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동안 방영 'NHK 사극' 단 한편뿐!일주일에 한 회씩ㆍ평균 시청률 20% 이상… 주로 전국시대 배경톱배우들의 사극 출연ㆍ한 번 오는 기회로 '영광'… 매회 끝날때마다 지역소개

▲ 일본 사극 '풍림화산'
대한민국은 가히 '사극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KBS 2TV <공주의 남자> SBS <무사 백동수>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종방됐고, KBS 1TV <광개토태왕>, MBC <계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방송되고 있다. SBS는 <무사 백동수> 종방에 맞춰 <뿌리깊은 나무>를 시작하며 사극 열풍을 계속 이어갈 기세다. 그 밖에 <온조 비류><전우치><빛과 그림자> 등이 방영을 앞두고 있다. 때문에 당분간 사극 열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사극의 인기는 꽤 높다. 1980년대에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독안룡 마사무네>(1987)와 <다케다 신겐>(1988)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극 열기가 다소 주춤한 2000년대에도 사극은 20% 이상의 평균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일본 사극은 공영방송사 NHK로 대변된다. 민영방송사들은 장편 사극을 거의 제작하지 않고 있다. NHK 역시 한 해에 여러 편의 사극을 제작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 회씩 일년에 걸쳐 단 한 편의 사극을 방영할 뿐이다. 에도 막부 말기의 정치인 이이 나오스케의 일대기를 다룬 <꽃의 생애>(1963)부터 현재까지 48년간 계속 되고 있는 일본 NHK 사극은 한국 사극과는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 제한적인 시대배경

▲ 일본 사극 '천지인'
일본 사극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한국 사극처럼 다양하지 않다. 15세기말~17세기초의 전국시대와 19세기 근대화 과정이 가장 많이 다뤄진다.

지난 10년(2002~2011) 동안 전국시대 관련 사극은 총 5편이었다. <도시이에와 마츠>(2002) <공명의 갈림길>(2006) <풍림화산>(2007) <천지인>(2009) <고우-공주들의 전국>(2011) 등이다.

10편 중 절반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이 크고 작은 수백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 죽음과 맞서야 했던 무사와 혼란의 시기를 틈타 불세출의 출세 가도를 달린 인물이 주로 사극의 주인공이다.

이 외에도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10편 중 3편(<신선조(2004)> <아츠히메(2008)> <료마전(2010)>)이었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19세기에 혼란을 겪었듯 일본 역시 서양 세력의 유입으로 내부적 갈등을 경험했다. 위의 세 작품은 이를 반영한다.

반면 한국 사극은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 사극의 시대적 배경은 2000년 이전까지 주로 조선시대였다.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KBS에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삼국기(1992~1993)>를 제작했으나 실패를 맛봤다. 이런 경험이 더욱 더 방송사들이 조선시대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 일본 사극 '아쓰히메'
본격적으로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쏟아진 것은 2000년 이후다. <태조 왕건>(2000~2002)을 시작으로 점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주몽>(2006~2007)부터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 다룬 <영웅시대>(2004~2005)까지 한국사 전반을 다루고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시청자들이 역사책보다 사극을 통해 역사를 배울 정도다.

▲ 정통사극에 대한 고집

최근 한국에는 퓨전사극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 중 <추노>(2010) <성균관 스캔들>(2010)이나 <공주의 남자>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주제는 정치가 아닌 사랑과 주인공들의 삶 그 자체다.

과거 조선시대 사극들이 왕과 그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권력다툼을 묘사하는데 열중했다면 요즘 사극은 멜로 중심으로 흘러간다. 정치는 오히려 남녀를 갈라놓는 장벽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 주인공들이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인 경우도 많아졌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것이 '사극(史劇)'이라는 대중의 편견도 점차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정통사극의 형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극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영주나 가신(家臣)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주로 주인공의 성공 과정과 중요한 정치적 사건을 묘사하는데 열중한다. 애정구도가 나오지만 사극의 한 부분일 뿐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이는 일본 사극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일본 사극에도 허구는 많다. 기록과는 다르게 특정 사건에 주인공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들이 주로 그렇다.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 반복되지 않는 주연진

일본 사극에는 매년 톱배우들이 캐스팅된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고우-공주들의 전국>의 주연은 우에노 주리(25)다. 그 밖에 미야자와 리에, 미즈카와 아사미 등이 주연급에 포진되어 있다. <천지인>(2009)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츠마부키 사토시(30)와 오구리 ?(28)이 나란히 출연해 눈길을 끌었고, <료마전>(2010)에는 일본 최고의 톱스타 중 하나인 후쿠야마 마사하루(42)와 히로스에 료코(31)가 합류했다.

일본 사극에는 이처럼 매년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여러 편에 등장하는 일이 없다. 톱스타에게도 NHK 사극에 출연하는 것이 한 번 오는 기회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극 전문 배우'라고 불리는 연기자들이 있다. 송일국(40)은 <해신>(2004~2005)에 출연한 이후 <주몽><바람의 나라>(2008~2009)>의 주연도 맡았다. 두 드라마에서 송일국이 맡았던 역할인 고구려 동명성왕(주몽)과 대무신왕(무휼)이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독특한 캐스팅이다.

최수종(48)도 대표적인 사극 전문 배우다.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1988~1989) 출연 이후 <조선왕조 500년 대원군>(1990) <태조 왕건><태양인 이제마>(2002) <해신>(2004~2005) <대조영>(2006~2007)에서 주연을 맡았다.

최수종과 몇몇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춘 김갑수(54)는 주연급은 아니지만 사극의 단골 손님이다. <태조 왕건>을 시작으로 <성균관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총 12편의 사극에 출연했다. 이처럼 한국 사극의 경우 다른 사극에서 검증된 배우를 다시 캐스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세태가 지나칠 경우 시청자들에게 식상함을 줄 수 있고, 배우의 이미지 또한 고정될 수 있다.

▲ 실제 역사 배경지 홍보

일본 사극의 다른 독특한 점은 매회 끝날 때마다 나오는 지역 소개다. 일본 사극은 인물을 중심으로 하되 한국처럼 지난 회부터 매끄럽게 이야기가 연결되는 구조는 아니다. 대형사건이 아니면 매주마다 다른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NHK는 매주 사극이 끝날 때마다 이번 회와 관련된 역사적 무대를 소개해준다. 영상뿐만 아니라 내레이션을 더해 어떤 사건이 있었던 곳인지,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시청자들이 사극을 보다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또한 해당 장소에 갈 수 있는 교통편을 함께 내보내 관심 있는 시청자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영상이 나가는 시간은 불과 몇 분에 불과하지만 사극의 시청률이 높은 만큼 지역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한국 사극은 역사의 배경 무대에는 다소 소홀하다. 드라마 촬영지의 세트장이 관광상품으로 개발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고, 사건이 일어난 실제 무대에는 관심이 없다. 시청자들에게 사극에 대한 신뢰감을 줄 뿐 아니라 지역관광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 사극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장금>(2003~2004) <이산>(2007~2008) <동이>(2010) 등은 '한류 사극'이라 불리며 한국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한국 사극이 일본 사극에 비해 '신선'하기 때문이다. 사극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멜로와 정치적 암투를 적절히 버무려 맛깔나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일본 내부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한국 사극은 거짓'이라는 비판이 있다. 한국 사극이 재미에 치중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할 때다.



안진용 기자 realy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