일 등이 생기면서 자신이 운영하던 지점이 해체됐으며 결국 해촉까지 당했다.

푸르덴셜생명 관계자는 신입 보험설계사 승인 거부 문제에 대해 “고의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직압박도 없었고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조사 결론이 나오지 않아서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A씨는 자신이 부당하게 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푸르덴셜생명 관계자는 “A씨에 대한 평가는 회사 절차에 따라서 진행이 됐다”며 “다만 평가과정에서 본인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평가과정에서 혹시 다른 문제가 없었는지는 본사와 협조를 해서 내부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에서 A씨가 노동권 보장 주장을 해왔다고 보도했지만 회사에 공식으로 제기한 적은 없다”라며 “이 분이 요청한 것은 평가결과에 대한 재검토, 지점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인력충원이 중요한 이유

지점장 실적 중 인력충원이 중요한 이유는 인력을 늘리는 것이 실적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 대표는 보험사들이 인력충원에 열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인력을 늘려야 실적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국내 보험사들은 설계사들을 많이 뽑는다”라며 “뽑은 뒤 처음에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친인척 계약을 하게 하면서 교육을 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선발된 설계사 중 60% 정도는 보험영업을 그만 둔다. 그렇지만 보험사는 손해가 별로 없다. 설계사들은 도중에 스스로 일을 그만두므로 잔여수당을 받을 수 없다. 보험설계사들은 보험계약을 성사시켰을 때 받는 수당을 한 번에 받지 못하고 대개 여러 번에 걸쳐 나눠받게 된다. 그런데 도중에 일을 스스로 그만두면 잔여수당을 받지 못한다.

오 대표는 “보험사가 설계사를 많이 모집해서 친인척이나 지인들 대상으로 보험계약 영업을 하게 하고 이익을 챙기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설계사가 도중에 떠나면 잔여수당도 보험사의 소유가 된다는 이야기다.

보험설계사들은 이런 구조 때문에 보험 불완전판매 피해가 커지고, 보험을 중도 해약하는 이들이 늘어나 보험유지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 대표가 이야기하는 보험설계사들의 현실은 암울하다.

보험인권리연대는 보험설계사들이 지인이나 친인척 계약을 강요당하고 있고, 새 설계사 모집도 강요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객 보험금 지급이 많다고 설계사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자동차보험 공동인수에 대해 고객 보험료는 올리고, 설계사에겐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문제점도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보험설계사 모집 공고가 나오고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 보험설계사들의 지적이다.

오 대표는 “보험영업의 경우 수당이 많다. 따라서 지인 영업을 많이 하다 보면 월급이 수천만원 금방 나올 수 있다”며 “문제는 그게 지속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설계사들이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법인대리점(GA)에선 온갖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보험설계사들은 이야기한다.

오 대표는 “생보사, 손보사는 금감원 감시를 받는다”라며 “그렇지만 법인대리점은 정부 관리가 안 되는 회사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보험사와 설계사가 상생하려면

보험사와 설계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해 오 대표는 “지금처럼 막말로 단물 빼 먹고 버리는 설계사를 활용하면 당장은 좋을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안 좋다”라며 “보험사들도 너무 단기성과 위주로 운영이 되고 있고 이것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 보험설계사에게 노동3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험설계사는 보험사를 위해 일을 하지만 자영업자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특수고용직’이어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

보험인권리연대는 보험설계사도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에도 특수고용직 노동3권 부여와 관련된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230만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법 2조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재 보험사와 마찰이 생겼을 때 설계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법원에 소송하는 것이 전부다. 문제는 소송 비용과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 등으로 인해 설계사들이 제대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 대표는 “설계사들이 보험사들과의 문제 때문에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내면 고용노동부 권한이 아니라고 하고, 금감원에 민원을 내면 금융소비자가 아니라고 외면한다”라며 “보험설계사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사 노동3권이 보장되면 불완전판매 같은 것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설계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동참해주는 것이 바로 소비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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