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야구 전문가들은 LG가 전반기 중반까지 선전할 때도 야구계의 유명한 콩글리시 'DTD(Down team is Down)'를 떠올렸다. 팬들도 말하듯, '올라갈 팀은 올라가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이는 LG뿐만 아니었다. 넥센의 돌풍도 말 그대로 '돌풍(突風)'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젊은 타자들과 선발 투수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선수층이 두텁지 않고, 풀타임을 경험한 선수들이 많지 않아 여름철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런 넥센이 전반기를 3위로 마치자 전문가들은 슬쩍 말을 바꿨다. 개막을 앞두고 LG, 한화와 함께 '3약'으로 꼽혔던 넥센은 시즌 초 잠시 승패차 '-2'를 기록했을 뿐 5월16일 부산 롯데전 이후 팀 창단 최다인 8연승을 내달리며 상승 곡선을 그렸고, 그 이후로 단 한 차례도 5할 승률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결국 2008년 창단 후 최고 성적인 3위(40승2무36패ㆍ0.526)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염경엽 코치는 "우리 팀이 경험과 체력 부족으로 후반기 어렵다는 전망이 있는 걸 알고 있다"면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포지션 별로 백업 요원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절대로 힘이 떨어져 4강에서 탈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반기까지 이미 팀 당 80경기 가까이 치른 상황에서 넥센의 성적 앞에 '깜짝'이라는 말을 붙일 수도 없고, 공수의 탄탄한 짜임새를 봤을 때 4강 경쟁에서 밀릴 이유가 없다는 확신이 담긴 말이었다.

김시진 넥센 감독은 지난해까지 구단의 열악한 재정으로 '선수 팔아 연명하는 구단'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며 구단의 체질 개선에 앞장섰다. 선수의 미래를 위해 투수를 혹사시키지 않는다는 그의 철칙도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던 고난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넥센 강정호
심재학 코치는 "무엇보다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서 벗어난 게 올 시즌 선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지난해까지 하위권에 전전하면서도 오히려 다른 구단과 달리 심적 부담은 전혀 없었다. 편한 마음으로 경험과 실력을 쌓았고, 마침내 올해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넥센의 선전에는 새 주장 이택근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말 LG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고 50억원의 거액에 친정 팀을 택한 이택근은 리더로 중심을 잡았다. 박병호와 강정호가 중심 타선에서 폭발할 수 있었던 건 화려하진 않지만 그라운드에서는 찬스를 만들어주고, 경기장 밖에서는 끊임없이 용기와 격려를 불어 넣어 준 '캡틴'이택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운드에서는 나이트와 밴 헤켄, 두 용병이 선발진의 '원투 펀치'을 이루면서 팀을 이끌었다. 전반기에만 9승을 거둔 나이트는 무릎에 대한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 내고 위력적인 공을 뿌렸다. 올해는 화끈한 타선 지원 덕에 승리를 이어가며 지난해까지 따르지 않던 승운도 확실하게 잡아가고 있다.

6개월간의 페넌트레이스를 치르기 위해서는 '깜짝'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등장해야 한다. 2000년대 강 팀으로 거듭난 SK, 두산도 '깜짝 스타'가 있었다. 잘 나가는 팀일수록 '새로운 피'가 수혈돼야 큰 활력소가 되기 마련이다.

넥센에는 서건창이라는 대형 신예가 등장했다. 방출과 두 번의 신고선수 입단이라는 굴곡을 딛고 올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오른 서건창이 넥센 타선의 실질적인 분위기 메이커였다.

8팀 중 4팀이 진출하는 50%의 확률이지만 '가을 잔치'는 선택된 팀만이 초대받을 수 있다. 공수의 안정된 전력뿐만 아니라 벤치 파워와 신예 선수, 팀 분위기까지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넥센의 전반기 성적은 결코 '깜짝'이나 '돌풍'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만은 없는 '사건'이었다. 2008년 팀 창단 후 새 역사에 도전 중인 넥센의 후반기는 그래서 더 기대된다.



성환희기자 hhsu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