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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유럽축구 '변방의 반란'
UEFA 챔피언스 리그, AS 모나코 vs FC 포르투 결승서 격돌
전통의 명문팀들 덜미, 클럽축구 춘추전국시대 예고


챔피언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프리메라리가)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도, 그렇다고 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A)이나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도 아니었다.

지난 8개월 동안 축구대륙 유럽을 뜨겁게 달궜던 2003~2004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가 종착역을 향해 마지막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유럽 4대 빅리그에 속하는 전통의 강호들이 단 한 팀도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이변을 낳은 이번 대회는 5월27일 ‘파란의 주인공’들인 AS 모나코(프랑스)와 FC 포르투(포르투갈)의 결승전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대회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나면 한 팀은 환희로 가득 찬 축배를 들고 다른 팀은 눈물의 쓴잔을 마시겠지만, 사실 지금까지 달려온 자취만으로도 그들은 모두 승자다. 빅리그의 변방에 머무르며 실력과 인기에서 한발 뒤쳐진 것으로 평가받은 설움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 쾌거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유럽 클럽축구의 기존 판도를 크게 뒤흔들며 어느 해보다 풍성한 화제를 쏟아낸 2003~2004 챔피언스리그를 미리 결산해 본다.




AS모나코의 모리엔터스가 첼시와의 UEAF 컵 준결승 2차전에서 비긴 뒤 결승진출이 확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 골리앗 무너뜨린 다윗

이번 챔피언스리그의 가장 큰 특징은 AS 모나코의 드라마틱한 반란에서 보듯 유럽의 클럽축구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전망을 낳은 데 있다.

그 동안 유럽 각국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들이 총출동하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끝까지 살아 남는 팀은 빅리그 소속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1년 유고의 크르베나가 프랑스의 올림피크 마르세이유를 물리치고 우승컵을 차지한 대회 이후로 13년 동안 4대 빅리그 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실패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빅리그의 강호들은 곧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지배자로 통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그 같은 질서를 단번에 무너뜨린 ‘다윗’들의 무대였다. 8강전에서 지구방위대라는 닉네임의 초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를, 4강전에선 세계최고의 갑부 구단 첼시를 연파한 AS 모나코의 기적은 ‘구 질서’ 붕괴를 상징하는 압축판이다. AS 모나코는 창단 56년 만에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지난 87년 우승 이후 17년 만의 결승 진출을 이뤄낸 FC 포르투 역시 영광의 추억을 가진 구단이기는 하지만 이번 대회의 성과에 대한 감회는 AS 모나코 못지 않다. 1999~2000 시즌 8강에 올라 잠깐 반짝한 것 외에는 한 동안 챔피언스리그 무대의 구경꾼 신세를 면치 못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S 모나코와 FC 포르투의 결승 대결로 요약되는 변방의 반란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들이 몰고 온 돌풍은 말 그대로 한 바탕 불고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시대별로 풍미한 유럽 클럽축구의 큰 흐름을 하나의 분석틀로 제시해 주목된다. 박문성 MBC-ESPN 해설위원은 “60년대에는 스페인, 70~80년대에는 독일과 네덜란드, 90년대에는 이탈리아 구단들이 강세를 보이는 등 유럽 클럽축구 판도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었는데 그것이 2000년대에 와서는 ‘평준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빅리그와 다른 리그 소속팀들의 전력 차가 상당히 좁혀지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챔피언스리그의 군웅할거 양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AS 모나코와 FC 포르투의 빛나는 성취는 다른 한편으로 사령탑의 능력에 힘입은 바도 크다. 두 팀 모두 수준급의 선수들로 구성되기는 했어도 이름값에서 ‘특급’이라 할 만한 스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호화 멤버로 구성된 강적들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데는 감독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가대표 주장 출신의 디디에 데샹 감독(AS 모나코)이나 체육교사 출신의 호세 무링유 감독(FC 포르투)은 둘 다 현대 축구의 한 축을 이루는 정보전에 능한 젊은 지도자들이다. 게다가 나이와 경륜이 무색할 만큼 뛰어난 지략으로도 호평을 받는다. 이번 대회는 자신들의 갈고 닦은 내공을 유감 없이 만천하에 드러낸 장인 셈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명문 클럽들의 모셔가기 움직임은 벌써부터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 강호들의 침몰 이유 있다

이번 챔피언스리그가 개막할 무렵만 해도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들은 전통의 강호들이었다. 세계 유수의 스포츠 베팅 전문업체들이 내놓았던 우승 확률로 봐도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등의 강세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우승 확률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던 두 ‘약체’의 결승 진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른바 챔피언스리그의 ‘3M’이라 불리는 강호 세 팀은 4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참담함을 곱씹어야 했다. 아무리 공은 둥글고 평준화가 추세라지만, 강호들의 동반 몰락에 대한 이유로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 궁금증은 이들 구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 구단 모두 겉으로는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속으로는 간단치 않은 문제를 안고 챔피언스리그에 임했다는 것이다.

먼저 레알 마드리드는 글로벌 마케팅을 지향한다며 이름값 위주로 선수들을 영입하다 보니 팀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기존 멤버들과 포지션이 겹치는 데이비드 베컴을 ‘장삿속’으로 무리하게 데려온 것이 단적인 예다. 베컴을 영입하면서 내보낸 특급 수비형 미드필더 마케렐레의 공백은 결국 우려했던 수비 라인의 부실로 이어졌다.

바이에른 뮌헨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는 세대교체 과정에 있는 팀이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부진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베컴 뿐만 아니라 세계 4대 미드필더로 꼽히는 후안 세바스찬 베론을 함께 방출한 모험이 단기적으로는 팀워크를 해친 결과로 나타났다.

아울러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를 앞세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한 아스날도 당초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혔으나 자국 리그와 FA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쫓다 보니 제풀에 지쳐 우승권에서 멀어졌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 ‘변방의 반란’이 가능했던 데는 강호들이 둔 ‘악수’가 적잖은 도움을 준 셈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4-05-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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