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메가폰이다. 대본(영화배우), 붓(화가), 펜(시나리오 작가)에 이어 4번째다. 대세의 끝은 어디일까.

'하대세' 하정우(34ㆍ본명 김성훈)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 '인간과 태풍'(제작 판타지오 픽쳐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을 통해서다. 하정우에게 영화감독은 영화배우, 화가, 시나리오 작가에 이어 4번째 직업이다.

하정우의 첫 연출작인 '인간과 태풍'은 한류스타 마준규가 탄 도쿄발 김포행 비행기가 예기치 못했던 태풍에 휘말려 추락 위기에 빠지면서 승객들과 승무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코믹영화다.

하정우에게 연출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망이다. 하정우는 "영화에 대해 좀더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었다"며 "이번에는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에 접근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이어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비롯해 소소한 아이디어 하나하나까지 배우, 스태프들과 같이 고민하는 작업이 무척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정우의 첫 연출작인 '인간과 태풍'은 이달 내에 크랭크 인에 들어가며, 내년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주연은 군에서 전역한 정경호(29)가 맡는다. 정경호는 하정우의 중앙대 연극학과 후배이자 소속사 한식구이기도 하다.

김성훈에서 하정우로

본명이 김성훈인 하정우는 '전원일기'로 친숙한 중견배우 의 아들로 출발했다. 김성훈이 지난 2005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의 경호원 역으로 출연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저 친구가 아들이라고?"라고 했다.

그러던 김성훈이 하정우가 된 것은 2008년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에서 섬뜩한 연쇄살인범 지영민을 연기하면서부터다. 이 영화는 그해 513만 명의 관객을 유치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했다.

하정우의 색깔이 더욱 선명해진 것은 이듬해인 2009년이다. 하정우는 '국가대표'(감독 김용화)에 출연해 깊고 진한 연기력을 과시했고 "차세대 국가대표 배우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하정우는 거침없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충무로의 티켓파워' '하대세'라는 애칭도 생겼다. 지난해 하정우는 '황해'(감독 나홍진)와 '의뢰인'(감독 손영성)으로 연기력을 새삼 재확인시켰고, 올해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 '러브픽션'(감독 전계수) 등에서 자신만의 컬러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흥행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는 배우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측면에서 하정우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작품이다.

이 영화는 군대에서 선임과 후임으로 만난 동창생에게 벌어지는 비극을 그린 작품으로,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영화평론가협회의 신인상을 받았다.

개인전 4번, '중견작가'

하정우를 단 하나로 규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듯하다. 하정우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화가로도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정우는 2010년 3월 경기 양평군 닥터 박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4차례나 전시회를 열었다. 이쯤 되면 '중견작가'라는 애칭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하정우는 가장 최근이었던 지난 4월부터 4개월 간 서울 대치동 'Hㆍart 갤러리'에서 작품 20여 점을 전시했고, 팬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하정우의 그림은 현대미술의 거장인 김흥수 화백에게 극찬을 받았다. 또 미술 평론가인 숙명여대 김종근 교수는 "화가가 될 사람이 배우가 됐다. 주목해야 할 작가"라고 하정우를 치켜세웠다.

하정우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뉴욕 흑인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영화를 본 뒤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정우의 소속사인 판타지오는 최근 서울 역삼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뒤 빌딩 6개 층을 통째로 쓰고 있다. 그중 1층에는 소속 배우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할 'café Fantagio'를 열었다. 이 카페에서는 하정우의 대표적인 미술작품을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하정우의 작품들은 전시회 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작품의 가격을 정확하게 매길 수는 없지만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100편 출연이 꿈

배우 하정우는 충무로에서 '다작 배우'로 통한다. 하정우는 800만 관객이 찾았던 '국가대표'에서는 주연을 맡았고, 단 3만 명이 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는 조연으로 나왔다.

하정우는 대중이 외면했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과 '숨'에서는 주인공을 맡았다. 흥행에 성공한 주류 영화에서든, 흥행에 실패한 비주류 영화에서든 하정우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다작배우' 하정우의 최종 목표는 뭘까. 하정우는 "죽을 때까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작 배우 하정우"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정작 하정우는 "그저 영화가 좋아서"라고 '단순하게' 답한다.

하정우가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은 영화를 기준으로 21편. 하정우는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하정우는 최소한 100편에 출연하는 게 꿈이자 목표다.

"역할의 비중에서 의식적으로 자유로워지자고 다짐해요. 영화를 제가 정말 좋아해서 100편 출연 목표를 세운 듯해요. 배우 꿈을 꾸던 대학 시절, 영화 한 편 보고 자는 게 제 생활에 위로와 힘이 됐어요. 그때 용산에 가서 샀던 DVD 하나하나에 따스함이 있는 것 같거든요."

● 하정우는 누구

생년월일: 1978년 3월11일

신체조건: 184㎝ 75㎏

데뷔작: 마를렌

주요 출연영화: 마를렌(2003)

슈퍼스타 감사용(2004)

잠복근무(2005)

용서받지 못한 자(2005)

김용건
시간(2006)

구미호 가족(2006)

두 번째 사랑(2007)

숨(2007)

추격자(2008)

차현우
비스티보이즈(2008)

멋진 하루(2008)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보트(2009)

국가대표(2009)

조영남
평행이론(2010)

황해(2010)

의뢰인(2011)

범죄와의 전쟁(2012)

러브 픽션(2012)

차인표
577 프로젝트(2012)

베를린(2012)

주요 출연드라마: 똑바로 살아라(2002)

무인시대(2004)

프라하의 연인(2005)

히트(2007)

주요 출연연극: 굳세어라 금순아(2000)

카르멘(2001)

굿닥터(2001)

유리 동물원(2002)

고도를 기다리며(2002)

오델로(2005)

주요 출연광고: 스팸(2011)

오리온 초코파이(2011)

맥심 모카골드(2012)

삼성 갤럭시 노트(2012)

맥스(2012)

주요 수상내역: 한국영화 평론가협회 신인상(2005)

춘사영화제 남우주연상(2008)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자상(2010)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본상(2011, 2012)

집안이 '배우 사관학교'
하정우 아버지는 … 동생은

하정우만 있는 게 아니다. 하정우의 집안은 배우 가문이다. 부친과 함께 동생도 현역 배우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하정우 집안=배우 사관학교'인 셈이다.

하정우의 부친은 중견배우, '전원일기'로 유명한 (66). 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은 패션 리더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하정우의 동생은 '떠오르는 스타' 다. 는 당대 최고 투수였던 고 최동원과 선동열의 이야기를 그린 '퍼펙트게임'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는 극중에서 선동열과 배터리를 이룬 장채근(홍익대 감독)의 역을 맡아 열연했다. 는 장채근 역을 소화하기 위해 체중을 무려 23㎏이나 찌웠다.

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형이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시작할 때 저는 극단에 들어가서 내공을 쌓자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각자의 길을 걷는 걸 보면서 저도 본능적으로 저만의 무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는 의 아들, 하정우의 동생으로 더 유명한 게 사실이다. 물론 도 이런 점을 잘 안다. 하정우가 의 아들, 하정우의 동생이 아닌 배우 로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이유다.

연예계 '팔방미인' 많네
화가 -사진작가 박상원-소설가 등

하정우 말고도 연예계에는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유감없이 뽐내는 팔방미인들이 많다.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스타들은 미술, 사진,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업' 활동을 하고 있다.

가수 , 배우 김혜수 심은하 등은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은 개인전을 열 정도의 실력을 선보이며 화가와 가수의 합성어인 '화수'(畵手)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김혜수와 심은하는 지난 2009년 서울오픈아트페어에 미술작품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혜수는 사진 이미지를 화폭에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의 작품을, 심은하는 수묵화를 선보였다.

배우 박상원은 사진에 관심이 많다. 박상원은 2008년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박상원의 '모노로그'라는 개인전을 개최했고, 배우 조민기는 개인전에 이어 사진 전문 스튜디오까지 열었다.

배우 김수미는 에세이를 통해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해 담백하게 이야기했고, 배우 김혜자는 책에서 자신의 사회봉사활동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배우 는 2009년에 장편소설 '잘 가요 언덕'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풀어났다. 가수 이적은 소설집 '지문사냥꾼'을 선보였는데 교보문고와 네이버가 공동 주관한 '2005 올해의 책 10선'에 뽑히기도 했다.

배우 유지태와 조재현은 하정우와 마찬가지로 메가폰을 잡은 케이스다. 유지태는 '자전거 소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나도 모르게' '초대'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조재현은 2006년 임재범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감독으로 데뷔를 신고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