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원 적자였던 JAL, 전체 직원 30% 퇴사…매머드급 구조조정으로 회생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한진칼의 경영권을 놓고 조원태 회장 측과 3자 연합(KCGI·조현아·반도건설)이 반격에 반격을 잇고 있다. 조원태 회장이 저수익 사업 처분 등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3자 연합은 현 체제의 경영실패를 주장하며 공세를 퍼붓는다. 다만 각종 쇄신안으로 주주들 환심 사기에 주력 중인 조원태 회장 쪽과 달리 3자 연합은 후보자 사퇴 및 각종 의혹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오는 3월 주총에서 승리를 자신했으나 현실화는 미지수다.

지난 20일 KCGI 등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발언 중인 강성부 KCGI 대표(가운데) 모습.
조원태 본격 쇄신…갈 곳 사라진 조현아

KCGI와의 경영권 분쟁이 갈수록 격화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본격 쇄신에 나섰다. 이른바 '비전 2023'으로 불리는 사업구조 선진화 방안을 마련했다.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강화, 주주 정시 정책 확대, 부동산 매각·개발 및 계열사 간 통합을 뼈대로 한다.

부동산 매각 등이 눈에 띈다. 왕산레저개발과 서울 송현동 부지,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부지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들 사업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의지를 갖고 추진했던 일이다. 때문에 해당 조치를 ‘남매갈등’에 기인한 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돌아갈 자리를 없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편은 엄밀히 말해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에 뒀다는 게 중론이다. 왕산레저개발의 경우 지난 아시안게임 외에는 제대로 운영조차 안 됐다. 대한항공이 자본금 60억원을 투입해 2011년 설립했지만 단 한 번도 흑자가 없었다. 오히려 영업손실이 2012년1082만원, 2014년 4억9810만원, 2016년 12억7775만원, 2018년 22억9434만원으로 매년 확대됐다.

서울 송현동 부지 매각은 ‘아픈 손가락’을 잘라낸 결단과 다름없다. 경복궁 옆 3만6642㎡ 크기인 이곳은 한진그룹이 7성급 호텔건립을 꿈꾸며 2008년 사들였다. 그러나 '학교 반경 200m 이내에 관광호텔을 세울 수 없다'는 관련법에 막혀 공터로 남아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 안국동 등이 인접해 있어 노른자위로 불리지만 한진은 매각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2008년 인수한 서귀포 파라다이스호텔도 재정난으로 개발이 중단된 상황이다. 한진그룹의 호텔·레저 사업은 이렇듯 수익성이 현저히 낮은 까닭에 주주들도 일찍이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고 요구했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호텔사업에 관심이 남달랐다지만, 이런 현실에 견줘보면 해당 사업정리를 남매갈등 때문으로만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조원태 회장은 이밖에도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지배구조 투명화에도 나섰다. 대한항공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원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기로 했다. 거버넌스위원회의 설치도 의결했다. 각각 독립성 강화와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해서다. 김동재 이사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신규 위원으로 선임됐다.

3자 연합, 의혹 해소가 관건

주주들이 혹할 만한 방안을 속속 마련한 조원태 회장 측과 달리 KCGI 등 3자 연합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한국공항 노동조합이 일제히 현 조원태 체제 지지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3자 연합이 추천한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는 사내이사 후보직 사의를 표명했다. 구조조정 우려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자본 의혹 등도 해소해야 할 과제다.

강성부 KCGI 대표와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두 사람은 현재 한진칼 및 대한항공의 문제점들과 자신들의 당위성, 일각서 제기하는 우려사항들에 조목조목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진 오너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여러 투자 실패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한진그룹의 최근 경영성과가 좋지 않은 건 맞다. 누적적자(2014~2019년)가 1조7414억원이다.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861.9%에 달한다. 강성부 대표는 “한진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한진해운 인수 등 무리한 투자가 단행된 결과”라며 “현 체제의 경영실태는 총체적 실패”라고 규정했다.

문제는 3자 연합이 내놓은 대책도 여러 의구심을 낳는다는 점이다. KCGI 등은 줄곧 전문 경영인 제도를 해법으로 제시했는데, 이들이 내세운 사내이사 후보들은 정작 비전문가 논란에 휩싸였다. 전부 항공업 경력이 전무한 까닭이다. 그나마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가 관련 이력을 갖췄지만 조원태 회장 지지선언과 함께 중도 하차했다.

이에 대해 강성부 대표는 “5000억원 적자였던 재팬에어라인(JAL)을 2조원 흑자로 만든 사람은 항공 비전문가인 이나모리 가즈오 전 교토세라믹 회장과 공대출신 IT 전문가들”이라고 반론했다. 이어 “JAL은 일본 청년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 1위로 탈바꿈했다”고 강조했다.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은 “(내가)항공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영본질은 똑같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또 다른 우려가 나온다. 구조조정이다. 3자 연합은 이전부터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모범으로 삼은 JAL은 매머드급 구조조정으로 회생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JAL을 이끌며 전 직원 약 4만8000명 중 1만6000명 가량을 내보냈다. 일본 기업사 중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 1년 만에 끝내 버렸다.

KCGI를 두고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세력’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 강성부 대표는 “KCGI는 투자자가 중도 환매불가 기간을 10년으로 길게 두고 있다”며 선을 그었지만, 펀드 그 자체의 구조상 조기 환매도 가능한 탓에 걱정의 목소리가 크다. 대한항공 노조가 3자 연합을 반대하는 이유로 ‘생존권 위협’ 및 ‘투기자본’을 거론한 배경이다.

3자 연합이 설득력을 갖추려면 보다 세심한 안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3자 연합 말대로 한진의 경영상태가 최악이라면, 경영진 1~2명 교체로 해결되겠느냐”며 “문제의식과 대책의 앞뒤가 안 맞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또 JAL은 회생 시 구조조정과 함께 장거리 운항선도 대거 팔아 치운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