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구단이 40대 사령탑, 성과에 따라 '경륜의 지도자' 재등장 할 수도

프로야구 40대 감독 전성시대
7개 구단이 40대 사령탑, 성과에 따라 '경륜의 지도자' 재등장 할 수도

프로 야구판의 사령탑 지도가 완전히 새로 그려지고 있다.

2003 시즌이 종료된 후 새 감독을 맞아 들인 구단은 하위권 다툼을 하던 LG 두산 롯데 등 세 팀. 표면적으로 감독 이동이 큰 폭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작지 않은 변화의 물결이 감지된다. 핵심은 '젊은 피'의 전면 등장과 출신 포지션의 대폭적인 변동. 40대 감독의 전성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점과 포수 출신 지도자의 득세가 지속된다는 점 등이 시선을 끈다.


2세대 감독 전면 등장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빛나는 명장인 김응용(62) 삼성 감독은 이제 외로운 처지다. 시즌 도중 하차한 비슷한 또래의 백인천(61) 전 롯데 감독에 이어 김인식(56) 전 두산 감독과 이광환(55) 전 LG 감독 등 50~60대 지도자들이 줄줄이 그라운드를 떠난 가운데 1세대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제자급' 지도자들과 승부를 펼쳐야 하기 때문.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원조 40대 기수' 김재박(49) 현대 감독이 내년이면 지천명의 나이에 올라서지만 현재로선 40대 감독들이 프로 야구를 접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재박 감독 아래로 유승안(47) 한화 감독, 김성한(45) 기아 감독, 김경문(45) 두산 감독, 조범현(43) SK 감독, 양상문(42) 롯데 감독, 이순철(42) LG 감독 등이 죽 늘어서 '40대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이 같은 큰 변화는 지도자 수업을 착실히 받아온 젊은 감독들이 대권을 물려 받을 만한 단계에 올라섰기에 이뤄진 일로 일단 볼 수 있다. 여기에 새로운 야구, 과감한 야구, 재미있는 야구에 대한 구단과 팬들의 갈증도 젊은 감독들을 찾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올 시즌 만년 하위팀 SK를 맡자마자 한국시리즈까지 견인하는 돌풍을 일으킨 조범현 감독의 성공 사례가 급속한 물갈이의 촉매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앞으로 40대 감독들의 천하가 될 것인가. 반론도 없지 않다. 하일성 KBS 야구해설위원은 젊은 감독들의 대거 등장에 대해 "일종의 유행이다. 이들이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2~3년 뒤엔 그림이 다시 바뀔 수 있다"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야인생활 중인 고참 지도자들의 경륜과 노하우가 아쉬울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포수 출신 득세, 투수 출신 퇴조

8명의 감독 중 3명이 포수 출신으로 채워진 것도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기존의 유승안, 조범현 감독에 신임 김경문 감독이 가세하면서 그려진 판도다. 올 시즌 중반에 백인천 감독이 경질되면서 깨진 포수 트로이카 체제가 다시 복원됐고, 이어 두 시즌 연속으로 포수 출신 감독이 3명이나 동시에 지휘봉을 잡게 됐다. “안방마님들의 대권시대”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사실 그라운드의 야전 사령관으로서 동료들을 통솔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등의 포지션 성격상, 포수는 현역 시절부터 일찌감치 지도자 훈련을 받는 특전(?)을 누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런만큼 포수 출신들이 감독에 많이 기용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인 셈.

포수 출신 감독들의 득세와는 대조적으로 투수 출신 감독들의 몰락 또한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성근 전 LG 감독에 이어 김인식 전 두산 감독 등이 최근 그라운드를 떠나면서 투수 출신의 쟁쟁한 명장들이 몽땅 사라진 듯한 인상이다.

내년 시즌 처음 지휘봉을 잡게 될 양상문 감독(롯데) 한 명만 투수 출신 지도자의 명맥을 이어 갈 형편. 양 ㉤뗌?현역 시절 대표적인 두뇌파 투수로 이름을 날린 데다 오랜 기간의 코치 수업도 거쳐 구단과 팬들로부터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다. 그가 유일한 투수 출신 감독으로서 자존심을 살려갈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반갑다, 외야 출신 감독

감독들의 출신 포지션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투수 포수 내야수 등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플레이'를 많이 요구받는 포지션 출신이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외야수 출신 감독은 상당히 드물다. 실제로 과거 지도자들 중에는 외야수 출신이 박영길, 윤동균씨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마저 은퇴한 90년대 초반 이후엔 아예 외야수 출신 감독의 법통은 끊기다시피 했다.

이순철 신임 LG 감독은 이런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는 재목으로 꼽히는 주인공이다. 내년 시즌 처음 데뷔하는 초보 감독이지만, 그의 선수시절을 떠올려 본다면 지도자로서도 성공을 예감해 볼 수 있다는 지적. 85년 신인왕 출신인 이 감독은 현역시절 공수주를 겸비한 데다 뛰어난 야구 센스까지 갖춘 최고의 외야수 중 한 명으로 꼽혔었다.

게다가 은퇴 후에는 작전 코치를 주로 맡아 경기를 읽는 안목을 꾸준히 키워왔다는 평가다. 이 감독 전격발탁에 대해 전문가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화력 뛰어난 덕장 역량 발휘

올해 프로야구 최대 이변 중 하나인 SK 돌풍의 최대 동력은 선수단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한 조범현 감독의 지도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조 감독은 비슷한 연배의 코치들과 격의 없이 토론을 즐기고, 선수들과는 함께 뛰고 달리며 팀의 구심점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수년간 배터리 코치를 하며 갈고 닦은 지략과 특유의 데이터 야구도 빛을 발했다.

감독은 용장, 지장, 덕장 등의 범주로 분류된다. 앞으로는 조범현 감독 같은 덕장이 역량을 발휘하는 시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선수들의 권리 의식이 커지고 코치들의 전문성이 높아진 요즘 프로야구에서는 감독 한 사람의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이 쉽사리 먹히지 않는 게 사실이다. 대화와 토론이 그래서 중시되고, 개개인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토록 하는 지도력이 그만큼 중요해진 것이다.

양상문 롯데 감독이나 김경문 두산 감독 등의 선임 배경에는 선수단과 잘 융화하는 친화력이 적잖이 고려됐다는 사실도 그와 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하일성 해설위원은 "미국 야구에선 감독 개인의 캐릭터를 중시하는 반면 한국야구에선 팀의 융화를 우선시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어 덕장에 대한 요구가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3-11-06 16:04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