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존 레인의 언제나 소박하게

한 여자 후배와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데이트의 말미에, 그 여자 후배는 서점에 들어가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해주었다. 그것이 존 레인의 ‘언제나 소박하게’였다.

나는 선물을 받을 당시에는 그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그 책을 독파할 것처럼, ‘언제나 소박하게’의 앞부분을 떠들러보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책꽂이에 꽂아두고, 그대로 잠들었다. 당시 사회적으로는 ‘느림’이나 ‘웰빙’이 유행했었고, ‘언제나 소박하게’ 역시 그런 유행에 편승하는 기획 책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나는 몇 몇 친구와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처음 술자리는 쾌활했다. 하지만 술자리가 옮겨지면서, 친구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고, 그만큼 우리의 활기도 줄어갔다. 결국에는 나와 한 친구만이 포장마차에 남아 있었다.

나와 친구는 그제야 좀 더 진솔한 자세로 우리의 인생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땅 위를 살아가는 삼십대로서 아주 청춘도 아니고 아주 늙어버리지도 못한 인간들이 꿈을 아주 잊어버리지도 못하고, 반대로 인생에 어떠한 기대도 덧붙이지 못한 채 나누는 대화였다. 우리는 좌표를 잃어버린 하나의 점 같았다.

당시 포장마차 여주인은 새벽 장사로 지쳐, 포장마차 한 구석의 평평한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성인가요가 나왔다가, 사연이 소개되었다가 했다. 오뎅 국물은 이미 식어있었다.

나는 그 날 새벽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울분과 고독에 휩싸여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나는 막막했고, 세계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된 까닭인지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언제나 소박하게’였다. 그것은 수많은 책들 속에서 아무런 개성 없이 꽂혀 있었다.

나는 별다른 의도 없이 그것을 빼어 들어 읽었다. 그리고 아침이 다 되어서야 책 읽기는 끝이 났다. 그것은 아주 대단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읽는 내내 내가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삶의 소중한 어떤 가치들을 다시 복원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나의 욕망, 나의 충동, 그리고 나의 경쟁 의식들이 감싸서 은폐하고 있는 내밀한 무엇, 그 온기와의 소통이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갔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하고 이부자리를 파고들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이재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