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 신보 리뷰박별·김현아 듀엣 치열한 느린 여정 성숙한 사운드로랄라스윗 2집 너의 세계 해피로봇레코드

라라스윗 2집 너의 세계 해피로봇
여성 듀엣 랄라스윗의 만남은 흥미롭다. 음악학원에서 베이스를 배우던 박별은 미디반에 등록했지만 귀찮아 한 번도 나가질 않았다. 미디반의 김현아가 폐강을 막기 위해 나섰다. 얼굴도 모르는 수강생들에게 메일을 보내 또래의 10대 여자아이들이 모여 '발광 다이오드'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랄라스윗의 뿌리다. 20대가 되어 음악에 대한 꿈을 잠시 접었다. 우연하게 TV를 보다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다시 곡을 써 출전한 200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나의 낡은 오렌지나무'로 은상을 수상하며 음악이 인생의 중심에 들어오는 전환기를 마련했다.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2010년 첫 EP를 발표했다. 발랄한 걸 밴드명의 밝고 명랑한 이미지와 달리 수록곡들은 후회, 미련 같은 쓸쓸한 정서가 지배했다. 삼수 끝에 2010년 9월의 헬로루키에 선정된 이들은 인기상을 수상하며 비로소 대중의 주목을 받아 소속사를 찾게 되었다. 어쿠스틱 사운드에 집중했던 데뷔 EP와는 차별적인 대담한 밴드 편곡과 드라마틱한 멜로디로 덧칠한 10곡으로 데뷔 3년 만인 2011년 첫 정규 앨범 'bittersweet'을 발표했다. 꾸준한 활동을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적 방향에 대한 고민에 직면했다. 디지털시대의 빠른 시간에 순응하는 잰 걸음이 아닌 '오랫동안 곁에 두고 들을 수 있는 팝 앨범'이라는 느린 보폭을 선택했다.

느리게 걷다보니 2년 4개월이 흘러서야 2집 '너의 세계'라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속도 경쟁이 치열한 디지털시대에 이들의 느릿한 행보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으면 쉽게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느린 여정은 나름 치열했던 것 같다. 전작에 비해 깊고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이 그걸 증명한다. 성숙해진 사운드를 통해 전면에 배치된 김현아의 보컬을 통해 한층 드라마틱해진 곡 전개와 구성은 느리게 나아갔지만 치열했던 그녀들의 지난 시간을 말해준다.

송라이터라는 작가적 방향타를 잡고 걷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을 것이다. 1집에서 소박한 질감을 추구했던 편곡은 프로그래밍, 스트링, 플루트 등을 도입해 다양한 사운드를 획득했다. 고민의 과정이 깊어지면 숙성되는 법. 사랑과 이별에 머물렀던 1집과는 달리 2집의 가사쓰기는 성장과 자아로 확장되었다. 마치 난파선에 승선한 불안한 현재를 딛고 나가려는 성장 통이 담긴 첫 곡 '앞으로 앞으로'는 굳이 후반부의 밴드 편성 없이도 인트로의 물소리 효과음향과 박별의 키보드, 김현아의 보컬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자전적인 내용이 담긴 타이틀곡 '오월'은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말하기 보단 봄을 그리워하는 쓸쓸한 정서를 담은 새로운 방식의 봄시즌송이다. 어쿠스틱 피아노와 현악 4중주가 어우러진 '반짝여줘'와 느릿하지만 정갈스런 어쿠스틱 기타선율이 인상적인 '거짓말꽃'은 청자를 김현아의 보컬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담담하게 담은 '사라지는 계절'과 잊고 싶은 기억을 파도에 비유한 마지막 트랙 'undo'까지 이들의 성숙해진 음악여정의 향기는 보다 선명해 진다.

랄라스윗 김현아와 박별은 멀티플레이어다. 1집에서 뮤직 페인팅, 사진, 글, 그림 등 다양한 예술적 관심을 드러냈던 이들은 2집에서는 사진작업을 했다. 단순한 듣는 앨범이 아닌, 앨범 타이틀 '너의 세계'에 부합되는 오감적인 토탈 아트워크를 시도한 셈이다. 재킷으로 장식된 일본 오키나와의 바닷가 백사장에 난파한 '너의 세계'를 의미하는 행성 사진을 빼면 나머지 사진들은 초점이 흐릿하다. 촬영 후 사진을 확인할 수 없는 장난감에 가까운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 의도적이지는 않았다지만 오히려 시선을 잡아끄는 효과를 낸다.

랄라스윗은 이번 앨범을 통해 '공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주목받기 위해 특별한 방식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저 느린 걸음에서 나온 따뜻한 가락으로 숨 가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하게 다가설 뿐이다. 이제 청자들이 반응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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