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인 클럽 사상 첫 FA컵 본선진출 파란, 축구사랑 '프로'

재능교육 축구동호회, 한국판 칼레의 기적을 꿈꾸며…
동호인 클럽 사상 첫 FA컵 본선진출 파란, 축구사랑 '프로'

‘한국판 칼레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순수한 열정으로 축구공의 기적을 소망했던 11명의 직장인 전사들은 다시금 그들의 일터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판 칼레’를 향한 그들의 꿈마저 사그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프로와 아마를 통틀어 국내 최강팀을 가리는 2003 하나은행 FA(축구협회)컵 전국축구선수권 대회가 11월 30일 막을 내렸다. 승부의 세계인 스포츠에서 승리한 팀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이번 FA컵 본선 32강전에서는 일찌감치 탈락한 팀이 오히려 관심의 초점이었다. 실업도, 프로도 아닌, 순수 직장 동호인 축구팀인 재능교육 축구동호회가 바로 그들. 동호인 클럽으로는 사상 처음 FA컵 본선 무대를 밟아 장안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포항 스틸러스와 맞붙은 날, 솔직히 정말 긴장됐습니다. 처음 프로팀과 상대하는 우리로서는 어른과 대결하는 아이 꼴이었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선수들의 몸이 경직됐고 그 때문에 평소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어요. 실력차를 느끼기에 충분한 한 판이었지만 우리 기량을 아낌없이 쏟아내지 못한 점은 참 아쉬웠습니다.” 재능교육 축구동호회를 이끌고 있는 이규완 동호회장(45)이 11월 21일 패배의 고배를 안겨준 32강 첫 경기 포항전을 돌이켰다.

어른과 아이의 대결이었다. 0대5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재능교육은 프로팀의 높은 벽을 절감하며 완패했다. 조직력이 순간순간 이상하리만치 허물어지면서 전반전에만 4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후반전에 오기와 자존심을 곧추세워 정면으로 맞섰지만, 결국 상대 골네트를 출렁이지는 못한 채 1골을 더 먹고 말았다.

그러나 프로팀과의 첫 경험은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소득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주눅 들지 않고 경기를 펼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선수 모두의 가슴에 충만했기 때문이다.

재능교육 축구동호회가 출범한 것은 97년 3월. 축구를 사랑하는 사원 몇몇이 자연스레 동호회 창립을 의논했고, 그 결과 18명의 창단 멤버가 모였다. 임직원들의 단합과 친목을 중시하는 직장이라면 으레 그렇듯, 회사에서도 동호회 활동을 음으로 양으로 후원했다.

선수단과 함께 뛰며 땀방울을 흘릴 여유는 없지만, 한 임원은 적극적으로 스폰서가 돼 주었다. 동호회의 ‘단장’으로 선수단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재능인쇄 이헌우 이사가 주인공이다. 원진재 감독(38)은 “직원들이 회사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에 흠뻑 반한 이 단장께서 항상 우리 선수단에 각별한 지지를 보낸다”며 고마움을 나타낸다.


아무도 못말린 축구광들

선수들은 매일 아침 7시면 구로구 디지털산업단지 안에 있는 운동장에 어김없이 모였다. 어쩌다 전날밤 술자리에서 과음을 했어도, 축구공을 찬다는 설렘은 머리 지끈한 두통과 숙취를 가볍게 물리치는 힘이 됐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동료들과 뛰고 또 뛰고, 뒤엉키다 보면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땀에 젖은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동료들과 알몸으로 샤워를 하다 보면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그런 상쾌한 마음으로 맞는 근무 시간은 스트레스가 아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주말 이틀의 휴식은 아예 반납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아니 축구에 푹 빠진 그들에게는 운동이 휴식보다 달콤했던 것. 이 때문에 때로는 가족들과의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원 감독은 “워낙 축구에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가정에서 ‘힘든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반대로 주말마다 그라운드에서 포효하는 남편과 아들, 또는 아빠를 따라다니며 함께 즐거워하는 가족들도 적지 않았다. 재능교육 동호회의 게임메이커이자 공격형 미드필더인 양승창 선수(31ㆍ주장 및 코치 겸임)는 경기나 훈련 때마다 부모님과 아내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행복한 사나이다.

양 선수는 서울 남강고를 나와 인천전문대에 다닐 때까지 선수로 뛴 경력의 소유자다. 군 복무를 하면서 운동의 맥이 끊기는 바람에 아쉽게도 축구를 그만 둔 ‘한’을 갖고 있다.

현재 45명으로 늘어난 전체 멤버 중 초중고 시절 공을 찼던 선수는 16명에 달한다. 최전방 골잡이로 올 한해 각종 경기서 무려 33골을 작렬시킨 팀의 대들보 공재섭 선수(29)도 그런 경우다. 부천 명문 정명고를 졸업하고 안동대에까지 진학했던 공 선수는 1학년 때 갑작스레 찾아온 정신적인 슬럼프를 못 이기고 축구화를 벗고 말았다.

그러나 모두가 프로 출신인 것은 아니다. 스타팅 멤버 중 8명 정도는 선수 출신으로 구성되지만 나머지 3명은 순수 축구 애호가로 채워진다. 동호회를 꾸려 가는 숨은 살림꾼인 장주홍 총무(33)도 언젠가는 주전이 되리라는 꿈을 갖고 있다. 창단 멤버인 장 총무는 순수 동호인이다.

“처음 운동장에 나섰을 때는 5분 뛰기도 힘겨웠어요. 그런데 열심히 하다 보니 점차 뛰는 시간도 길어지고 자신감이 부쩍 늘더라구요.” 주변의 ‘선수급’ 동료들은 이내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가 장 총무입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이처럼 축구팀이 자라난 데에는 기업의 경영 이념 덕도 한몫 했다. 이들의 일터인 재능교육의 교육철학이 창업자 박성훈 회장이 내건 ‘스스로 학습’이다. 박 회장은 FA컵을 앞둔 선수들이 충분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대회를 1주일 남겨 둔 시점에서 회사 연수원을 내주는 등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스스로 선수단’의 내년 목표는 당연히 더 거창하다. “지난 8월 경일대를 꺾고 동호인팀 최초로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후 이헌우 단장을 헹가래치며 감격에 젖었습니다. 내년 FA컵에선 반드시 16강 이상 올라가서 오너인 박성훈 회장을 헹가래치고 싶습니다.” 선수들의 한결 같은 바램이다.

축구혼을 보여준 '칼레의 전설'
   

'칼레'는 프랑스 북부지역에 자리한 인구 약 8만 명의 항구도시. 이 도시는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명작 '칼레의 시민'으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2000년 이후로는 믿기지 않는 축구 신화를 창조한 곳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프랑스 축구협회 4부 리그에 소속돼 있던 이 도시의 아마추어 축구클럽 '칼레'가 그 해 FA컵에서 1ㆍ2부 강팀들을 연파하며 결승까지 올라가는 대이변을 연출했던 것이다. 부두 노동자, 상점 직원 등 평범한 직장인들로 구성된 '칼레'의 승승장구는 프랑스 전역은 물론 이웃 유럽 국가들에도 진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칼레는 결국 결승전에서 1부 리그의 낭트에 1대 2로 역전패하긴 했으나, 직접 경기장을 찾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비록 결과에선 낭트가 이겼으나, 정신에선 칼레가 이겼다"며 최상의 격려를 보냈다. 그것은 순수 축구혼으로 똘똘 뭉친 한 아마추어팀이 낳은 엄청난 업적에 대한 당연한 찬사였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3-12-04 14:5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