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연인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부활3집 '사랑할수록' 1993년 도레미레코드교통사고로 못이룬 형의 꿈 동생이 이어

요즘 대중은 확실히 가슴 뭉클한 성공담에 열광적이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70년대식 신화를 부활시키며 '허각'이라는 슈퍼스타를 탄생시킨 '슈퍼스타K2'에 이어 록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극복의 일대기를 그린 KBS 2TV 드라마스페셜 '락락락(락樂ROCK)'이 다시 한 번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의외의 예능감각으로 뒤늦게 '국민할매'로 사랑받고 있는 김태원은 탁월한 보컬리스트 이승철을 통해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과거 노래하는 가수에게만 관심이 집중된 대중음악계의 일그러진 풍토는 밴드 멤버들에게 비싼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부활 역시 1집 성공 이후 보컬 일인에게만 집중되었던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그런 점에서 부활 1집이 대중적 인지도를 안겨준 명반이었다면 최고의 음악성을 구현했던 2집은 록 밴드의 존재감과 상업적 실패라는 시련을 동시에 안겨준 저주받은 걸작이었다. 이후 리드보컬 이승철은 솔로로 독립했고 1988년 멤버들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밴드는 공중 분해되었다.

그리고 5년. 극도의 방황기를 거치며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냈던 리더 김태원은 26살의 젊은 구세주 김재기와 2인조 밴드를 구축해 록밴드 부활을 재가동시켰다.

두문불출 신곡 창작에 들어간 그는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옛 연인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을 애절한 멜로디로 승화시킨 노래를 창작했다. 부활 3집에 수록된 불후의 명곡 '사랑할수록'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된 이 노래의 음성은 고 김재기고 이미지는 그의 친동생 김재희로 남아있다. 음반에는 김재기의 보컬을 유작 개념으로 그대로 실었지만 활동은 친동생이 대신했기 때문이다. 3집 타이틀 곡 '사랑할수록'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탄생비화를 남겼다.

사연은 이렇다. 녹음이 한창이던 1993년 8월 11일. 홀로 녹음실에 남아 연습에 몰두했던 김재기는 김태원에게 전화를 걸어 견인된 중고차를 찾으려 했지만 견인비 3만 4000원이 없어 어렵게 차를 찾았다. 그날 김재기는 빗길 운전 중 추돌사고로 가수의 꿈을 이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럽게 리드보컬을 잃은 부활의 컴백앨범 제작도 답보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우연하게 발굴한 친동생 김재희(본명 김재두)는 형의 공백을 채워줄 또 다른 구세주였다.

형과 음색이 거의 흡사했던 것. 결국 부활 3집은 난산 끝에 김재기의 오리지널 보컬로 LP와 CD로 제작되었고 활동은 보컬 김재희와 옛 멤버인 베이스 정균교, 드럼 김성태의 합류로 갈무리되었다.

믿기 힘든 사실은 오리지널 보컬인 고 김재기의 노래는 교통사고 전 날, 단 한 번 녹음한 유일한 음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1993년 10월에 나온 '사랑할수록'은 발표와 동시에 히트한 노래는 아니다. 대중적 파급력을 확보하는 데 6개월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장될 운명에 놓였던 이 노래는 이듬해 봄부터 라디오와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서서히 반응을 이끌어냈다. 뒤늦게 앨범은 뮤직박스 판매차트에 5주간 1위에 오르며 70만 장이 넘게 팔리는 폭발적인 반응으로 방송과 한국DJ협회 차트 정상에 등극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3집은 '사랑할수록'외에도 황순원의 소설과 부활 멤버들의 혼란스러웠던 사연을 접목한 '소나기'와 요절한 김재기의 사망일을 제목으로 한 추모 연주곡 '8.1.1'이 관심을 끌었다.

당시 형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해 무대에 선 동생의 애절한 사연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노래는 랩 댄스 열풍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은 유일한 발라드 록 넘버가 되었다. 이승철, 박미경, 화요비, 포지션, 이루 등은 이 노래에 존경심을 표한 리메이크가수들이다.

2집 이후 회복불능의 폐인으로 취급당한 김태원에게 제작비를 투자할 음반사는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김태원은 신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들고 기획사를 순례하는 굴욕을 감내했다.

아름다운 연꽃은 진흙탕에서 피어나듯 극도의 혼란기에 탄생한 발라드 록의 명곡 '사랑할수록'은 너무도 슬퍼서 아름다운 노래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