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양병집 1집 '넋두리' (1974년 성음제작소)외국곡 번안해 한국적 이미지로 재창출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대표적 3대 저항 포크가수로 각인

청년들이 대중문화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했던 70년대 대중음악은 확실히 차별적인 색채를 담보하고 있다.

어느 시대건 그 시대 특유의 질감이 느껴지는 음악 스타일이 있게 마련이지만 70년대의 대중음악은 확실히 이전과 이후 시대와 차별되는 독특함이 있다.

군사정권의 사회적 통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던 시기였기에 70년대 대중음악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청년들의 은유적 외침과 혼탁한 세상에 저항하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가 공존한다.

1968년 장발을 휘날리며 미국에서 귀국한 한대수가 포크가수로는 최초로 자유분방함을 담은 창작곡을 발표하며 모던 포크의 시대를 열었다면, 김민기는 시적인 가사와 맑고 회화적인 이미지가 강한 노래로,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폴리오는 달콤한 하모니로 청년들의 가슴에 포크송의 매력을 심어주었다.

클래식에 버금하는 단아한 느낌이 강했던 김민기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기운이 강력했던 한대수는 음악스타일 면에서는 이질적인 측면이 많지만, 공히 노래와 가사를 만들고 직접 노래까지 했던 싱어송라이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과는 달리 외국 곡을 번안해 한국적 이미지로 재창출했던 탁월한 포크가수가 있었다. 양병집이다. 그는 자신만의 멜로디를 창작하지는 못했지만 억압된 당대 사회현실을 비꼬는 노랫말을 한국적 향내가 풍기는 구수한 보컬에 얹어 외국 곡이나 구전가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뮤지션이다.

1974년에 발표된 그의 첫 독집 '넋두리'는 총 10곡이 수록되었다. 명품 포크음반으로 손꼽히는 이 음반 재킷사진은 인상적이다. 뱅글뱅글 도는 돋보기안경 너머로 째려보는 작은 눈매와 담배를 질끈 물어댄 이미지를 통해 고집스런 그의 음악세계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주목할 노래들은 '서울하늘1'과 '서울하늘2'. 우디 거스리의 'New York Town'을 참조한 '서울하늘1'은 그의 당대 청년들의 순진한 소망을 짓밟아 버리는 도시의 비정함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지만 방송부적격이란 이유로 주홍글씨를 달았다.

피트 시거의 'LOU MARSH'를 번안한 70년대 서울의 풍경을 스케치한 '서울하늘2'는 60년대 이래 경제개발, 국가재건을 모토로 달려온 결과가 '빈부 차'임을 증언하고 있다. 당대 대중의 풍요와 빈곤이라는 이중성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명곡이지만 이 곡 역시 미처 대중이 접할 틈도 없이 지하로 잠수한 숨겨진 한국포크의 명곡이다.

2면에 수록된 '역'(원 곡은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right)은 시대를 앞서간 그의 혜안을 느낄 수 있는 노랫말의 비범함이 번뜩이는 히트곡이다. 30년 전 그가 예견한 미래의 모습은 현실로 재현된 섬뜩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 노래는 요절한 후배가수 김광석에 의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다시 불리어졌다. 자신의 어머님을 그리며 작곡했다는 '아가에게'는 유일한 창작곡이다. 피트 시거의 'THE THRESHER'를 번안한 '그녀'도 주목할 만한 곡이다. 원곡은 1963년 4월 심해에서 군사훈련도중 사고로 침몰된 미 핵잠수함 트래셔 호에 탑승해 사망한 129명의 승무원들에 대한 애도를 통해 반전의 메시지를 담았던 노래다.

세계적인 혼성 포크트리오 피터, 폴&메리의 미국 구전가요 'WEEP FOR JAMIE'를 변안한 '잃어버린 전설'은 민청학련 등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어 죽거나 사라진 젊은 영혼을 애도했던 사회성 짙은 비장한 노래였다. 이처럼 모든 수록곡은 양병집의 힘찬 목소리와 자신만만한 기타 연주로 풍자적인 노랫말만큼이나 통쾌함을 안겨준다.

'한국 3대 포크명반'으로 회자되는 이 음반은 "3개월 만에 사망처리 되었다"는 당대의 기사처럼 금지의 대명사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사회 풍자적인 노랫말과 어두운 곡들로 포진한 불순한(?) 이 음반은 1975년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고 사망처리되었다.

비록 제작된 1500장 중 금지 이전에 팔린 800장이 세상에 남겨진 전부이지만 이 음반을 통해 양병집은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대표적인 3대 저항포크가수로 각인되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