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편의점…복고 트렌드를 입히다

왼쪽부터 CU의 말표와 곰표 맥주, 세븐일레븐의 유동골뱅이 맥주, GS25의 비어리카노 등은 대표적인 이색 협업 상품이다.
편의점은 2017년 국산 수제맥주를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편의점 매출에서 국산맥주 중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류업계는 트렌드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편맥족’(편의점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증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결과는 맞아 떨어졌다. 수제맥주 시장의 가파른 성장이 힘을 실었다. 지난해 주요 편의점의 수제맥주 매출은 전년대비 모두 세 자릿수나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세븐일레븐이 550%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으며, CU (498%), GS25(445%), 이마트24(210%)가 뒤를 이었다.

손 대는 협업마다 성공...어깨에 힘 들어간 편의점
편의점은 수제맥주 유통에 그치지 않았다. 편의점들은 지난해부터 자체 브랜드(PB) 상품의 직접 생산에 나섰다. 다양한 브랜드, 맥주 제조업체와의 협업은 필수적이었다. 편의점의 도전은 손대는 것마다 성공적이었다. 이색적인 컬래버레이션과 독특한 디자인, 복고 감성 공략 등의 새로운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CU는 지난해 5월 대한제분과 손잡고 PB제품 ‘곰표 밀맥주’를 출시했다. 제조는 세븐브로이와 롯데칠성음료가 맡았다. 흥행은 놀라울 정도였다. CU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물량 공급 이틀 만에 카스(오비맥주), 테라(하이트진로), 하이네켄 등 국산, 수입 맥주를 모두 제쳤다. 매출 1위다”라고 밝혔다. 편의점의 이색 컬래버레이션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곰표 밀맥수 사례 덕분에 편의점이란 유통 채널의 영향력을 알아준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세븐일레븐도 협업을 통한 이색 수제맥주를 선보였다. 지난해 11월 세븐일레븐은 가공캔 업체인 ‘유동골뱅이’와 함께 '유동골뱅이맥주'를 출시했다. 제조는 수제맥주 벤처기업인 더쎄를라잇브루잉이 맡았다. 이색적인 업체들의 협업인 만큼 맥주 캔 디자인도 독특했다. 맥주 캔은 골뱅이캔과 크기만 다를 뿐 디자인은 거의 유사하다. 소비자들은 기존 맥주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디자인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유동골뱅이맥주는 출시 한 달 만에 세븐일레븐 수제맥주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복고 감성을 자극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겨냥한 제품들도 인기를 끌었다.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을 중심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뉴트로 트렌드’에 발맞춘 공략이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3월 롯데제과의 껌 ‘쥬시후레쉬’와 협업해 '쥬시후레쉬맥주’를 출시했다. 1972년에 선보인 쥬시후레쉬의 디자인과 색이 그대로 맥주 캔 외관에 옮겨졌다. GS25도 같은 달 '금성맥주'를 내놨다. GS리테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맥주 캔 디자인에 추억의 ‘골드스타’ 로고를 넣었다. 골드스타는 LGㆍGS그룹의 전신인 ‘럭키금성’의 로고를 상징한다. 당시 금성맥주는 준비된 20만캔이 모두 완판될 정도로 인기였다. GS리테일 관계자는 “한 달 판매분으로 예상하고 준비해둔 20만캔이 전량 소진됐다”며 “발주가 개시된 지 하루만인 지난 11일 20만캔이 모두 동났다”고 전했다.

오비맥주 동참 이어 이마트24 ‘최신맥주’ 상표 출원
롯데칠성음료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자 국내 맥주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절대 강자 오비맥주도 자존심을 접고 편의점과 손잡기로 했다. 곰표에 밀린 맥주 1위사가 굴욕을 감내하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되는 장면이다.

GS25는 내달 중 덴마크 유명 아웃도어 업체 '노르디스크'와 손잡고 PB 수제맥주를 출시할 예정이다. 제조사는 오비맥주다. 노르디시크의 로고도 공교롭게 ‘곰’이다. 오비맥주와 롯데칠성음료가 편의점으로 무대를 옮겨 본격적인 대결 국면에 나선 셈이다.

유통업계의 강자 신세계그룹도 팔을 걷어 붙였다. 이마트24가 지난 6일 이마트 프로야구단 SSG랜더스와 손잡고 ‘최신맥주’ 상표권을 출원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수제맥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최신맥주’는 ‘최정-추신수-제이미 로맥-최주환’으로 이어지는 SSG랜더스의 중심타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PB상품 제조사는 중하위권 주류업체가 맡아왔다”며 “업계 1위인 오비맥주가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성을 중요시하는 MZ세대의 등장과 맥주시장을 향한 편의점의 진입 등이 전통 주류회사에 위기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