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은 물론 유럽 주요국도 전기차 보조금으로 자국 실익 추구

한국은 차량의 기능 등을 따지지 않고 가격에 따라서만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주요국들의 탄소중립 정책에 자동차 전동화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따라 전기차 판매율이 요동을 치고 있다. 물론 전기차의 생산비용·판매 가격이 충분히 하락할 경우 보조금의 필요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차의 가격 하락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어 당분간 전기차 시장에서 보조금 지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을 비롯해 각국의 전기차 확산 속도가 보조금 등의 정부 정책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주요국들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특정 기술 우대, 탄력적 지급, 가격 기준 설정 등으로 자국의 실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내에서도 정책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가격에 따른 보조금만 차등 지급해 한계 노출

국내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부터 현대자동차그룹과 테슬라의 양강 구도가 형성됐다. 기존 테슬라가 주도하던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지난해부터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를 비롯해 제네시스 eG80·GV60까지 다양한 신차가 출시되면서 국내 브랜드의 판매량 증대가 이뤄진 결과다.

올해는 이 양강 구도에 다양한 수입 전기차 모델들이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난해 12월 국내에 공개된 중국 지리홀딩스 산하의 폴스타 2는 새해 들어 수입 전기차 모델의 선봉에 서고 있다. 볼보 역시 지난 16일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인 C40 리차지와 XC40 리차지를 공개했고 제너럴 모터스(GM)는 볼트EV와 볼트EUV를 국내에 출시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입 전기차 브랜드 중에서는 GM의 행보가 상당히 공격적”이라며 “이미 2025년까지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에 270억달러를 투자하고 글로벌 시장에 30여종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할 계획을 밝힌 바 있는 GM은 그 중 전기차 10종을 국내에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산 전기차 브랜드와 수입 전기차 브랜드에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을 차등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지난 21일 발표한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주요국이 전기차 보조금으로 자국산 전기차를 우대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이 국가들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자국 내 신산업 육성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은 차량의 기능 등을 따지지 않고 가격에 따라서만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중국 등의 저가 전기차 브랜드가 국내 입성을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 이대로라면 자칫 수입 전기차 브랜드 공세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EU·中·日 등 경쟁국, 기술별·시기별 다각적 지원

주요국이 전기차 보조금으로 자국의 실익을 추구하는 방법은 크게 기술별 우대, 탄력적 지급, 가격 기준 설정 등으로 나뉜다. 먼저 중국, 일본 등은 자국산 자동차의 기술적 특성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운용 중이다.

중국은 정부가 장려하는 배터리 교환 서비스(BaaS) 기술이 적용된 차량을 보조금 기준(차량가격 30만위안 이하)에서 예외로 인정하며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도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일본은 재난발생시 전기차가 비상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해 외부 급전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추가 지급함으로써 자국산 전기차를 우대하고 있다.

이호중 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EREV는 외부에서 충전이 불가하고 엔진이 상시 작동한다는 점에서 보조금을 미지급하는 국가도 많지만 중국은 리 오토 등 자국 기업의 EREV 생산을 고려한 것으로 여겨진다”며 “일본도 지난해 기준으로 대부분의 일본산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에 외부 급전 기능이 장착돼 있어 해당 기능이 없는 외산 전기차에 비해 차량 1대당 보조금 상한액이 20만엔 더 높게 책정된다”고 설명했다.

유럽 국가 중에는 독일이 자국 완성차 기업이 내연기관 기술에 강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내연기관이 탑재된 PHEV에 여타 유럽 국가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독일 내수 시장에서 자국 브랜드가 PHEV 판매량에 힘입어 전기차 판매순위 1~4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누렸다.

유럽 국가들은 전기차 보조금을 탄력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독일 등은 자국산 전기차 판매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맞춰 지급액을 조절한다. 그 중 이탈리아는 자국산 전기차인 피아트의 뉴 500 일렉트릭의 판매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전기차 1대당 최대 2000유로의 특별 보조금을 추가하는 등 보조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 외에 프랑스, 중국 등은 가격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거나 보조금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자국 완성차 기업이 저가 소형 전기차 생산에 집중하는 것을 고려해 보조금 지급 가격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고가의 외산 전기차 판매를 억제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에서 테슬라 모델 3가 인기를 끌자 2020년부터 차량가격 30만위안 이상인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에서 보조금은 당분간 유효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합리적인 실익 추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배터리를 포함해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광물 가격이 상승한 가운데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 동등화 시점은 기존 예상 시점인 2025년보다 지연될 가능성이 높고 여전히 전기차 보조금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꾸준히 모색해야 하고 특히 전기차 관련 기업의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 등 다양한 기술 요건을 구체화함으로써 전기차산업은 물론 배터리 산업의 혁신까지 동시에 추구해온 중국 등의 정책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