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논란 재점화 불 보듯…당정 개편안에 재계 ‘불만’

한국 사회에서 기업의 ‘상속세’는 두고두고 논쟁거리다. 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이지못한 탓에 상속세 완화 역시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만, 기업의 입장에선 그와 별개로 ‘현실적’ 어려움을 들며 현행 상속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협소한 완화 폭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당정이 지난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를 개최했다.
“기업 상속 너무 까다롭다”

“현행 가업상속 공제 제도는 수혜 대상이 한정적이어서 실효성이 거의 없다. 기업을 돕는다는 가업상속 공제 제도가 오히려 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가업상속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이뤄지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그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

근래 재계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상속세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 섞인 성토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정도가 더해진 것은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일 마련한 ‘가업상속공제 개편안’ 때문이다.

당정은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이나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 가업을 상속한 후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러면서도 불성실한 기업인에 대해서는 조세지원을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현행 제도를 따르면 위 수준의 중소·중견기업을 상속할 시, 그에 따른 상속세는 최대 500억원 공제된다. 다만 기업은 공제 후 10년간 업종·자산·고용 등을 유지해야만 한다. 재계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65% 수준의 상속세율 완화 및 사후관리 요건 완화를 기대해 왔다.

개편안은 기업의 이런 입장을 ‘일정 부분’ 반영했다. 공제 후 사후관리기간을 7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 타국 사례 등을 감안해 업종·자산·고용유지 등 사후관리기간의 단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독일의 사후관리기간은 7년, 일본은 5년이다.

개편안은 또 ▲고용유지 의무 완화 ▲업종변경 허용 범위를 기존 ‘소분류 내’에서 ‘중분류 내’로 확대 ▲사후관리기간 중 20% 이상 자산처분 금지 요건에 ‘불가피한 자산처분 예외’ 사유 추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 같은 세법개정안은 오는 9월 초쯤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재계 불만은 여전하다. 원활한 승계를 통해 노하우 전수와 기술이전을 이룬다는 취지를 못 살리고, 겉핥기에만 그친 미봉책이란 게 업계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목소리다.

먼저 최고상속세율을 손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유지한 이상 규제완화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제도 적용 대상을 매출 3000억원 이하 업체로 제한한 데다, 업황 등을 고려치 않은 고용유지 의무 등도 내버려 둬 문제로 지적된다.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한 사례는 여럿이다. ‘쓰리세븐’이 대표적이다. 손톱깎이 세계 1위였던 이 회사는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 별세 후 유가족과 임직원이 경영권을 이어받지 못했다. 시가 370억원어치 지분, 상속세 150억원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결국 회사는 티에이치홀딩스에 팔렸고, 현재 매출액은 2003년 대비 100억원 이상 빠진 170억원대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속세 마련을 위해 지분을 내다파는 오너도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2위 주방가구회사인 에넥스의 경우 고 박진호 전 사장의 부인 김미경씨가 보유 중이던 주식 약 37만주를 매도했다.

제이에스티나 오너 일가 역시 올해 초에 총 14차례에 걸쳐 지분을 팔았다. 김기문 회장의 자녀인 김유미, 김선미씨는 지난 1~2월에만 약 15만주를 팔아치운 데 이어 현재까지 총 54만9633주를 매도했다. 이는 약 49억6099만원 규모다.

지난 4월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타개로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한진칼도 상속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KCGI와 지분 확보 경쟁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상속세 부담 때문에 지분 확대에 나서기 어려운 처지다. 한진의 상속세는 2600억원 대로 추산된다.

당정이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국회 통과 미지수

현실이 이런 까닭에 현재로써는 당정이 마련한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도 미지수다. 당장 기업의 상속세 부담 완화 폭을 더 넓힌 법안이 최근 잇따라 발의됐다. 윤후덕(민주당), 심재철·박명재·이진복·곽대훈·정갑윤·추경호(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제출한 7건이다. 앞서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이런 법안을 발의하려다, 당내 그리고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들이 발의하거나 주장하는 법안의 골자는 공제 대상 기업의 매출 기준을 현재 3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 미만으로, 공제액을 최대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하는 식이다.

가장 최근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심재철 의원 측은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통상 50%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할증률을 고려해보면 65%로서 세계 최고세율에 해당한다”며 “상속세 요건 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