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식품 오염보다 더 심각한 식품 담론의 오염을 지적

까다로운 인문학 독서라면 몇 년 전에 담배 끊듯 끊었다.

머리가 나쁜 탓도 있지만 왠지 뜬구름 잡는 신선놀음 같아서. 뭔가 총체적이고도 구체적인 책들이 필요했다. 그러다 최근 특템한 서적이 바로 이것.

문제제기부터 단순해서 맘에 든다.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이를 위해 할애한 분량은 무려 500여 페이지.

서두부터 장황해지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도대체 자신이 어디에서 온 무엇을 먹는지 알고 싶어서 기나긴 '산업적 음식사슬'의 말단인 슈퍼마켓부터 무작정 습격했다는 것.

폴란은 "조사가 끝날 무렵이면 매우 다양한 장소들을 찾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 음식사슬들의 끝은 거의 정확히 똑같은 장소였다. 그곳은 바로 옥수수 지대"였다.

첫 번째 장의 요지만 정리해 보자면 미국인이 먹는 음식의 절반은 공장에서 수많은 화학공정을 거친 유전자 조작 옥수수이며 나머지 절반은 질산비료, 즉 석유라는 사실을 필자는 주장하지 않고 증명한다. 그것도 미국 전역을 이 잡듯이 뒤져서. 이 얼마나 통쾌하고 명쾌한가.

유쾌하기까지 한 사실은 유기농 채소는 햇빛과 퇴비 대신 "유기농 화학비료"로 자라고, 유기농 소는 한 달간의 방목을 마치고 나면 다른 소들처럼 좁은 곳에 갇혀 "유기농 사료"를 먹게 된다는 사실.

덕분에 이놈의 도시에서 어떻게 웰빙을 한번 해볼까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폴란에 의하면 생물화학과 식품과학이 결합된 거대자본과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소모적이고 환경파괴적인 현대의 음식시스템을 철회하지 않는 한 도시에서의 웰빙은 절대 불가능하니까. 설사 가능하더라도 이대로라면 인류는 수십 년 내로 멸종하리라.

이미 눈치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도시인에게 건강한 식단을 소개해주는 웰빙 서적이 아니다. 채식을 권장하지도 않으며,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을 추천해주지도 않는다. 필자는 오늘날 식품의 오염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식품담론의 오염임을 지적한다.

마트의 값싼 먹거리는 우리가 세금을 통해 그 절반을 미리 지불한 결과이며, 육식 자체가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된 고기만이 문제가 된다는 것, 채식을 위한 농업이 육식을 위한 목축보다 더 다양한 동물들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이 아니면 나 같은 단순한 놈이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박승옥, 녹색평론사, 2007)의 일독을 권함.

현대 도시인에게 음식만큼 가깝고도 먼 당신이 또 있을까. 인도에는 "네가 먹은 게 곧 너"라는 말이 있다. 전 지구적인 환경파괴를 대가로 화학물질로 뒤범벅이 된 음식을 먹고 있는 우리는 과연 누구? 만약 지구가 살아남는다면 현생인류는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 최초의 생물종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호모 콘, 혹은 호모 오일리쿠스.



노희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