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멤버 설리.
한국영화에 아이돌 가수가 캐스팅되는 것은 이제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한 사례가 됐다. 이들의 출연을 한때는 한류에 편승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삼기도 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연착륙한 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며 연기력 논란으로 번진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연기돌’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기존 배우 못잖은 수준급 연기를 펼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충분한 검증을 통해 충무로 역시 양질의 배우를 수혈받고 있다. ‘다된 작품에 아이돌 뿌린다’는 비아냥은 접어둬도 된다. 이제는 색안경을 쓰는 것이 촌스러워 보일 정도다.

▲ 화려함 버렸다, NO makeup

8월 6일 개봉하는 영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제작 하리마오픽처스, 이하 해적)에 출연한 설리는 걸그룹 f(x)의 멤버다. 해적 여두목 여월(손예진)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당차고 씩씩한 성격의 흑묘를 연기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덤비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여월의 해적단과 함께 국새를 삼킨 고래를 잡으러 다니던 중 악랄한 해적 소마에게 잡혀 고래의 제물이 될 신세에 놓인다.

SM엔터테인먼트의 간판 걸그룹 멤버 설리의 ‘해적’ 속 모습은 신선하다.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거친 입담을 지닌 소녀 해적으로 분한 그는 무대 위 섹시 혹은 화려한 모습 대신 얼굴에 검을 묻힌 채 생글생글하게 웃는 천진난만함을 선택했다. 잃어버린 국새를 찾아 떠난 해적과 산적의 유쾌한 모험을 그린 이번 작품에 잘 녹아내렸다는 평가다.

엑소 멤버 디오.
‘해적’ 연출을 맡은 이석훈 감독은 설리에 대해 “편집된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캐릭터 연기를 잘했다”며 “아이돌이라서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나뿐만 아니라 배우, 스태프 모두 설리의 출연을 찬성했다. 설리 본인 역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 문제작 출연도 OK, make issue

아이돌이라고 상업영화에만 출연하는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만 좋다면 사회적 문제작 출연도 마다치 않는다. 지난 연말 개봉한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변호인’에 출연한 임시완은 이후 충무로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곡 ‘으르렁’으로 대세 아이돌로 떠오른 엑소 멤버 디오(본명 도경수) 역시 문제작에 출연했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카트'(감독 부지영, 제작 명필름)를 통해 스크린 데뷔하는 그는 개봉 후 닥칠 논란을 걱정하기보다 '연기'를 택했다.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에서 스크린 데뷔식을 성공적으로 치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주간한국>에 “‘카트’의 소재가 어려울 수는 있으나 스토리가 감동적인데다 디오가 제의 받은 역할이 엄마(염정화)와의 교감을 잘 표현해야 하는 인물이다”며 “이제 스크린 데뷔작인데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디오 역시 캐릭터에 욕심을 냈다. 완성된 작품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민감한 문제를 다룬 작품인 만큼 '카트'는 지난 17일부터 2차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2월 9일 마감된 1차 크라우드 펀딩 '응원장터'를 통해 모인 성원에 힘입어 촬영을 마치고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2차 크라우드 펀딩의 목적은 후반작업과 개봉준비에 도움을 받고자 함이며 마감기한과 목표금액을 정하지 않고 진행 중이다.

JYJ 멤버 박유천.
▲ 충무로 대표배우들과 어깨 나란히, comake

훌쩍 성장한 연기돌의 존재감은 단순한 조연 캐릭터를 넘어 충무로 대표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르렀다. 8월 13일 개봉하는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 제작 해무)에 출연한 박유천은 김윤석에 이은 두 번째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얼굴만 비치는 조연이 아니라 영화를 이끌어가는 투톱으로 성장한 셈이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을 맡은 '해무'에서 박유천의 분량은 상당하다. 스크린 데뷔작이지만 선장 철주(김윤석)의 카리스마에 맞서는 유일한 인물로 분했다. 홍매(한예리)와 로맨스도 펼치며 이야기를 이끈다. 언론 시사 후 평가도 호의적이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 '옥탑방 왕세자'(2012) '보고 싶다'(2012) 등을 통해 단단히 내공을 쌓지 않았다면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극 중 함께 호흡한 배우 김윤석은 <주간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박유천의 장점은 스펀지 같다는 것이다. 편집을 통해 부족한 연기력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하나, 클로즈업에 담기는 표정까지 바꿀 순 없다”며 “왜 박유천이 지금의 인기를 얻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배우로 성장했다”고 칭찬했다.



이정현기자 seij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