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에뛰드하우스’ 등 9년만에 중국 철수
지역별 스토리·문화 담은 장기 전략과 MZ세대 공략 필요

성과 나이의 구분이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를 강조해 해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모브판타스틱에버의 광고 이미지. 사진=인스타그램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근 10년간 ‘글로벌 열풍’을 이끌며 꾸준히 성장해 온 K뷰티가 해외 시장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K뷰티 신화’를 만들어 온 로드숍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줄줄이 철수한 데 이어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대기업들도 극심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해외 온라인 시장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미국과 유럽시장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급격하게 가라앉고 있는 K뷰티 바람을 다시 불게 할 해법은 없는 걸까.

코로나19 영향에 국내 화장품 브랜드 급격한 매출 부진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의 급격한 매출 부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K뷰티의 부진은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해 2019년에는 부진 현상이 이미 뚜렷해졌다. 아모레퍼시픽의 로드숍 브랜드 에뛰드하우스는 이달 초 9년 만에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한때 중국 내 매장이 600개에 달했던 아모레의 또다른 브랜드인 이니스프리도 지난해 141개를 폐점한 데 이어 올해 170개의 매장을 접을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은 이미 지난 2018년 자사 브랜드 더페이스샵과 편집숍 네이처컬렉션의 중국 매장을 철수했다. 중견 브랜드 토니모리, 클리오도 2019년부터 중국 사업을 축소해왔다.

실제로 K뷰티 대표브랜드들의 지난해 성적표는 심각하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430억원, 매출은 4조5801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6.57%, 20.57%씩 감소했다. 아모레퍼시픽은 6년만에 처음으로 4조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해외 사업 부문에서는 영업이익이 83%나 줄어들었다. 토니모리는 지난해 영업손실(연결기준)이 255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무려 9184%의 증가세를 보였다.

K뷰티 부진 이유는 ‘지속적인 혁신’ 부재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10년대 중·후반기 한국은 세계 4위 규모의 화장품 수출국이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던 2015년에는 아모레퍼시픽이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안에 들기도 했다. 로레알은 2018년 패션브랜드 ‘스타일난다’와 메이크업 브랜드 ‘3CE’를 운영하는 ㈜난다를 6000억원에 인수해 글로벌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K뷰티는 2010년대 후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사드 사태와 지난해 코로나19같은 외부 요인이 큰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K뷰티가 초창기 유행을 선도하던 데서 벗어나 지속적인 혁신을 하지 못했다’고 내부적인 부진 요인을 꼽고 있다.

먼저 세계화와 현지화를 함께 추구하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북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박시원 국제 마케팅 컨설턴트는 “K뷰티 업계가 그때 그때 트렌드에 맞춰 유행하는 제품을 내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중국, 미국, 유럽 등 각각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제품을 내놓지 못한 것이 장기적으로 매출감소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과 로컬의 밸런스를 못 맞춘 것”이라며 “유행이 되면 소비자들이 좋아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결국 현재는 K뷰티가 선도해가던 유행은 이미 경쟁업체들이 잘 학습하면서 따라잡힌 상태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텐센트가 발표한 2019년 중국 뷰티브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뷰티 시장에서 국산 브랜드 점유율은 50%에 달했다. 한때 한국 화장품의 가장 큰 고객이었던 중국 시장은 이제 한국 브랜드들의 장점을 재빠르게 모방해 자국 브랜드를 성장시켰다. 중국산 화장품이 K뷰티의 자리를 대체한 셈이다.

글로벌 전략과 MZ세대 맞춤형 전략 병행해야

‘제품’만이 아닌 스토리와 문화를 사는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공략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단일 제품이나 제품의 기능성에 집중하는 마케팅 전략보다는 정교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최근 해외시장에서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스킨케어 브랜드 ‘모브판타스틱에버’ 같은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젊음은 모두에게 있다’를 모티브로 한 모브판타스틱에버는 성별의 구분 없이 남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젠더리스 뷰티’를 정체성으로 표방하고 있다. 남녀 구분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자는 가치관을 MZ세대에게 어필한 전략이 먹혀 든 것이다. 이 브랜드는 최근 미국 코스트코 입점에 성공하면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 시장을 벗어난 피부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점도 K뷰티 세계화의 발목을 잡았다. 인종과 피부톤이 다양한 세계 시장에서 먹히려면 이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이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파운데이션 컬러도 주로 동양인들이 쓰는 4가지 색 위주로 구성했다. 특히 피부톤이 어두운 인종에게는 원천적으로 장벽을 만든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최근 한국콜마가 모든 인종의 피부 색을 커버할 수 있도록 35개 색상과 밝기를 선택할 수 있는 리퀴드(액체) 파운데이션을 개발한 것은 이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콜마는 지난 8일 “세계 각국의 소비자가 원하는 파운데이션을 고를 수 있다”며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에 가능성을 두었음을 설명했다. 이 같은 글로벌 전략과 새로운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MZ세대를 겨냥한 맞춤형 마케팅 전략의 성공을 벤치마킹하는 것만이 K뷰티의 부활을 도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