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 이미지서 '첨단 IT강국'… 쑥~ 커진 존재감한국인=돈벌레 '황당 설정 눈살 '물소떼' '다다미방' 엉뚱한 설정최근 국내 촬영 시작 '어벤져스2 최첨단 IT·의료선진국으로 묘사한국 영화시장 성장에 위상 변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이 30일부터 서울 마포대교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한국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18일 체결된 양해각서는 '영화 내용에서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인을 돈벌레로 묘사하거나, 한국을 분단국으로만 그려내던 이전 분위기와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무슨 이유인지 살펴봤다.

▲부정적 이미지, 천편일률 & 몰이해

과거 할리우드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비했다. 혹은 황당한 설정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선 '한국인=돈벌레'로 그려졌다. 뤽 베송 감독의 '택시'(1997)에선 트렁크에서 쪽잠을 자며 교대로 운전하는 한국인 택시기사를 볼 수 있다. 조엘 슈하머 감독의 '폴링다운'(1993)에는 돈에 집착하는 한국인 편의점 주인이 등장한다. 이듬해 국내 개봉 예정이었지만 비난 여론으로 상영이 불발돼 1997년에나 국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키아누 리브스는 2008년 영화 '스트리트 킹'으로 내한했지만, 극 중 한국인 비하와 인종차별적인 대사 등으로 환영 받지 못했다. 이를 입막음 하려는 수입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태도까지 문제가 됐다.

한국에 대한 몰이해도 찾아볼 수 있다. '크래쉬'(2006)에서 한국인은 여타 동양인과 구분되지 않은 범죄자로 그려졌고, '007 어나더데이'(2002)에서는 동남아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물소떼가 등장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2013)에는 '네오 서울'이라 명명된 미래가 등장하는데, 다다미방에 벚꽃이 흩날리는 등 왜색이 짙다.

분단국가의 이미지도 강했다. '백악관 최후의 날'(2013)에서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점령하고, '지.아이.조2'(2013)에서 북한은 세계를 위협하는 핵보유국이다. '월드워Z'(2013)에는 바이러스가 최초 발견된 곳으로 평택 미군부대가 지목된다. 대사로 설명된 북한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인민의 이를 뽑는 곳'으로 묘사된다.

▲'어벤져스2'에선 달라질까

'어벤져스2'를 제작하는 마블스튜디오는 국내를 촬영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 "한국의 이미지가 최첨단 시설, 의료선진국(세포조직재생) 및 정보기술(IT) 분야의 스마트 국가 이미지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 배우 수현이 어벤져스 팀을 치료하는 천재 과학자 역을 맡을 것으로 알려져, 한국은 그에 걸맞은 최첨단 산업국가 및 의료선진국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 강남일대에서 촬영해 관심을 모았지만 1분30초 가량 등장한 '본 레거시'(2012)와 달리 러닝타임 6분의 1에 해당하는 20분 가량 등장할 예정. 한국과 한국인이 분단국가 혹은 속물 등으로 단편적으로 묘사되던 과거에 비해 고무적인 일이다.

나아가 마블스튜디오는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노출됨으로써 국가 이미지 개선에 큰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효과 2조원이 넘는 부가적인 경제효과를 기대했다. 2009년 국내에서 촬영한 태국영화 '헬로우 스트레인저'는 한국을 로맨틱한 나라로 담아냈다. 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태국 방한객 35% 증가, 27억 원 방한객 유치효과와 직접 홍보효과 32억 원의 성과를 가져왔다. 전세계적인 배급망을 지닌 마블스튜디오의 경우 이와 같은 홍보효과가 수십 배에 이를 전망이다.

▲할리우드 내 한국 위상 증가, 왜?

이런 변화는 한국 영화 시장의 성장에 따른 것이다. 2012년 한국 영화 누적 관객 수가 최초로 1억 명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총 관객이 2억 명을 넘어서며 호황을 누렸다. '아이언맨3'(2013)은 한국에서 6,400만 달러(688억원)의 입장 수익을 거둬드리며, 북미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흥행수익을 올렸다. 전 세계에서 사랑 받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10억 달러(1조 753억원) 이상의 수입을 벌었다. 한국은 북미를 제외하고 티켓이 가장 많이 팔린 나라다.

할리우드로서는 적은 인구수에 비해 폭발적인 흥행 수익을 올리는 한국 시장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브래드 피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톰 히들스턴 등 최근 부쩍 늘어난 할리우드 스타들의 내한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한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대표는 "한국은 상당한 규모의 영화 시장이다. 수많은 영화 애호가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국내 배우와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도 인식을 바꾸는 데 한몫 했다. 재능 있는 국내 영화인들이 '영화산업강국 한국'이란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위쇼스키 남매와 인연을 맺은 배두나는 '주피터 어센딩'으로 또 한 번 호흡을 맞췄다. 이병헌은 '지.아이.조'시리즈, '레드: 더 레전드'(2013) 등 할리우드의 액션배우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박찬욱 감독과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손잡고 각각 '스토커'(2013)와 '라스트 스탠드'(2013) 등의 작품을 내놨다. 제작비 400억 원이 투입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흥행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도 했다.



김윤지기자 ja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