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주세요> 등 드라마 속 여성들 음악 통해 자아 찾기

SBS '나는 전설이다'
"We will come back. We will come back. 마치 우린 마돈나처럼. (중략) 절대 멈추지는 마. 너무도 귀한 사람아. 절대 뒤돌아보지 마. 빛나는 우릴 보여줘. 당당하고 아름답게. 내 사랑하는 널 위해~"

여자들이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남편에 치이고, 시댁에 치이고, 세상에 치인 여자들이 음악과 노래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려 한다. 이들은 왜 음악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

음악, 자아를 찾아서

안방극장이 일주일 내내 음악의 향연을 이어갈 준비가 한창이다. 오랜만에 지상파 방송 3사는 여배우들을 앞세워 밴드를 결성하는가 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짜릿한 인생역전의 순간을 그리려고 한다.

KBS <결혼해주세요>와 MBC <글로리아>, SBS <나는 전설이다>, SBS <자이언트> 등은 라이브 공연을 방불케 하는 전략으로 시청자들에게 음악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이들 드라마가 공통적으로 내세운 건 여자들의 '자아 찾기'.

MBC '글로리아'
각 드라마들은 시대와 가족, 인생에 찌든 여자들의 항변을 음악과 노래에 녹였다. 특히 30대 여자들의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이 가장 돋보이는 주제다. <결혼해주세요>, <글로리아>, <나는 전설이다>는 가족 간의 갈등을 노래로 풀어가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결혼해주세요>는 떡집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남편을 대학교 전임교수가 되는 데 뒷바라지한 남정임(김지영 분)이 주부에서 일약 스타가 되는 과정이 담긴다. 평범한 주부가 남편의 무시와 외도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노래를 선택했다. <글로리아>와 <나는 전설이다>도 마찬가지.

이들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자신을 잃어버린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들이다. 나진진(배두나 분)은 부모 없이 5세 수준인 언니와 살면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절박한 삶을 살지만, '글로리아'라는 무대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한다. 전설희(김정은 분)는 국내 최상류층 법조명문가의 며느리로, 시댁의 멸시와 가식에서 벗어나고자 밴드를 조직한다.

여고시절 활동했던 '마돈나 밴드'를 재결성해 이혼과 함께 자신을 찾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처럼 뻔하지만 감동이 전제한 이야기들이 음악을 중심으로 나란히 TV 앞에 섰다. 진지하지만 음악적 화법으로 속 시원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의 김형식 PD는 "삶에 지치고 사람에,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들이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가게 된다. 재미와 함께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 '결혼해주세요'
음악과 노래가 새로운 드라마적 소재거리는 아니다. 1997년 MBC <내가 사는 이유>에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술집에 나가는 애숙(이영애 분)이 기타를 튕기며 부르던 노래 한 소절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아픔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사랑한다면 그녀처럼>은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한 평범한 은행여직원(남주희 분)이 암 선고를 받고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했다. 1990년대 TV 속 여자들의 노래는 마치 삶을 부정하는,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의 도피처였다.

시대적 흐름 때문일까. 드라마에서 노래가 갖는 해석법은 분명히 달라져 있다. 도피처였던 음악이 현재 드라마에선 '나'를 찾는 도구이자 이상향이 되었다. 노래가 드라마 속에서 홀로서기에 나서는 여자들을 대변하는 통로가 된 셈이다.

왜 음악이 희망인가?

40대 주부 안은진 씨는 강남의 한 음악 학원에서 보컬트레이닝을 받는다.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자신이 직접 소리를 내는 것을 꿈꿔왔던 그는, 얼마 전 용기를 냈다. 안 씨는 "노래에 자신이 없어서 무척 작았던 목소리가 자신감을 얻은 후에는 커졌다. 노래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행복이란 멀지 않더라"고 말했다.

영화 <즐거운 인생>도 사회와 가정에서 힘이 빠진 아버지들이 모여 기운의 목소리를 냈던 영화다. 영화 속 아버지들은 밴드를 결성해 자신들의 위상을 찾고 나아가 자기만족의 행복을 만끽했다. 이들도 음악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왜 우리는 음악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일본의 작곡가이자 음악프로듀서인 미쓰토미 도시로는 저서 <음악은 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를 통해 음악은 "인간이 행복을 위해 만들어온 것"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문명의 발달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로 변해 자아의 목적을 찾는 데 집중됐다. 결국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음악이 해방의 역할을 담당했고, 그 속에서 인간은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었다.

미쓰토미 도시로는 "음악은 좀 더 직접적이다. 말보다도 웅변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은 거기 담긴 정보량이 달라서 공감을 얻기도 하지만 오해를 받기도 쉽다. 그러나 음악은, 그것을 듣는 순간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 추구해온 마음과 기억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말이 필요 없는 것이고, 시공을 초월해 한 순간의 빅뱅처럼 몇 만 년의 역사를 순식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음악이 갖는 무한한 능력 가운데 인간의 행복까지 책임질 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음악을 이용한 '뮤직 테라피'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글로리아>의 정지우 작가는 "내 어머니가 봤을 때 즐거운, 위로가 되는 드라마를 원했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살아있는 실감이다. 음악을 듣는 순간 살아있는 기분을 느낀다면 음악을 듣는 것이 행복이고, 살아갈 희망이 될 것이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