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1)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그의 책은 정치 이상과 현실 간극 설명하는 바로미터이자 목표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중 하나는 좋은 저자의 리스트를 갖는 것이다. 새 연재코너 '이 장르, 이 저자'는 장르와 저자에 관한 소사(小史)이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분야에서 국내외 대표 저자로 꼽히는 이들의 스토리와, 그가 저술한 책들이 갖는 의미를 소개한다. _ 편집자 주

인터넷이 일반화하면서 지식인의 운신 폭은 좁아졌다.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이들의 최대 경쟁력이던 '사실에 대한 암기력'은 보잘 것 없는 재주가 됐다. 마치 컴퓨터가 범람하는 시대에 주판 실력처럼.

단순 사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네이버 지식인의 등장은 상아탑 안의 지식인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만든다. 선사시대부터 엊그제 대소사까지 별걸 다 기억하는 대량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 대중지성과 정통적 의미의 지식인을 구분 짓는 것은 생각의 깊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 본보기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멘토 같은 존재다. 현실 정치가 아니라 학문이란 체계 내에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정치인의 상당수가(특히 DJ와 참여정부 시절) 그를 사상적 멘토로 꼽는다는 사실을 염두해 볼 때, 그의 책은 정치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설명하는 바로미터이자 현실정치가 나아가려는 목표가 될 수 있다. 그의 책이 갖는 의미다.

그에게 정치학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당위적, 이상적 목표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일견 모순된 정의 같지만, 그는 '그것이 정치학이 대면한 운명적 문제'라 여긴다. 학문에서의 정치는 한 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생산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둘러 싼 갈등이지만, 현실 정치는 공공선의 실현을 둘러싼 공동체의 윤리적 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현상에 대한 이론이나 철학은 기본적으로 실천이성의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사회변화와 정치현실은 기본적으로 민중이 움직여 나가는 것이고 정치학은 보다 높은 수준에서 진리와 가치를 지향하지만, 그때의 진리와 가치는 추상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추적해 갈 때 발견하게 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학을 "최후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이고 실용주의적이며 과정의 포괄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학습"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도 스스로 회의적이며 언제나 잠정적이라고 여긴다.

그의 대표저서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개정의 재개정을 거쳐 출간되는 이유다. 이 책은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모시는 '현실 정치인'들이 바이블로 꼽는 책이다. 지난 주 재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은 지난 50여 년의 현대 한국정치를 소재로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구조, 변화를 다룬다.

한국 민주주의의 초기 형성 조건과 제약, 그리고 이후의 사태 전개와 변화를 시계열적으로 서술했다. 재개정판에서는 노무현 정부 이후의 정치 현상과 수치·통계를 업데이트하면서 민주 정권 10년의 특징과 패턴을 분석해 반영했다.

최장집 교수는 정치가 권력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정치 현실에 접근할 때 언제나 사려 깊음과 관용, 다른 생각과 관점이 공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과도한 주장과 자기 확신은 '대개 무지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말이다.

주류 언론들은 그를 진보파의 대표로 호명한다. 주요 저서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한국현대정치의 구조와 변화>, <한국민주주의의 이론>, <해방전후사의 인식>(공저) 등이 있으며 일반에 알려진 저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화>,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이 있다. 정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독자라면, 후자인 세 권을 먼저 차례로 일독하길 권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