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호지슨 감독 / AP=연합뉴스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그동안 명성에 걸맞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한 마디로 하면 '빛 좋은 개살구'에 다름 아니다. 세계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의 결집체임에도 국제 무대에서 어깨를 제대로 펴지 못했다. 196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른 뒤 한 번도 주요 국제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 못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하는 망신을 당했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가 공동 개최한 유로 2008에도 구경꾼에 머물렀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열리는 유로 2012에서 자존심 회복을 노리는 잉글랜드 축구는 3개월간의 장고 끝에 로이 호지슨(65)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4년. 잉글랜드는 '호지슨 체제'로 2012 본선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을 치르게 된다. 잉글랜드가 '메이저 대회 잔혹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별명은 '삼사자 군단'이다. 세 마리의 사자로 만들어진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엠블럼에서 기원했다. 용맹스러운 별명을 지녔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름 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자국 리그가 발전하면 대표팀도 좋은 성적을 내기 마련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수준과 인기는 세계 최고로 꼽힌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 독일 분데스리가와 함께 '빅 4'로 평가된다.

그러나 '유럽 축구 리그 빅 4' 가운데 유독 잉글랜드 만이 국제 무대에서 지리멸렬하다. 독일은 국제 대회의 영원한 우승 후보다. 2000년대 초반 '녹슨 전차'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분데스리가에서 길러낸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세대 교체를 단행,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에서 잇달아 4강에 올랐고 유로 2008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으로 떠올랐다. 유로 2008과 남아공 월드컵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이탈리아는 최근 들어 주춤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독일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유로 2008에는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고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16강전에서 전통적인 라이벌 독일에 1-4로 참패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계속 사령탑을 맡아 유로 2012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그러나 지난 2월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존 테리를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놓고 FA와 대립각을 세운 끝에 사임했다.

후임 호지슨 감독은 여러 면에서 카펠로와 대조적인 스타일이다.

카펠로 감독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세리에 A의 최고 명문 AC 밀란과 유벤투스, AS 로마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1974년 서독 월드컵에 출전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카펠로는 A매치 통산 32경기에서 8골을 기록했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도 명문 팀만 지휘했다. 유벤투스,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같은 최고 클럽의 사령탑을 역임했다.

반면 호지슨의 이력서는 카펠로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진다. 현역 시절 논리그(아마추어) 클럽을 전전했고 남아공 클럽에서 뛰기도 했다. 지도자로 나선 뒤에도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유럽의 '마이너리그'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스위스, 핀란드, 아랍에미리트(UAE) 대표팀을 지휘했지만 역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호지슨 감독은 2008년 고국으로 돌아왔고 풀럼, 리버풀, 웨스트 브로미치 감독으로 지도력을 인정 받은 끝에 '삼사자 군단'의 지휘자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러나 앞길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잉글랜드는 스웨덴, 프랑스, 우크라이나와 함께 유로 2012 본선 D조에 편성됐다. 8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대진이다. 스웨덴은 전통적인 '잉글랜드 킬러'다. 잉글랜드는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도 스웨덴을 꺾지 못한 징크스를 지니고 있다. 잉글랜드는 1992년 유럽선수권에서 스웨덴에 1-2로 졌고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는 무승부에 그쳤다.

프랑스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강국으로 잉글랜드와의 전통의 라이벌이다. 우크라이나는 객관 전력에서 떨어지지만 개최국의 이점이 있다. 게다가 간판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조별리그 1, 2차전에 나서지 못한다.

호지슨 감독은 유로 2012의 기본 목표로 8강 진출로 잡았다. 그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 기간이 4년이지만 유로 2012 8강에 오르지 못하면 사퇴 압력이 거셀 전망이다.

잡초 같은 축구 인생을 살아온 호지슨 감독이 개성 강한 잉글랜드 스타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휘어잡을지 주목된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