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째굴러온 당신' 방귀남
"이게 다 방귀남 때문이다."

최근 KBS 2TV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극본 박지은ㆍ연출 김형석ㆍ이하 넝굴당)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30대 즈음의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이 남성 네티즌은 "요즘 술자리에서 오후 10시만 되면 휴대전화 알람이 울립니다. 알람 이름이 '아내에게 전화할 시간'이더군요. 한 시간 후에 또 알람이 울립니다. '장모님에게 문자 보낼 시간'이라고요. 이게 다 방귀남 때문입니다"고 적었다.

'넝굴당'의 방귀남이 화제다. '국민 남편' 칭호까지 얻었다. 잘난 방귀남 때문에 드라마 속 남편들까지 비교되는 모양새다. 이들을 전면 비교했다.

#현실+이상형

방귀남은 왜 사랑 받을까? 시댁에서 수세에 몰리는 아내 차윤희(김남주)를 보호해줘서 일까? 아내 앞에서 '오피스 와이프'를 운운한 여자후배를 따끔히 혼내 줘서일까? 다 맞다. '남편'이 '남의 편'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에 공감하거나 다른 여자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을까 걱정해본 주부시청자들이라면 방귀남에 빠질 수밖에 없다.

'빅' 길민규
방귀남 캐릭터가 돋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이렇게 완벽한 내면을 갖춘 남자가 능력도 있고 외모도 훌륭하다는 사실. 방귀남은 유학파 출신 외과의사다. 원색 카디건부터 백팩까지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소화하는 젊은 감각을 지녔다.

'넝굴당'의 제작사인 로고스필름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한국과 전화통화에서 "방귀남 캐릭터에 현실감이 없다는 평이 많았지만 사실은 현실 속 남편들의 모습을 반영했다"며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내가 유준상처럼 잘 생기지 않았고, 방귀남처럼 돈을 잘 버는 의사가 아니라 그렇지 성격은 뒤지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편 캐릭터' 중 연령대가 낮은 축에 속하는 점도 방귀남 인기에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관계자는 "극중 남녀주인공이 결혼을 하는 해피 엔딩이나 연인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넝굴당'은 '젊은 남편상'을 그리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색다른 관심을 얻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실 그대로

영혼체인지 콘셉트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KBS 2TV 월화 미니시리즈 '빅'(극본 홍정은, 홍미란ㆍ연출 지병현, 김성윤). 극중 외과의사이자 기간제 교사 길다란(이민정)의 예비 남편인 서윤재(공유)는 '넝굴당'의 방귀남을 제압할 남편상이 될 법했다. 하지만 불의의 사로고 영혼이 증발된 탓에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다.

'스탠바이' 류정우
덕분에 극중 길다란의 아버지 길민규 역을 맡은 안석환이 '빅' 속의 남편 캐릭터로 주목 받고 있다. 안석환은 배우 윤혜영(이혜정)과 함께 부부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길가만두'의 사장으로 가게 살림을 꾸리는 그는 대한민국 아버지의 전형적인 근엄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띠 동갑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젊은 아내'를 얻은 의외의 면이 숨어있다. 콧소리로 애교 만점인 이혜정의 한 마디면 얼음장 같은 마음도 녹는다.

안석환의 극중 모습은 홍정은ㆍ미란 자매 작가가 '빅' 대본 집필에 앞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하다. '빅'의 제작사인 본팩토리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한국과 전화통화에서 "요즘 늦깎이 신랑들을 보면 젊은 신부를 차지하는 '도둑'들이 많지 않냐"며 "소수에 해당할지라도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면을 반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실감 제로

최근 MBC 일일시트콤 '스탠바이'(극본 박민정 외ㆍ연출 전진수)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류정우(최정우)다. 그 동안 준엄한 이미지로 카리스마 있는 역을 도맡았던 최정우의 변신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류정우 캐릭터가 처음부터 눈에 띈 건 아니었다. 그는 극 초반부 류진행(류진)ㆍ기우(이기우) 형제의 아버지이자 시완(임시완)의 할아버지로 역할 했다. TV11 방송국의 PD이자 류진행ㆍ기우의 상사인 박준금(박준금)과 결혼에 성공하면서 류정우 캐릭터도 변화일로를 맞았다.

극중 류정우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징글징글하다"다. 손자만 챙기는 진행에게, 자신을 무시하는 기우에게, 진행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시완에게 하는 말이다.

준금과 있을 땐 달라진다. "여왕님이라 불러주세요"라는 준금의 말에 "당연히 그래야죠"라며 맞장구 친다. 꺼려하는 아들들과 손자에게 "징글징글한 녀석들, 말 좀 들어!"라고 타이른다.

된장찌개와 밥 두 그릇으로 60년 평생 아침상을 맞은 그는 하루 밤 사이 식성도 바꿨다. 아몬드 10개, 사과 두 쪽을 차린 준금에게 "이런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은 처음입니다"며 아부를 떤다. "아버지 이렇게 드신 적 없잖아요"라는 아들에게는 역시 "징글징글한 녀석들"이라는 구박을 일삼을 뿐이다.

'스탠바이'의 전진수 PD는 스포츠한국에 "류정우 캐릭터는 요즘 60대 남성들과 배치되는 모습이 많다"며 "정년 퇴직한 요즘 가장들은 모든 대접받고 편하게 생활해야 하는 위치가 아니냐"고 전했다.

전PD는 이어 "현실감과 괴리가 있지만 시트콤에서는 재미를 줘야 하기 때문에 '황혼의 로맨티스트' '황혼의 철부지' 느낌을 살려보자는 취지로 류정우 캐릭터를 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민정기자 eldol@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