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드라마 과 해고 공포에 떠는 회사원의 애환, 대학 시간강사의 아픔으로 대변

<역전의 여왕>
신문 기사에서 자주 보이는 '연예인 굴욕 시리즈'는 천차만별의 형태로 진화했다. 다리 길이 굴욕, 얼굴 크기 굴욕, 레드 카펫 드레스 굴욕 등 주로 인기 연예인의 외모나 부끄러운 개인사를 화젯거리로 삼는 '굴욕 시리즈'는 '화려한 스타들에게도 저런 면이 있다니'하는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굴욕 시리즈가 도를 지나치면 사람들은 그런 기사를 쓴 기자들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사실 굴욕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가볍게 쓰일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누군가를 대놓고 면박주기 위해서나, 편파적인 기준으로 한 사람의 외모나 대외적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기사는 대중의 반감을 사기 쉽다. 무엇보다도 다리 길이나 얼굴 크기, 레드 카펫 드레스에 붙은 양면 테이프 따위로 '굴욕'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가벼운 유머와 심각한 폄하 사이의 경계는 지극히 애매모호하다.

인생에서 정말 굴욕적인 순간들은 사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드라마 은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일상적인 굴욕을 감당하는 회사원들의 애환을 그린다.

주인공 황태희(김남주)는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누구보다도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뼈아픈 고독과 주위의 질시뿐임을 알고 괴로워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래서 열심히 했고 취직 잘 해야 된다 그래서 기 쓰고 취직했고 회사 들어와선 일 열심히 해야 한대서 독하다고 욕 얻어먹어가면서 일했거든? 그랬더니 난 우리 팀의 왕따고, 친구들 보기에 인생 뒤처지는 애고, 우리 엄마의 창피한 딸이고, 왜 그런 거지?"

사시, 행시, 외시 등 온갖 고시공부를 전전하다 늦깎이 회사원이 된 봉준수(정준호)는 결국 '회사에서 필요 없는 사람'으로 '분류' 되어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군대 후배 구용식(박시후)에게 나는 가장이니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희망퇴직서'를 제출하라는 차디찬 명령뿐이었다.

아내 황태희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후배에게 울며불며 매달리는 모습은 살아남기 위해 비굴해질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끔찍한 고통을 그려낸다. 우리는 '밥줄'이 걸린 사안 앞에서 결코 초연할 수가 없다.

내 눈에도 내가 비굴하게 느껴지는 '굴욕'을 참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고 어떤 자존심 싸움도 무색해지는 순간의 비애를 느낀다.

'갑과 을의 전면전'으로 요약되는 의 서글픈 굴욕 시리즈는 황태희의 용감무쌍한 남편 기 살리기 작전으로 시청자들에게 위안을 선사한다.

<즐거운 나의 집>
구조조정 대상자들과 함께 한 회식자리에서 황태희는 '황태자' 구용식에게 일침을 놓는다.

"내가 살아보니까 인생은 갑과 을이더라"고. "아무것도 한 거 없이도 아버지 잘 만나서 이렇게 상석에 앉아 나이 많은 사람 무릎 꿇릴 수도 있는 사람이 갑, 우리 남편이나 여기 있는 사람처럼 무릎 꿇고 나가라면 나가는 사람이 을. 갑 보이기에는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을들 모두 제 밥벌이 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명대사는 '태어날 때부터 갑'이고 '태어날 때부터 을'인 신계급사회의 비애를 여실히 꼬집는다.

회사에서 쫓겨난 남편이 풀 죽은 얼굴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황태희는 쓰레기장에서 울고 있는 남편을 발견한다. 내가, 쓰레기 같아서. 내가 여기 있는 쓰레기들하고 똑같은 거 같아서 울고 있다는 남편의 모습을 보자 아내의 억장은 무너진다.

"미친 거 아냐? 세상에... 이렇게 허우대 멀쩡하고 근사한 쓰레기가 어딨냐? 내가 그럼 쓰레기에 반해서 결혼하자고 쫓아다닌 여자란 말야? 당신 그건 나한테 너무 모욕적인 말이다 진짜. 아우 그래. 쓰레기라 그래. 쓰레기가 꼭 뭐 버려지기만 하냐? 재활용이라는 게 있잖아! 안 그래? 고개 들어. 왜 이래! 천하의 봉준수가!" 그녀의 격려는 가족들을 위해, 아슬아슬한 밥줄을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굴욕감과 싸워야 하는 이 세상 수많은 '을들'의 동질감을 자극한다.

드라마 에서 고학력 실업자 이상현(신성우)의 인간 선언 또한 '비굴'과 '굴욕'을 참아가며 허울 좋은 지식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강사들의 아픔을 대변했다.

그는 연구비 횡령을 비롯한 각종 대학 사회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로 찍혀 동료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었다. "대학은 비판적인 지성의 장이란 말을 믿었던 순진함을 반성합니다. 대학 내에 고질병인 연구비 횡령, 논문대필, 교수채용 비리 등을 고발해 학자적 양심에 호소했던 무모함을 반성합니다.

지난 10년간 8명의 강사들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목을 매 죽었음에도 언젠가는 반드시 1억 연봉을 받는 교수가 될 거란 환상에 빠져 그들의 죽음을 외면했던 나의 철저한 이기심을 반성합니다.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학점을 주고 있음에도 나는, 시간강사는, 교원이 아닙니다. 이 부당한 현실에 맞장 뜨지 못하고 한번도 교원지위를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지 못한 나를 반성합니다. 교수 연구실에 휴지까지 사다 바치며 온갖 따까리를 하다못해 억대도 아니고 단돈 5000만원으로 교수 자리를 사려했던 나의 우매함을 반성합니다.

취업준비학원이 돼버린 대학에서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는 여러분들의 고통을 무시한 채 정의니, 진리니, 희망이니 입으로만 떠들었던 나의 미숙한 선생질을 깊이 반성합니다." 그는 이제 시간강사 자리에서까지 밀려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공부하는 일까지 그만둬야 한다.

이 모든 '굴욕'들은 피할 수 없는 주변상황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더 큰 굴욕은 자신의 의도와 선택 때문에 일어나기도 한다.

에서 남편 봉준수의 진정한 굴욕은 아내 황태희의 기획안을 몰래 훔쳐 마치 자신이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인 양 멀쩡하게 발표했을 때 절정에 다다른다.

아내는 자신이 죽을 고생을 해서 마련한 기획안을 자랑스럽게 발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자신을 속이고 배신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에서도 이상현의 진짜 굴욕은 학교에서 쫓겨났을 때가 아니라 지금껏 충실히 자신을 믿어주고 '실질적 가장'이 되어준 아내를 배신하고 아내의 친구와 내연관계가 되는 순간 절정에 다다른다.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결정할 수 없는 사안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자존을 스스로 해치는 순간도 있다. '최고의 굴욕'은 바로 이럴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진짜 내 운명의 선택권을 오직 나만이 손에 쥘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런 '고독한 선택'의 순간 '굴욕'과 '존엄' 사이의 날카로운 경계선은 여지없이 판가름난다. 우리는 '유혹'이라는 먹이 앞에서 스스로 얼마나 당당해질 수 있는지,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을 때조차도 내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할 수 있는지.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