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축소하려다 가입자도 못 지키고 ‘완패’

한화손해보험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금 지급 관련, ‘생계 공동체’ 구분 못하고 법정 패소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금, 보험소비자들로부터 주목 받는 특약이지만 헷갈리는 경우 많아

한화손해보험,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금 지급 면책 주장… 패소해 지연손해금만 불어나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금 지급 면책을 주장하다 법정패소를 당한 한화손해보험의 사례가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한화손해보험의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 특약의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법정 패소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 사례가 보험소비자들이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관련 보장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우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남성 A씨는 지난 2013년 한화손해보험의 한 종합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그가 가입한 해당 보험상품에는 사망보험과 실비보험 등 많은 보험가입자들이 필수적으로 넣는 특약뿐만 아니라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도 포함돼 있었다.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줄여서 흔히 ‘일배책’이라고도 부르는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란, 피보험자(A씨)가 일상생활 중 우연한 사고로 인해 ‘타인’에게 신체의 장해 또는 재물 손해를 끼쳤을 때 발생하는 법률상 책임에 대해 보험사가 보험가입금액(보상한도액) 내에서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특약이다.

이 특약은 피보험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구성원들의 책임에도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최근 보험가입자들에게 선호를 받고 있다.

물론 하나의 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의 범위가 늘어나고, 의도하지 않게 실수로 벌어진 ‘우연한 사고’라는 지급 사유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수 있다.

때문에 다수의 보험소비자들이 자신이 해당 특약으로 인해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음에도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거나, 이 특약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갈등을 빚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A씨는 이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 특약을 포함시킨 한화손해보험 상품의 가입을 유지하던 중, 지난 2015년 말경 병원 요양치료를 위해 자신의 누나 B씨 그리고 매형이 살고 있는 K아파트에 머물게 됐다.

당시 K아파트는 입주자 대표회의 명의로 아파트 전체 건물 및 부속설비 그리고 가재도구를 하나의 보험목적물로 하는 ‘아파트 단체 화재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다.

개인 주택화재보험과는 다르게 16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는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단체 화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돼있다.

그렇게 누나 B씨 부부의 소유인 K아파트 집에서 지내게 된 A씨는 2015년이 끝나 기 직전인 어느 날 밤 자신의 방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그는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못한 채 이를 방치해 뒀고, 그만 침대에 불이 옮겨 붙어 화재를 일으켰다.

담뱃불은 순식간에 퍼졌고, 곧바로 아파트 내 화재 감지기가 작동하면서 천정에 달린 스프링클러에서 약 30분 동안 소방수가 뿌려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불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지만, 집안 내의 벽지와 바닥 등 내부마감재 전체가 물에 젖었다. 심지어 바로 아래층도 소방수로 인해 대부분의 내부마감재가 수침(水浸)의 피해를 입게 됐다.

이후 B씨는 K아파트의 세대주로서 K아파트가 가입한 단체 화재보험의 보험사로부터 500여만원의 보험금을 받았고, 부부가 따로 가입하고 있던 개인 보험으로 이 사건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보험금도 지급받을 수 있었다.

또 괜한 피해를 입은 아래층 세대주도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을 통해 수천만원의 보험금을 보험사로부터 받아 피해를 메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손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완료됐고, 이제는 손해를 입힌 A씨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절차만이 남게 됐다.

이번 화재 사건의 A씨의 과실이었고, 그가 의도적으로 화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했다. 때문에 A씨는 민법 제750조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에 따라,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의무가 있었다.

또 보험자 한화손해보험 역시 상법 제724조 2항 및 피보험자 A씨가 가입한 보험상품의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 특약에 따라, 이번 사건의 A씨의 손실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생겼다.

구체적으로 A씨와 한화손해보험은 연대해 B씨 세대와 그 아래층 세대의 수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었고, 그 손해배상청구권은 상법 제682조의 ‘손해가 제3자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그 지급한 금액의 한도에서 그 제3자에 대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취득한다’라는 보험자대위권 관련 내용대로 B씨와 그 아래층 세대에 보험금을 이미 지급한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 보험사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화손해보험과 A씨 측이 손해배상에 대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는 사실상 A씨가 한화손해보험에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을 요청했지만, 한화손해보험 측이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시작된 것이 분명했다.

한화손보 “A씨, B씨와 생계 공동체로서 타인에 대한 손해 아냐” 주장

A씨, 아니 한화손해보험 측이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 보험사가 보험자대위권을 가지지 않아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한화손보는 K아파트 단체 화재보험의 피보험자가 A씨가 아닌 B씨와 그 아래층 세대주를 포함한 ‘아파트 전체 구분 소유자들’이며, A씨는 B씨와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상법 제682조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제3자 보험자대위권이 그와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에 대한 것인 경우 보험자는 그 권리를 취득하지 못한다는 해석이었다.

쉽게 말해 K아파트 B씨 세대와 아래층 세대의 피해 및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 보험사의 이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이 제3자(A씨)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A씨는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의 피보험자가 아니며, 이미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인 B씨 측의 단체 화재보험금 지급과 따로 가입하고 있던 보험상품의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를 통해 ‘가족’인 A씨의 책임 부분에 대한 배상을 했다.

때문에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의 보험사가 이 사건 손해 전부, 즉 A씨에 대한 보험자대위권까지 가질 수 없다는 의미였다.

특히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 특약이 피보험자(A씨)가 ‘타인의 재물’ 손해를 끼쳤을 때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책임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사건을 발생시킨 A씨가 타인의 재물이 아닌 ‘생계 공동체’인 누나 B씨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기 때문에 B씨가 ‘타인’에 해당이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B씨 세대 아래층의 수침 피해는 ‘특별손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A씨가 이에 대한 피해를 의도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예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배상책임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화손해보험 측의 주장과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 보험사 간의 주장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소송전으로 돌입했다.

법원, 한화손보 측 주장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아

팽팽한 법정공방으로 전개될 줄로만 알았던 양측의 법정싸움은 법원이 한화손해보험 측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으며 허무하게 끝나게 됐다.

이 사건의 판결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사건 분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A씨와 B씨가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라는 부분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한화손보 측 주장 모두를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특약은 가족구성원들의 책임에도 보험사의 보상이 이뤄지지만,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해당 특약에 있어 조건을 붙이고 있다.

바로 그 가족구성원이 피보험자와 세대를 같이 하거나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실상 ‘타인’으로서 보험 혜택의 범위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A씨가 가입한 한화손해보험 상품의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 특별약관 내용에 따르면, ‘피보험자와 세대를 같이 하는 친족에 대한 배상책임은 보상하지 아니하는 손해’로 규정하고 있다.

A씨와 그의 누나인 B씨가 친족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A씨는 요양치료 상 편의를 위해 보름에서 한 달 간 B씨 부부의 집에서 머무르려 했던 것일 뿐이었다.

A씨와 B씨는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달랐고, A씨가 가끔 B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생계 공동체’라는 개념에 부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는 주거를 달리하면서 B씨의 주거에 요양 차 가끔씩 머물거나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을 뿐, B씨가 A씨와 세대를 같이 했다고 보기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고 밝혔다.

때문에 B씨 세대에서 발생한 손해에 관해 A씨와 세대를 같이 하는 친족 B씨에게만 배상책임이 있어, 나머지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 보험사에 대해서는 면책돼야 한다는 한화손보 측 주장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연히 한화손보 측 주장과는 정반대로 A씨는 생계 공동체가 아닌 이 사건 보험 계약상 ‘타인’에 해당하는 B씨에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 특약에 해당하는 보험금 지급의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은 피보험자가 ‘특정되지 않은’ 의무 가입에 해당하는 보험계약이었다.

실제로 이 보험의 보험증권 보험목적 소유자란에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기재가 돼 있었다. 정확히 K아파트의 단체 화재보험은 입주자 대표회의가 세대별 구분 소유자들을 위해 아파트 전체 및 아파트 내 가재도구를 하나의 보험목적물로써 체결한 보험계약이었다.

때문에 이 보험의 피보험자는 K아파트 각 구분 소유자 및 세대에 속한 사람 중 가재도구의 소유자이며, 그 피보험상 이익은 이들이 각자 자신들이 소유한 아파트 각 전유 부분 및 공용 부분 그리고 가재도구에 대해 가지는 재산상 이익이었다.

A씨와 B씨를 생계 공동체로 볼 수 없다는 점은 간단하게 조사를 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사진은 한화손해보험 박윤식 대표. (사진=연합)
그렇다면 한화손해보험 측 주장과는 B씨와 함께 피해를 입은 아래층 단순한 구분 소유자로서 실질적 피보험상 이익이 없고, 더구나 보험사고에 대한 피보험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었다.

법원은 B씨 세대 아래층의 피해가 특별손해의 경우라며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일으킨 A씨 및 한화손보 측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동주택에서 화재 발생 시 주택 내에 설치돼 있는 스프링클러나 소방대원의 진화 작업을 위한 살수로 인해 발화장소뿐만 아니라 인접 건물에도 수침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은 경험칙상 예상할 수 있는 것이므로 특별손해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한화손해보험은 이번 소송에서 제기했던 모든 주장에 대해 ‘완패’를 당했다. 주요 손해보험사라면 기초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담보 특약 내용 중 A씨와 B씨를 ‘생계 공동체’ 해당 여부에 대해서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법정공방 끝에 망신을 당하며 예정된 보험금 및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게 됐고, 고객인 A씨도 지키지 못한 꼴이었다.

이번 한화손보의 패소 사례 두고 일각에서는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의 내용 및 특징에 대해 잘 모르는 보험소비자들이 해당 특약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경우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우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손해 등을 끼쳤을 때 발생하며, 보장 범위에 속하는 가족이란 피보험자와 세대나 생계를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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