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과학자·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자전적 에피소드 소개

●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지음/ 정나리아, 이은경 옮김/ 예담 펴냄/ 1만 8000원

가까운 존재와 이별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의 소품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인과 헤어지고 커플링을 버리거나, 떠나간 망자를 잊기 위해 그의 옷가지를 태우는 것 말이다.

소품을 없애는 일은 그 존재와 나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다. 이때 사물은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 책은 여기서 시작한다. 원제인 'Evocative Objects'(감정,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란 말처럼, 책은 34명의 지식인과 아티스트들의 특정한 사물에 얽힌 자전적 에피소드들을 펼친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수잔 폴락 교수가 꼽은 '내 인생의 사물은'은 할머니의 밀대다. 그는 말한다. "손끝으로 느끼는 일종의 의식을 통해 나는 다시 따스했던 할머니의 부엌과,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의 향기와, 할머니의 존재가 주었던 편안함 속으로 돌아간다"고.

할머니가 남긴 나무 밀대로 지금도 아이들과 과자 반죽을 만든다는 그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음식 냄새로 늘 풍요롭던 부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실감이 치유된다"고 덧붙인다. MIT 미디어 연구소의 글로리아나 데번포트 수석연구원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내 인생의 사물'이다.

'가족사진은 언제나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었다. 할아버지는 사진이 선명하지 않다고 투덜대는 친척들에게 장황한 설명을 하고는, 다음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건의와 제언을 귀담아 들으셨다. 즉 우리는 단순히 가족사진을 찍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족사진 기술의 연구에도 기여를 한 셈이었다.' (95페이지)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은 첼로, 별, 발레 슈즈, 단어장 등에서 유년 시절의 기억과 희망,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들에게 이 사물들은 실체화 할 수 있는 추억이다. 책을 엮은 셰리 터클은 서문에서 "그들의 삶에서 사물이 지닌 힘, 수많은 생각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지닌 힘을 탐구한다"란 거창한 표현을 쓰지만, 기실 이 말은 과장됐다. 34명이 꼽은 '내 인생의 사물'과 사물에 얽힌 이야기는 그들의 철학관을 보여주는 깊이 있는 통찰이 아닌 그들의 자전적인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원서가 어떤 형식으로 출판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한국판 부제는 '34인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사물을 통해 본 인생철학'이다. 엮은이 셰리 터클은 서문에서 "의미 있는 사물을 통해 우리는 현실 안에서 철학을 접하게 된다"고 말했다. 34개의 짧은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철학적으로 사고하기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된다. 책의 부제와 셰리 터클의 말이 참된 명제라면 말이다.

자, 이제 우리도 떠올려보자. 나에게 의미 있는 사물은 무엇인지를.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이소부치 다케시 지음/ 강승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1만 7000원

홍차 역사 기행서. 중국 녹차 배가 적도 근처에서 스콜을 만나 발효된 홍차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호식품이다. 영국에 홍차를 퍼뜨린 '베드포드' 가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홍차의 근원인 중국 소수민족의 차 생산지와 19세기 보스턴 차 사건까지 시공간을 통과해 전개된다. 200컷에 가까운 홍차 관련 회화, 지도, 각종 유물 사진을 곁들였다.

● 느리게 걷는 사람
신정일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1만 2000원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자전 에세이. 20년째 전국을 도보로 답사하는 국내 도보여행 1세대인 저자는 책에서 그 삶의 화두인 길, 강,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추억을 펼친다. 1부 '머물고 싶던 아름다운 시절'에는 자연과 벗삼아 놀았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2부 '그대 자신의 등불이 되라'에서는 유년 시절에 대한 혼돈이 3부 '사람들 속에서 진짜 나를 찾다'에서는 저자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 만델라스 웨이
리처드 스텐절 지음/ 박영록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 2800원

시사지 <타임>의 편집장 리처드 스텐절이 쓴 만델라 취재록. 저자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3년간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작업을 함께했다. 이 책은 그에 관한 한 저널리스트의 기록이다. 저자는 그의 고향집에 방문하고,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 운동을 지켜보고, 70시간이 넘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만델라의 다양한 면모를 그린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