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기준 낮은 배당률이 불법 부추겨…”토토는 도박이 아니라 기부

(사진=유투이미지 제공)
<스포츠토토 시행 20년>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국내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사업에 대한 개편 요구가 거세다. 업계와 이용자들은 20년 전 만들어졌던 낡은 법제도가 국내 합법 토토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엄격한 규제를 합법 토토에만 적용하다보니 정작 불법인 사설 토토와 해외 토토 사업자만 기승하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관계 당국의 단속도 실효성을 잃어버리면서 불법 토토를 통해 국내 토토 이용자들의 외화가 해외로 유출되고 도박 중독자만 양산하는 형국이다.
인생을 파괴하는 불법 토토…도박 중단 ‘단도’는 요원
#30대 남성인 A씨는 26살 처음 토토를 시작했다. 공장에서 3교대로 일했는데 남는 시간에 사설 토토사이트에 가입했다. 첫 게임에서 5만 원을 넣고 5경기를 베팅했는데 마지막 1경기를 틀려 당첨금 125만 원을 놓쳤다. 아쉬운 마음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베팅하길 수차례, 어느새 손실이 1000만 원까지 불어났고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 은행에서 1000만 원을 빌렸다. 정신차려보니 사금융, 사채까지 끌어들여 빚이 2500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다.
#올해 20살인 B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불법)토토를 시작했다. 불법 토토 홈페이지에 있는 미니게임인 ‘사다리 게임’(사다리를 선택해 당첨되면 배당금을 수령하는 게임)에 눈이 갔다. 50만 원을 베팅해 100만 원, 300만 원을 벌자 신이 났다. 그러다 실수로 본전을 잃고 억울한 마음에 부모님께 받은 책값으로 계속 토토를 했다. 수백만 원을 날리고 어머니께 사실을 고백한 후 도박을 끊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도박으로 쉽게 번 돈이 생각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들 사연은 도박 중독 치료를 위해 설립된 한 네이버 카페에 제보된 내용이다. 회원 2만5000여명이 가입한 이 카페에는 아직 가벼운 중독 증세부터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파산한 사람까지 다양한 도박 피해자들이 모여 있다. 회원들은 일명 ‘단도’를 이루고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꿈을 꾼다. 단도란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은어다.
흡연자가 금연 날짜를 세는 것처럼 이들은 단도한 날짜를 세며 중독의 고통을 호소한다. 중독 원인 중에는 파워볼과 주식, 가상화폐까지 다양하지만 사행성이 강력한 불법 토토 중독 사례가 가장 흔하다. 국내에서 운영하는 토토 중 합법 토토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스포츠토토 뿐이다. 스포츠토토 외에 사설 토토나 해외에서 운영하는 토토는 전부 불법이다. 불법 토토는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강력 처벌에도 불법 토토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법 토토의 매출액은 이미 2012년 7조6103억 원을 기록, 합법 토토의 2조8435억 원보다 2.6배 더 컸다. 이 차이는 더 벌어져 2020년에는 불법 토토 20조1870억 원, 합법 토토 4조8928억 원으로 4배 이상 벌어졌다.
도박 중독을 벗어나고자 재활 기관에 도움을 청한 중독자 중 대다수는 불법 토토의 늪에 빠진 경우가많다. 2019년 한국도박문제센터 콜센터를 통해 접수된 도박 상담 6711건 중 합법은 766건, 불법은 5945건이었다. 또 도박 유형별로는 토토 등 불법 온라인 도박 상담건이 4960건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토토 환급률 50%...타국가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스포츠토토코리아는 ▲불법스포츠도박 사이트 행위자신고 ▲판매점 관련 부정행위신고 ▲승부조작신고 등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해외 토토를 이용하면서 입출금 액수가 총 5만 달러를 넘을 경우 금융감독원에서 외화유출 방지 목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 조사를 피해 원화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해외 토토 사업자와 국내 이용자 사이에서 거래를 도와주는 에이전시 업체까지 양산되는 등 불법 토토 시장은 고도화되고 있다. 당국 규제의 빈틈에서 사기 피해도 속출한다.
국내 사설 불법 토토의 경우 이용자가 베팅에 성공했더라도 배당금을 주지 않는 속칭 ‘먹튀’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음지에서 운영되고 있어 피해 실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따금 거액 불법 토토 사업자가 사법당국에 덜미가 잡히면 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지난해에는 2014년부터 3년간 확인된 베팅액만 1400억 원 규모의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2009년 4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중국과 일본, 홍콩에 사무실을 두고 국내·외 스포츠 경기 승패 게임을 실시했다.
이런 위험에도 불법 토토에 손대는 것은 국내 합법 토토가 베팅룰 등 운영 방식이 엄격한 규제에 묶여 있어 사행성이 지나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토토 이용자들은 “합법 토토는 도박이 아니라 기부에 가깝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먼저 배당률이 너무 낮다.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으로 정한 스포츠토토의 환급률은 토토는 50%로 정해져 있다. 프로토는 50~70%로 범위를 두고 실제로는 60~65% 선에서 운용 중이다. 이는 85~90%까지 지급하는 국내 사설 불법 토토나 해외 토토와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같은 경기를 베팅할 경우 합법이 불법보다 배당금을 최대 40%까지 손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독일, 캐나다, 노르웨이, 싱가포르 등의 합법적인 토토 환급률은 60~75%가 대부분이다. 일부 프로토의 경우 80%대가 넘고 심지어 독일 프로토는 이론적으로 100% 이상의 환급률도 가능하다.
또 불법 토토는 한 경기의 승패만 맞춰도 배당을 받을 수 있고 베팅 금액에 제한이 없는 반면 합법 토토는 여러 게임의 결과를 동시에 맞춰야 배당을 받을 수 있으며, 1회 베팅금은 최대 10만 원으로 제한된다. 이외에도 불법 토토는 24시간 언제든 베팅 가능해 해외 축구, 야구 등 국내와 시차가 나는 경기의 경우, 경기 시작 얼마 전 공개되는 라인업을 보고 베팅할 수 있다. 하지만 합법 토토는 오전 8시~오후 10시에만 베팅이 가능해 불리한 게임을 해야 한다.
과도한 건전화 정책이 규제 허점 노린 불법만 배불려
세계 스포츠베팅의 산업 매출액은 2007년 480억 달러에서 2017년 610억 달러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합법 스포츠토토는 정부 유관 부처의 사행산업 건전화 정책에 따라 상당한 규제를 받고 있어 불법스포츠도박과의 경쟁에서 항상 뒤처지는 상황이다. 사행산업 건전화를 위한 규제 정책은 합법 사행사업자를 통제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불법도박 및 불법스포츠도박으로 이용객이 전이되는 ‘풍선효과’를 낳는 부작용이 문제다.
합법 토토 이용자가 줄어들수록 불법 토토로 유입이 늘면서 외화유출과 도박 중독, 사기 피해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번 불법 토토에서 고액 베팅으로 강한 자극을 맛 본 이용자들이 규제가 엄격한 합법 토토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결국 현재 토토는 합법적인 판에 발을 들인 후 더 재밌는 불법 토토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특히 불법 토토는 돈과 통장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청소년 도박 중독에 속수무책이다.
이런 폐해를 당국이 감시·감독으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영국 등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해외 사설 토토는 현지에선 합법이다 보니 한국인이 이용하는 경우를 적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배당률을 높이는 등 서비스를 개편해 국내 합법 토토의 재미를 높이고 불법 토토로 가는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포츠토토코리아 관계자는 “환급률 상향은 기본인데 처음 법으로 규정된 수치를 19년 동안 한번도 고치지 못해 현실화가 시급하다”며 “한 게임당 베팅을 허용하는 것도 해외 스포츠 베팅업체와 불법 토토가 허용하고 있어 우리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비합리적 규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에서 시행 중인 매출 총량제는 내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사행산업의 공급 규모를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제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발생한 매출(약 1조1000억 원)까지 총량제에 포함시켜 정책 취지를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카지노 매출 때문에 매출 총량이 초과돼 토토 판매를 못하는 경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익적 투자 늘리고 세수 유출 막기 위한 대책 필요
한국의 스포츠토토 사업은 2001년 출범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스포츠 산업 전문가들은 앞으로 토토가 도박을 넘어 건전한 놀이문화로 발전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문한다. 과거 토토 정책은 사행성 억제에 방점을 두고 공식 사업자를 규제하는 데 방점을 뒀다. 국가가 사행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이들 수요를 포섭할만한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는 쪽으로 논의 방향이 옮겨가고 있다. 토토 수익금은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축적돼 국내 스포츠인프라 투자와 비인기 프로체육팀 운영 등 공익사업에 사용되는 만큼 공익적 선순환도 기대된다. 소액의 베팅은 직장인 등이 일상에서 베팅을 통해 활력소를 얻을 수도 있고 중독성이나 도박성 여부는 사용자의 태도에 상당부분 결정되는 만큼 국가가 반드시 옭아매야 하는 영역도 아니다.
박준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은 “도덕적 엄격주의자론자들은 토토 자체를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억제하는 것이 이용자들을 음지로 내몰고 더 큰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 입장에선 국가가 사행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딜레마가 있어 머뭇거리지만 시장은 키우고 내부 운영자들의 관리 전문성을 더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