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올드코스에서의 추억


올드코스의 1번 홀은 번(Burn)이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는 370야드의 파4 홀이다.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스윌컨 번(Swilkan Burn)이라는 작은 개울에서 따온 이름이다. 페어웨이는 톰 모리스(Tom Morris)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18번 홀의 페어웨이와 구분되어 있지 않다. “죄악의 계곡”이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다. 그런데다가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그래니클락이라는 아스팔트포장길이 뚫려 있어, 관광객들이 수시로 오간다. 그래서 처음 세인트앤드류스의 올드코스를 방문하는 사람으로서는 그곳이 잔디밭광장이 아닌 골프코스의 페어웨이라고 얼른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스타트하우스에서 두 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2004. 7. 19. 08:28경 올드코스에서 티샷을 했다. 3년 만에 맛보는 올드코스에서의 라운딩 시작이었다. 3년 전 올드코스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날, 살아 생전에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하더라도 여한이 없노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다시 이곳에서 라운딩을 하고 있자니, "세상에 나보다 골프복(福)이 많은 사람이 하늘 아래 누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감개무량하였다.

14번 홀은 롱(Long)홀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523야드의 파5홀이다. 14번 홀의 페어웨이를 엘리지안 필드(The Elysian Fields)라고 부른다. 티잉그라운드로부터 166야드 지점에 털보들(The Beardies)이라는 벙커가 있다. 퍼팅그린에지로부터 193야드 지점에는 벤티(Benty)라는 이름의, 135야드 지점에는 키친(Kitchen)이라는 이름의, 100야드 지점에는 저 유명한 지옥(Hell)이라는 이름의 벙커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옥의 벙커와 퍼팅그린 사이에는 그레이브(Grave)라는 벙커들이 있고, 퍼팅그린 앞 뒤편에 또 벙커가 있다. 그러나 14번 홀의 티잉그라운드에서 올라서면 곳곳에 러프와 구릉이 있어 이들 벙커들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로버트ㆍ헌트라는 코스 설계가가 1927년 1월에 쓴 “ The Ideal Golf Course "라는 논문에서 14번 홀의 코스공략 루트가 4가지 있다고 설명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올드코스의 14번 홀이야 말로 모든 수준의 골퍼들로 하여금 골프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가장 모범적인 홀이라고 격찬하였다. 티샷한 볼이 털보벙커와 벤티벙커 사이의 러프 지점에 떨어졌다. 그러나 러프지역임에도 볼의 라이는 약간 떠있어서 오히려 샷하기 좋은 상태이었다. 세컨샷한 볼은 그레이브벙커와 그린에지 사이에 멈추었다. 캐디의 권유대로 7번 아이언으로 굴려서 어프로치했다. 아쉽지만 버디성(性)파를 했다.

17번 홀은 461야드의 파4 홀이다. 골퍼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로드홀이다. 벤ㆍ크렌쇼는 이 홀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홀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실제로 플레이를 해보면 파5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히코리샤프트가 사용되고 페더리볼이나 구티볼이 사용되던 시절에 이 홀은 파4가 아니라 파5 홀이었다. 티잉그라운드에 서서 가장 이상적인 티샷을 날리려면 올드코스 호텔의 간판글씨를 붙인 채, 지척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담벼락을 겨냥해야 한다.

1984년도의 전영 오픈에서 다섯 번째 우승을 노리던 톰 왓슨은 마지막 날 세베와 동타를 이룬채 로드홀에 와서 1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했다. 그런데 볼은 담벼락에 걸려 튕겨져 나왔고 그의 꿈도 함께 꺾였다. 그런데다가 이 홀에서는 거의 언제나 맞바람이 불어 골퍼들로 하여금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그리고 퍼팅그린 바로 앞에는 악명 높은 로드(Road)벙커가 자리하고 있다. 1978년도의 영국오픈 사흘째 날의 일이었다. 일본의 토미 나카지마선수가 로드홀에서 파퍼트한 볼이 그만 퍼팅그린을 벗어나 로드벙커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는 4타만에 벙커탈출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도 다시 투퍼트를 했다. 결국 나카지마는 그날 17번 홀에서 9타만에 홀아웃했다. 그런 일이 있는 뒤부터 골퍼들은 로드벙커를 나카지마 벙커라고도 부른다. 티샷한 볼은 담벼락을 거뜬히 넘어 갔다. 그런데다가 짐짓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약간 드로까지 걸렸다. 멋진 티샷에 이어 4번 아이언으로 투온을 하였다. 로드벙커는 나에게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그 흔한 세인트앤드류스의 바람마저도 나의 티샷을 비켜갔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입력시간 : 2004-08-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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