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별 노래라도 예전엔 애절하게만 불렀지만이젠 담담하게 표현해요인기 안주하지 않고 창법 변화 영화에서 음악 영감 많이 받아

OST의 여왕. 가수보다 노래 잘하는 가수. R&B 퀸. 가수 거미(본명 박지연ㆍ33)에게 붙은 수식어다. 2003년 데뷔 이후 '그대 돌아오면'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기억상실' '미안해요' 드라마 OST '죽어도 사랑해'(대물) '눈꽃'(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을 히트시킨 그에게 적어도 가창력에 관해 이의를 제기한 이는 없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거미의 위치는 그만큼 독보적이다.

거미가 4년 만의 미니앨범 '사랑했으니..됐어'로 돌아왔다. 6월9일 공개된 이 앨범은 거미표 발라드를 기다려온 팬들에게 단비와 같았다. 동명 타이틀곡을 비롯해 수록곡 대부분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최근 불기 시작한 R&B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촉촉했고 듣는 이의 감성을 울렸다. 역시 '명불허전' 거미다.

▲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사랑했으니.. 됐어'를 작업하면서 가정 우선했던 것이 인기보다는 거미의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어떤 음악이던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이번 앨범만큼은 좋게 들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노력을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 '더 성장한 것 같다'는 평가가 가장 기분 좋다.

▲ 4년 만의 컴백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그동안 회사도 옮기고 신상의 변화가 많았다. 전 회사(YG)에 몸담고 있었을 때 앨범 작업이 두 번이나 진행되다 무산됐다. 공백기가 길어지다 보니 더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컴백해야 한다는 부담 아닌 부담이 있었다. 또 빨리 앨범을 내고 싶다는 욕심도 들더라. OST 작업을 통해 음원을 많이 발표했으나 거미의 색깔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앨범이라고 판단했다. 두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미니 앨범을 작업했다. 반년 동안 준비한 결과물이 '사랑했으니.. 됐어'다. 새로운 식구들과 작업한 만큼 성공작으로 남았으면 한다.

▲ 이번 앨범을 통해 변화를 꿈꾼 것인가.

=특별히 변신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앨범을 들은 분들이 신선한 장르가 많다고 하시는데, 사실 이전에도 시도했던 장르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곡에 감정을 싣는 것이 달라진 것 같다. 같은 이별을 노래하더라도 이전에는 슬픔에 애절하게 매달려 있었는데, 이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뉘앙스가 담기는 것 같다.(웃음) 담담히 표현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변화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전의 성공에서 안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성격상 한 곳에 멈춰있지 못한다. 매번 작으나마 창법의 변화를 줬고 같은 가사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티 안 나게 다르게 불렀다. 한꺼번에 변하기보다 조금씩 바꿔가는 게 좋다.

▲ '사랑했으니.. 됐어'를 작업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듣기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댄스 아이돌 음악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만 따라부르기는 힘들지 않나. 보기 좋은 음악보다 감상하기 좋은 음악을 채워 넣으려 했다. 그래서 일부러 어려운 곡들은 피했다. 타이틀 곡 같은 경우 들을수록 기억에 남는 곡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랑했으니.. 됐어'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god, 플라이투더스카이 등 R&B 음악이 주목받고 있다.

=예전 댄스 음악에 밀려 R&B가 침체하여 있을 때 선배들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흐름은 돌고 돌며, R&B가 다시 사랑받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하더라. 어쩌면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더 좋은 것은 한가지 장르가 차트를 모두 석권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곡들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대중도 한 가지 스타일보다는 다양한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것 같다. 공통점이라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다.

▲ 2003년 데뷔해 벌써 11년이 넘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나.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긴장되고 떨리는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고민해봤자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웃음) 예전에는 어떤 음악이 유행하는지에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일상적인 고민을 음악을 담으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노래 테크닉보다는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편안해졌다. 음악에 집중하니 기술적인 것은 저절로 따라오더라.

▲ 음악 외 부분에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

=나는 갇혀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 관심을 두는 편이다. 자존심을 지키되 고집을 피우지 말자 주의다.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입담이 좋은 편이 아니라 예능은 잘 안 맞는 것 같다. 음악을 하므로 뮤지컬 쪽을 추천해주셨지만, 사실은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다. 뮤지컬의 환상적인 면 보다는 영화가 주는 현실감이 좋다. 음악을 하면서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마침 소속사에 영화배우 분들이 많은데,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더 떨어지더라. 하지만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다. 좋아하는 영화는 姑장진영이 출연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 가수로서 꿈꾸는 무대가 있다면.

=일본에 진출한 적은 있지만 아직 다른 나라에 음악을 들고 가본적이 없다. 중국 등 다른 시장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이돌 음악이 K-POP으로서 사랑받고 있으나 거미의 음악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꿈의 무대라면 세계무대인 것 같다. 하지만 R&B 본토인 미국은 힘들 것 같다. 그곳엔 무시무시한 분들이 많더라.(웃음) 아시아권은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현기자 sei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