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만 강조한 SH… 공공임대주택 본래 취지도 고려한 법원

공공임대주택, 무주택 세대 구성원 미충족 시 계약 해지 사유

임대주택 세대원 C씨, 다른 개인주택 지분 소유하자… 임대주택 계약 해지한 SH

법원 “임대주택 세대원의 특별한 사정 고려해야”

공공임대주택의 무주택 세대 구성원 미충족으로 인한 임대주택 계약 해지를 둘러싼 SH공사의 패소 사례가 최근 밝혀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SH서울주택도시공사(사장 김세용)가 공공임대주택의 무주택 세대 구성원 미충족으로 인한 임대주택 계약 해지를 둘러싸고 임차인과 소송을 벌였지만,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당시 SH공사는 계약조건상 적법절차에 따른 계약 해지를 했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공공임대주택 공급의 본래 취지 그리고 임대주택 세대원들의 특별한 사정을 강조한 법원의 판단은 이와 달랐다.

공공주택특별법 제49조 3항에 따르면, 공공주택 사업자는 임차인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임대받는 경우,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거나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

여기서 부정한 방법이란 공공주택 임차인이 공공주택 사업자의 동의 없이 임대주택 및 그 부대시설을 개축 또는 증축하는 행위 그리고 임대주택을 전세로 내놓거나 이것의 임차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등의 행위다.

물론 앞서 언급한 세 가지는 공공임대주택을 계약하려 하는 이들이라면 상식적으로 숙지하는 금지사항이다.

때문에 임차인들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거나 이 사항을 고의로 어기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이를 둘러싼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만 아직까지도 다수의 임차인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정한 방법에 속하는 행위가 있다.

바로 공공주택특별법 제49조 3항 4호의 표준임대차계약서상 공공주택 사업자 및 임차인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에서 제시하는 ‘임대차 기간 중 무주택 세대 구성원’ 요건 충족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공주택 사업자와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작성하는 임대차 계약서 내에는 임대차 기간 그리고 임차인 또는 그 세대원들이 기재된다.

만약 임대차 계약서상 임차인 또는 그 세대에 속한 이들이 임대차 기간 중 다른 주택을 소유하게 된다면, 이는 부정한 방법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임대받는 경우로서 임대차 계약의 해지 또는 갱신 거절 사유가 될 수 있다.

특히 임대차 기간 중 다른 주택을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주택의 일부 지분을 소유하는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정리해 보자면, 임대차 계약 기간 중 임차인 또는 그 세대에 속한 이들 전원이 해당 공공임대주택 외에 다른 주택을 소유하거나 이에 대한 지분을 소유하지 않은 ‘무주택 세대 구성원’이어야만, 정당한 임대차 계약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보통 공공임대주택의 임대차 계약 기간은 기본 2년으로, 계약 갱신 후 더 늘어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임대주택의 세대원으로 등록만 된 채 타인이 소유한 주택에서 거주하는 구성원이 생길 수 있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거주하면서 자신이 임대주택의 세대원으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본인 소유의 주택을 장만하거나, 다른 주택에 대한 지분을 소유할 수 있다.

동시에 임대주택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기존 세대원들은 공공주택 사업자로부터 갑작스러운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엄연히 공공주택 사업자가 제시하는 계약조건을 위반한 것에 따른 정당한 조치다. 다만 세대원들 사이의 소통 부족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초래한 불상사로서 임대주택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려 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 공공주택 사업자와 임차인 간 임대차 계약 해지를 둘러싼 갈등이 다수 생길 수밖에 없었고, 심각하면 법적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었다.

그 갈등을 절충한 우리 사법부의 판례가 쌓이고 쌓이면서, 공공임대주택의 무주택 세대 구성원 충족에 있어 임차인이 지켜야할 부분뿐만 아니라, 사업자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제시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공공주택 사업자는 무주택 세대 구성원 충족을 이행하지 못한 임차인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하기 전에 임대차 계약서상에만 세대원으로 등록된 이가 실제로 임대주택에서 동일한 세대를 이뤘는지 그리고 향후 그가 임대주택에서 실제 세대를 이룰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 마지막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 시행의 근본적 취지에 대한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사업과 공급에 힘쓰는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의 최근 사례는 아직도 이를 철저히 숙지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SH공사는 임대차 계약서상 세대원으로만 등록돼 있을 뿐, 실제 동일 세대원이 아니거나 향후 동일 세대원이 될 가능성이 없는 이가 임대차 계약 기간 중 본인 소유의 주택을 마련했다고 해서 기존 임차인 및 세대원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임차인 측이 임대차 계약 해지 무효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고, SH공사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실제 거주하지 않는 세대원의 주택 소유에… 계약 해지 통보한 SH공사

A씨는 지난 2015년 9월 SH공사가 사업자로 지정된 서울시 북부의 한 공공건설 임대주택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이 임대차 계약의 기간은 2017년 12월말까지였고, 임차인은 A씨 그리고 세대원에는 A씨를 비롯해 그의 배우자 B씨와 자녀 C씨가 등록됐다. 임대차 계약서상 이 임대주택의 세대원은 A씨와 B씨 그리고 C씨였지만, C씨는 이 주택에 실제로 거주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1년 반 가까이 이 임대주택에 거주하던 A씨 부부는 지난 2017년 2월경 SH공사로부터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당시 SH공사는 A씨 부부가 임대차 계약 조건에 제시된 임대차 기간 내 임차인 또는 그 세대원이 다른 주택을 소유하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어겼다는 사유를 들었다.

실제로 앞서 2017년 1월 SH공사 측은 공공임대주택 세대원들의 주택소유 여부에 대한 전산 검색을 하면서, A씨 부부의 임대주택에 세대원으로 등록돼 있던 C씨가 2016년 초 다른 개인 주택의 지분을 소유하게 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임대차 계약 조건 상 그리고 공공주택특별법 제49조 3항에 따른 임대차 계약 해지 사유에 속했다. SH공사의 A씨 측에 대한 계약 해지 통보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A씨 측은 이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C씨는 이 임대주택의 세대원으로 등록돼 있을 뿐, 실제로 동일한 세대를 이룬 적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별거 중이던 C씨가 이 임대주택의 세대원으로 등록돼야만 했던 정당한 사유가 필요했다.

A씨 측이 당시 소명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이전 집에서부터 C씨는 A씨 부부와 주민등록상 동일한 세대원으로 등록돼 있었다.

A씨의 배우자 B씨는 몸이 불편해 장애인 자동차가 필요했고, 기존부터 C씨와 공동명의로 구입한 장애인 자동차를 사용하고 있었다.

장애인 자동차는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지 않은 자가 장애인과 공동으로 소유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주민등록지가 같아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다.

장애인 자동차의 공동명의자인 C씨를 부득이 하게 A씨 부부의 임대주택에 세대원으로 전입신고만 했을 뿐, 실제로 거주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A씨 측은 SH공사가 임대주택 계약 조항을 근거로 한 임대차 계약 해지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SH공사 측은 임대차 계약 조항대로 적법하게 계약 해지가 이뤄졌다는 입장이었다. A씨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C씨가 A씨와 동일한 세대를 이뤄 해당 임대주택에 거주했고, 그 과정에서 본인 지분이 있는 개인 주택을 소유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SH공사 측은 설령 C씨가 A씨의 임대주택에서 동일한 세대를 이루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장애인 자동차 구입 및 소유라는 개인적 혜택을 위해 C씨에 대한 전입신고를 해놓고, 이제 와서 동일한 세대원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양측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A씨 측은 SH공사를 상대로 임대차 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SH공사, 계약해지 통보 전 숙지해야 했던 임차인의 ‘특별한 사정’

1년여 간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이어진 이 사건 재판은 최근 A씨 측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이 사건 재판을 담당한 재판부는 우선 공공임대주택에 관한 계약 내용과 주택공급 규칙 등에 따라, 임대차 계약의 당사자인 임차인뿐만 아니라 그 세대원인 자녀가 임대차 기간 중 다른 주택을 소유하게 될 경우 임대인(공공주택사업자)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게 원칙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과거 대법원 판례에서 제시한 임대주택의 계약 해지를 해서는 안 되는 사유에 대해 보다 주목했다.

대법원이 지난 2011년 6월 30일 선고(사건번호 2011다10013)한 내용 등에 따르면, 임차인의 직계비속(자녀)인 세대원이 임대차 기간을 전후해 세대주와 동일한 세대를 이룬 바 없고 앞으로도 이룰 가능성이 없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임대인이 임대주택 계약 해지 조항을 근거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대법원은 임대주택 제도의 목적이 무주택자들에게 임대주택을 원활히 공급해 국민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임차인과 세대원들이 임대차 계약 내용과 다소 반하는 점이 있더라도 계약 해지에 이르기 전에 이들의 특별한 사정 역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 사건 재판 결과 여러 객관적 증거를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A씨 측의 주장대로 C씨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A씨 부부로부터 독립해 살고 있었다.

A씨 부부의 임대주택 계약을 전후해 C씨가 해당 임대주택뿐만 아니라 A씨 부부와 실제로 동일한 세대를 이룬 적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C씨가 임대주택의 계약상 세대주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 세대를 이루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향후 A씨 부부와 동일한 세대를 이룰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통해 SH공사 측의 임대차 계약 해지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사진=연합)
구체적으로 C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지방으로 이사해 한 아파트에서 줄곧 살고 있다가 B씨가 장애인 자동차를 구입할 무렵 A씨 부부의 거주지로 전입신고를 했다. 이어 A씨 부부가 이 사건 임대주택으로 이사하자 C씨 역시 이곳으로 전입신고를 마쳤다.

이후 C씨가 기존부터 실제로 거주하고 있던 지방 아파트의 지분에 대한 소유권이 생기자 다시 이 아파트로 전입신고를 했을 뿐이었다.

C씨가 당시 수년째 근무하던 회사 역시 서울시가 아닌 그가 살고 있던 지방 아파트 인근이었고, 이 회사의 C씨에 대한 근로계약서의 주소지란 역시 A씨 부부의 거주지가 아닌 이 아파트 주소였다.

무엇보다 A씨 임대주택의 관리사무소가 작성한 입주자 명부에도 A씨와 B씨의 이름만이 기재돼 있을 뿐, C씨의 이름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재판부는 C씨가 이 사건 임대주택의 계약상 세대주로 등록돼 있고 실제 세대를 이루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향후 A씨 부부와 동일한 세대를 이룰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SH공사가 계약조항을 적용해 A씨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한 것은 무효이며, 임대차 기간 만료 이후 갱신 역시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C씨의 행위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SH공사 측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C씨가 A씨 부부와 함께 거주하지 않음에도 B씨의 장애인 자동차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에 따른 혜택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A씨가 이 사건 임대차 계약 해지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행사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번 A씨와 SH공사 간 갈등과 유사한 사례는 지난해 8월 제주지방법원의 판결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재판은 임차인이 아들과 단둘이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중, 아들이 새로운 주택을 소유하게 되자 사업자인 한국주택토지공사가 임대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법정공방까지 이어진 사례였다.

이 사건 재판에서 제주지방법원은 한국주택토지공사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임차인이 아들의 주택 취득자금을 지원한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임차인과 동일 세대를 이룰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다시 말해 사업자가 임차인에 임대계약 해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에 대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처럼 이미 우리 사법부는 무주택 세대 구성원 미충족으로 인한 임대주택 계약 해지를 둘러싼 법적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때문에 이번 A씨와 SH공사 간 사례에 있어 SH공사의 대응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다. 또 공공임대주택 사업 주체들이 무주택 세대 구성원으로 인한 계약 해지를 서두르기 전, 향후 사법부의 이와 같은 판단을 충분히 숙지해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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