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 인플레이션 논란이 심상치 않다. 식품, 기저귀, 화장지, 콜라 등 생활용품 전반에 걸쳐 인상 움직임이 활발하다. 언론에 발표되는 물가상승률 수치를 먼 산 쳐다보듯이 바라보던 일반인들도 피부에 와 닿는 이러한 가격 상승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과 비교해 2.6% 상승했는데, 이는 2018년 8월 이후 최대다. 지난달 예상치는 3.6%로 추정돼 한 술 더 뜬다. 이처럼 물가가 올라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양적완화를 통해 뿌리는 돈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연준은 이를 통해 국채를 매입하는데, 그 대금이 은행 등 기관을 통해 시장에 돌아다니게 된다. 물자 공급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데 돈의 양이 늘어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준의 자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전 4조 달러에서 지난달 초 현재 7조7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그 차액이 추가로 시중에 풀렸다는 얘기다.

둘째는 정부 재정자금이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2조 달러가 넘는 돈을 기업과 가계에 재난지원금으로 제공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소비자 주머니 속에서 움직이지 않던 이 돈이 백신으로 인해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더구나 조 바이든 행정부는 1조9000억 달러의 부양계획을 통과시킨 데 이어 2조 달러의 추가 부양 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거대한 자금이 시중에 풀리면 물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기 어렵다. 이것이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는데, 뉴욕 연준이 발표한 지난달 물가상승기대치는 향후 1년 간 3.4%에 이른다고 한다.

셋째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최근 석유, 금속, 곡물 등 3대 원자재는 공히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우연적인 요인도 있지만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는 지난 7일 68.28달러에서 거래됐고 철광석 가격이 처음으로 톤당 20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달 30일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의 밀 선물가격은 부셸당 7.42달러로 2013년 2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당연히 원자재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넷째는 인건비 상승이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신규고용은 26만6000명으로 예상치인 100만 명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2000만 명이 넘게 감소했던 고용은 서서히 회복됐지만 아직도 800만 명이 노동시장에 복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이 기존에 더해 주어지는 추가실업수당 때문일 수도 있고 자녀의 원격수업 때문에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고용 회복은 매우 더디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준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대응할 수단이 있다고 말하며 금리동결과 양적완화 지속이라는 자신의 통화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 그러나 이에 동조하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돌연 금리인상을 언급하고 나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지난 4일 미국 잡지 디애틀린틱과의 인터뷰에서 “추가적인 재정 지출은 미국 경제 규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을지 모르지만, 이는 매우 완만한 금리 인상을 야기할 수 있다”며 “우리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직 연준 의장이자 현직 재무장관인 그녀가 무심코 흘린 말은 아닐 것이며 반드시 어떤 의도가 깔렸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의견이 분분했다. 가장 무게가 실린 쪽은 아마도 과열된 증시 등 자산시장의 열기를 식히고 기대인플레이션을 억누르기 위해서 경고를 던졌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은 보통 자산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 지금처럼 자산가격 붐과 인플레이션 위협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향후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자산시장과 인플레이션 심리에 견제구를 던질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어떤 의도였건 금리 인상에 대한 언급은 그렇지 않아도 거론되던 인플레이션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연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결국 기준금리 조기인상으로 이어지거나, 최소한 시장금리가 크게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연 2.00%에서 2.75%로 올린 데 이어, 이번 달 5일에는 다시 3.50%로 인상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3.75%를 크게 넘어선 6%에 이르렀고 그 이상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지난 3월 기준금리를 4.25%에서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이번 달에도 0.50%포인트 올렸다. 러시아 소비자물가도 지난 3월 기준으로 목표치인 4%를 크게 넘어선 5.8%에 이르렀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고 정교한 통화정책을 사용하는 국가라고 하더라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면 금리 인상이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등 긴축적인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는 상승추세를 이어가고 있고 지난달에는 2.3%에 이르렀는데, 이는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초과한 것이다.

정부는 기저효과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돌리고 있지만, 백신접종이 확산되고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이뤄지면 보복적 소비가 나타날 것이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정부는 4차 재난지원금을 준비하고 있고 555조원에 이르는 슈퍼 예산안도 마련하고 있다. 이 막대한 재정자금이 시장에 풀려나감으로써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원자재 가격 인상은 전반적인 품목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의 금리정책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최대한 국내 경기를 부양하면서 외국인 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미국과 경기사이클이 다르게 나타난다면 이러한 정책이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백신접종이 빨라 오는 7월이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런 와중에 경기회복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고 물가상승률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점에서 뒤처지고 있는데 만약 미국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돌아선다면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하다. 아직 경기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외국인 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불똥이 17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에 옮겨 붙을 수도 있다.

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이자만 12조 원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것이 취약계층에게 타격을 주고 이어서 자산시장의 급락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거나 앞으로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에는 상황이 엄중하다. 극히 신중하고 면밀하게 동향을 지켜보면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