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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는 내 반성문 같은 이야기"

● 배우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박중훈 인터뷰
박중훈은 충무로의 산증인이다. 1986년 약관의 나이에 영화판에 첫 발을 디딘 후 28년간 오롯이 배우로 살았다. 충무로 데뷔작인 '깜보'부터 주연을 맡았던 그는 항상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선 주인공이었다.

약관(弱冠)의 박중훈은 신선했고 이립(而立)의 박중훈은 믿음직했다. 그리고 불혹(不惑)을 넘기며 안성기와 함께 각각 충무로의 아버지와 맏형 역할을 하던 박중훈은 웬만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만큼 심지가 굳고 속이 깊어졌다.

하지만 불혹이라는 나이에도 박중훈을 흔들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영화 현장의 총지휘관인 '감독'은 그가 아직 가지 않은 길이었다. 28년간 카메라 앞에 서면서도 괜히 월권이란 이야기를 들을까 욕심을 뒤로 하고 감독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박중훈은 고심 끝에 메가폰을 잡았다.

24일 개봉된 영화 '톱스타'(제작 세움영화사)는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이다. 카메라 앞이 익숙하던 배우가 카메라 뒤에 앉으니 "쑥스럽다"며 그는 연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톱스타'는 스타를 꿈꾸던 매니저 태식(엄태웅)이 실제로 톱스타 자리에 오른 후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평범한 한 청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거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톱스타'.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에 살을 붙인 이 영화는 '배우 박중훈'을 넘어 '감독 박중훈'이 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충무로 선ㆍ후배들은 입을 모은다.

▲감독이라는 호칭이 익숙해졌나.

"아직 어색하고 쑥스럽다. 적어도 내가 마치 대단한 작품을 만든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함몰돼 객관적으로 영화를 볼 수 없다. 창작자가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면 정말 위대한 일 아닐까? 나는 그렇지 못하다. 개봉 후 2,3주 정도 지나면 '톱스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될 것 같다."

▲감독과 배우의 역할이 어떻게 다르던가.

"배우는 관객들에게 '감정'을 보여준다. 반면 감독은 '생각'을 보여줘야 한다. 감정을 보여주는 일은 오래 해봐서 익숙한데 생각을 보여주는 건 너무 힘들고 떨린다. 칭찬은 못받아도 낙제점은 받지 말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데뷔작을 만들며 왜 연예계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나.

"배우로 28년을 살았다. 올해 마흔 여덟인데 언제부터인가 마음 한 켠이 답답하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20,30대 때 성취를 위해 달려오며 내가 행한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던 것 같았다. 주변 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나의 성장통 같은 이야기를 '톱스타'에 풀어 넣었다. 물론 주인공 태식이 곧 나라는 건 아니다.(웃음)"

▲배우 출신 감독이니 캐스팅도 깨나 신경썼을 것 같다. 왜 엄태웅을 선택했나.

"처음에는 20대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친분이 전혀 없는 엄태웅에게 섭외를 의뢰했다. 우선 엄태웅에겐 결핍감이 느껴진다. 무언가 덜 채워진 것 같고 허술한 느낌이 태식과 어울렸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게 살아온 그의 삶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엄태웅은 선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포악해지는 태식에게 관객들이 연민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엄태웅은 이런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가진 배우였다."

▲촬영하며 엄태웅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내가 죄를 지은 것 같다. 배우(박중훈) 출신 감독 앞에서 배우(태식)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엄태웅)의 부담이 얼마나 컸겠나. 배우가 배우 이야기를 하다보니 '톱스타'에는 강한 자의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감독을 믿고 그런 힘든 연기를 해준 엄태웅을 비롯해 모든 출연 배우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영화 속 이야기는 사실인가? 허구인가?

"굳이 말하자면 팩션(fact+fiction)으로 봐야 한다. 온전히 박중훈의 과거를 이야기했다고도 할 수 없다. 그 동안 수많은 스타들을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바탕이 됐다. 확장된 부분도 있고 축소된 부분도 있다. 어찌보면 뻔한 연예계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톱스타'는 스토리보다는 흥망성쇠를 겪는 스타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에너지가 넘친다고 느꼈다. 완급 조절이 조금은 아쉽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하긴 그런 에너지가 없었다면 박중훈도 여기까지 못 왔을 거다. 극중 한 기자가 "욕심이 많으시네, 우리 배우님"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건 예전 내 이야기다. 특별출연한 안성기 선배님이 안하무인인 태식에게 "에너지가 너무 넘치는 것 같다"고 에둘러 말하는 것도 사실 나에게 충고하는 것 같았다. 당시에는 온통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내 언행이 잘못됐다는 걸 몰랐다. 그걸 이제서야 영화를 통해 이렇게 고백하고 반성하는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색채와 사운드가 강렬하다고 느꼈다.

"연예계는 흥업(興業)이다. 연예인들의 명암도 분명이 갈리고 인기의 사이클도 굉장히 빠르다. 어제와 오늘의 위치가 확확 바뀐다. 이런 변화를 표현하고 싶어 색채감과 사운드를 강하게 줬다. 때문에 각 장면마다 조명을 사용할 때 특별히 신경을 썼다."

▲감독 박중훈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조건은 무엇인가.

"감독이 잘 아는 이야기인지,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는지, 그 이야기를 세상에 던질 가치가 있는지, 이렇게 3가지를 모두 갖췄을 때 '걸작'이라 하더라. 내가 이 요건 중 몇 퍼센트를 충족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3가지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찍었다. '톱스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박중훈은 태식처럼 몰락한 적은 없지 않나.

"어릴 적 대마초에 손을 댔다가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다. 당시 각종 손해배상에 휘말리며 집이 가압류되기도 했다. 그 때 통장에는 잔고가 몇 십 만원 밖에 없더라.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가장 큰 약이 됐다."

▲감독을 하겠다는 박중훈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던가.

"대부분 걱정부터 하더라. '이미 배우로서 많이 가진 사람이 뭘 더 가지려 하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그런 인식 때문에 '톱스타'를 촬영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더라. 사실 나는 살아오며 동정표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게 내 이미지라더라. 그런 이미지 때문에 사는 게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누굴 원망하겠나. 그런 시선을 약으로 삼아 더욱 절치부심하며 '톱스타' 연출에 매진했다."

▲감독 박중훈의 다른 작품도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톱스타'를 본 후 박중훈의 다음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다시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창작자로 자부심은 갖되 자만심은 버리려 노력했다. 카메라 앞에 설 때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득의양양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상식 선에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감독이라면 더욱 그런 시각을 견지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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