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칼럼

더 나은 ‘G’를 만들어 나가는 원천적 힘은 다른 사람이 아닌 주주에게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초 한미약품그룹 회계처리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의 2019 회계연도 외부감사 과정에서 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이 자회사 한미약품을 종속회사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분율 50%를 초과하면 회계기준상 ‘지배력’이 있다고 보고 두 회사의 ‘지배-종속’ 관계를 인정한다. 두 회사를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보고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지분을 42%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한미약품에 대한 지배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기존 외부감사인도 이를 인정했다.

그런데 새로 한영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맡게 되면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외형상 지분율이 아니라 주주총회에서 나타난 의결권 지분율로 지배력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예컨대 A사가 B사에 대해 의결권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B사 주주총회에 참석한 일반소액주주들 지분율은 다 합쳐봐야 20%이다.

그렇다면 이 주총에서 행사된 A사의 실질 의결권은 약 67%(40/60)가 된다. 이처럼 매년 주총에서 일반주주 참석률을 감안한 A사의 실제 의결권 지분이 50% 초과한다면 A사는 B사에 대해 지배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사이언스가 바로 이런 사례에 속했다. 금융위원회와 회계기준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결론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너도 옳고, 너도 옳으니 회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스스로 결정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한미사이언스와는 달리 ‘주총 실질 의결권 비율’을 근거로 삼아 적극적으로 연결회계 처리를 하는 기업 사례가 더 많다.

예컨대 SK그룹 지주회사인 SK㈜는 SK이노베이션 지분을 33%, SK텔레콤 지분을 27%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을 종속기업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SK는 “의결권은 과반수 미만이나, 다른 주주들이 널리 분산되어 있고 과거 주주총회에서 의결 양상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지배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기주총, 임시주총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일반주주들의 주총 참석률은 낮은 편에 속한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정작 중요사안을 결정하는 주총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반 주주가 이사회, 감사위원회 강화 나서야

기업에는 경영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준법의무를 지키게끔 조언하고 견제ㆍ감시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이사회를 말한다. 사내이사, 사외이사는 주주들이 주총에서 선임한다.

대주주가 고교 동문을 골라 사외이사로 앉히는 기업이 있다. 이사회는 동창회가 아니다. 이런 이사들이 대주주 겸 경영자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거수기밖에 안 될 것이다. 대주주의 사익 추구, 편법에 스스로 눈 감고 귀 막는 이사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특수관계인의 이사회 진입을 막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일하는 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가 엄연히 주주에게 부여되어 있다.

최근 어떤 유튜브 방송에 이른바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펀드 운용업무를 하는 증권사 직원이 출연했다. ESG펀드는 이런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금융상품으로 보면 된다. 이 방송에서 폐기물 재활용이나 신재생에너지 업체에 대한 투자 이야기를 한참 오가던 중 사회자가 “G 즉 지배구조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출연자가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필자는 지배구조에 대해 ‘기업의 의사결정 및 통제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는 포괄적으로 이사회와 감사위원회 등 이사회 내 각종 조직의 역할, 준법활동조직의 권한과 책임, 주주가치경영을 위한 내부규정 등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삼성에는 법조인, 시민운동가 등 외부 명망가를 주축으로 구성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양형에 참조하겠다며 설치를 주문해 지난해 1월 만들어진 조직이다. 준감위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7개 계열사와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이들 회사의 준법감시 활동과 개선방안 및 지배주주인 이 부회장에 대한 권고(4세 경영승계포기, 노조활동보장 등의 선언) 등의 활동을 펼쳤다.

재판부는 3인의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해 지난해 11월 이 위원회의 실효성에 대한 평가를 맡겼다. 평가보고서를 검토한 재판부는 지난 1월 선고심에서 “위원회가 기대만큼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양형에 참조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보였다. 결국 이 부회장은 실형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됐다.

필자는 지난해 삼성준감위에 대해 지인인 변호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준감위 자체가 법적 근거와 권한, 책임이 불분명한 조직으로 거버넌스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을 했다. 지배구조 전문가들이 지배구조상 애매한 조직에서 활동하는 아이러니가 내재됐다는 말이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안고 있는 준감위의 권고나 자문활동이 삼성 거버넌스 개혁에 과연 얼마나 힘이 실리겠느냐”며 “법적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각 계열사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 등을 강화하고 실제 계열사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연합조직으로 삼성 전체를 총괄할 수 있는 준법감시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옳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이사진을 선택할 권리와 책임 또한 주주들에게 있다. 뜬금없이 연결회계에서 시작해 삼성준감위까지 필자가 화제에 올린 이유는 법률가나 교수, 시민운동가가 아닌 기업의 일반 소액주주들의 힘으로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 준법감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지배구조는 ESG 경영을 통해 지속적으로 글로벌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은 ‘G’를 만들어 나가는 원천적 힘은 다른 사람이 아닌 주주에게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