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문화 파악 못한 업계,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왼쪽)와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젠더갈등 이슈로 연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유통업계가 편의점 GS25 홍보 포스터로 촉발된 ‘남혐(남성혐오) 논란’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미 사회 전반에 젠더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소비자 반응에 유독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통업계에서 발생한 일이라 그 파장이 생각보다 크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기업들 홍보물에서 이른바 ‘남혐 요소’를 찾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어 어떤 기업이든 자칫 ‘남혐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혐오 요소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일각에서는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2030세대에게는 이 논란이 ‘감정’의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됐다.

만연하던 ‘혐오 문화’…결국 유통업계도 참전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지난 6일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출마의 이유로 ‘젠더 이슈’를 들었다. 이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이 이슈로 설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전 최고위원은 출마 선언을 한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에서 “2030세대가 우리 당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메시지 하나하나를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며 “보수 정당의 가치에 호응하지 않던 젊은 세대가 이번 선거에서 호응한 건 젠더갈등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번에 유통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남혐 논란은 최근에 발생한 논란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던 사회 문제였다. 지금은 남혐 논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여혐(여성혐오) 논란’ 또한 엽기적인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로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혐오 문제는 감정적 측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미 사회적으로 남녀 간 ‘경쟁의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여성 입장에서는 ‘이미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반면 남성은 ‘사회 구조가 남성에게 유리했던 건 과거 기득권 세대였는데 왜 피해(역차별)는 젊은 세대가 감당하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미 2030세대 중심으로 번지고 있었던 갈등이었고 심지어 정치권 핵심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 논란에 결국 유통업계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던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와 직접 상대하고 그 트렌드에 즉각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유통기업들이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했다”면서 “혐오를 하려는 의도와 상관없이 특정 요소를 혐오로 느끼는 소비자층이 있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어야 했고 이번에 논란이 된 기업들은 그것을 간과했던 부분을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된 평택시 포스터(왼쪽)와 GS25 포스터(오른쪽). 현재 해당 손모양은 각종 홍보물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GS25 디자이너 직접 해명…논란 더 확대

GS25는 지난 1일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캠핑용 식품 구매자 대상 경품 증정 홍보 포스터를 올렸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포스터 속 여러 상징물이 남성 비하 목적의 손모양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결국 조윤성 GS리테일 사장까지 나서 사과를 했다. 하지만 이 논란은 유통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BBQ와 교촌치킨 등 치킨업계까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BBQ는 사이드 메뉴인 ‘소떡’ 관련 홍보 이미지가, 교촌치킨은 ‘오리지날 치킨’과 ‘레드콤보’를 두 손가락으로 집는 홍보물이 논란에 빠졌다.

BBQ는 바로 홈페이지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관련 홍보 이미지가 남성 혐오를 일으킨다는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모든 제작물에 대한 전수조사는 물론 문제가 발견된다면 강력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교촌치킨도 절대 남혐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한 후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키 위해 공식 홍보물에서 문제의 이미지를 즉각 삭제했다.

치킨업계로 번진 이 논란은 관련 기업들의 발 빠른 사과로 인해 어느 정도 잦아드는 분위기다. 하지만 GS25는 상황이 다르다. 사장까지 사과에 나섰지만 논란의 포스터 담당 디자이너가 해명을 한 것이 오히려 논란을 확대시키는 모습이다.

최근 해당 디자이너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GS25 디자이너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아들과 남편이 있는 워킹맘으로 남혐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명했다. 이 디자이너는 이 글에서 포스터 문구와 이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디자이너의 이 해명에 대해 각종 커뮤니티에서 해명을 비난하는 댓글 행진을 벌였다. 각 커뮤니티에서는 “우연으로 그런 이미지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우연히 가져온 이미지가 거듭해서 남혐 요소를 담을 가능성은 없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손모양을 넣어야 할 개연성이 없다”, “디자이너 해명이 쉽게 끝날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등 누리꾼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GS그룹 불매운동까지 확산, GS25 점주 항의 움직임도

최근 남혐 논란의 중심에 선 GS리테일에 이어 GS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불매운동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GS리테일과 GS샵 탈퇴를 인증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불매운동 동참을 유도하는 누리꾼들도 목격되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GS리테일 입장에서는 디자이너 해명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직원 보호의 의무도 분명 있는 것”이라면서도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GS리테일이 실수로 소비자를 분노하게 만든 것 자체도 문제지만 그 후속조치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GS25 점주들이 항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GS25의 군부대 PX 계약을 철회해 달라는 국민청원도 등장했을 정도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GS25 점주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게시 글에는 “점주들에게는 생계가 달려 있는 사안으로 정식으로 항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장인 50대 남성은 “기성세대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딸을 가진 아빠로서 이런 문제가 빨리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지만 그 과정에서 2030세대 남성들 또한 역차별을 받게 되면서 서로 갈등관계가 조성되고 있고 이렇게 되면 남녀 모두 불행한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젠더갈등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이런 혐오 현상이 지속적으로 부각되면서 아무런 갈등 요소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적대관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회가 당연히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너무 과하게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